EP001. 유찰
자, 문제. 감정가 1억 2천짜리 집이 3,145만 원이면 산다, 안 산다?
정답은 안 산다는 거다. 다들 안 샀다. 무려 여섯 번이나, 법정에 올라올 때마다 아무도 손을 안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사지.'
반지하 투룸에 31년 차, 역세권은 아닌데 역에서 아주 멀지도 않은 애매한 거리라서 서류만 보면 멀쩡하다. 아니, 멀쩡해서 더 수상하다. 경매판에서 멀쩡한 서류가 일곱 번째 법정까지 올라왔다면 이유는 둘 중 하나밖에 없다. 서류에 안 적힌 사람이 있거나.
서류에 안 적힌 사람이 아닌 게 있거나.
"2026타경 4417호! 최고가 매수신고인 박정봉 씨!"
네, 접니다, 단독 입찰이었으니 박수까지 쳐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태하회계법인 부동산팀에서 10년 차를 채우고 지난달 잘린 회계사, 통장 잔고 3,912만 원, 그리고 죽은 사람이 보이는 남자. 그게 나다.
뒷줄 아저씨가 나를 불쌍하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저 집에 들어간 세입자 셋이 석 달을 못 버텼다는 소문은 나도 들었으니 무슨 뜻인지는 알았다. 근데요, 아저씨.
'나는 그 셋이 못 본 걸 볼 수 있거든요.'
석 달 전 공사장에서 떨어진 뒤로 생긴 일이고, 그래서 나는 흉가만 산다.
집행관이 내 입찰표를 들어 법정 쪽으로 보였다.
"입찰가 3,145만 7,280원. 최저가하고 원 단위까지 똑같네요."
뒷줄 어디선가 누가 손뼉을 쳤다.
짝.
딱 한 번 치고 끝난 걸 보면 박수가 아니라 비웃음이었고, 그걸 신호로 법정 여기저기서 웃음이 샜다. 하긴 최저가를 끝자리까지 베껴 쓰는 사람은 드물다. 한 명이라도 더 들어오면 그대로 지는 숫자니까.
근데 여섯 번 유찰된 집에 일곱 번째로 누가 들어오겠나 싶어서, 나는 1원도 더 쓸 이유를 찾지 못했다.
감정가 1억 2,000만 원에서 낙찰가를 빼면 8,854만 원이 남는데, 나는 이걸 귀신값이라고 부른다. 귀신 때문에 깎인 금액이라는 뜻이다. 물론 회계 용어는 아니고, 내가 지어낸 말이다.
법정 복도 경매계 창구 앞에서 입찰보증금 영수증을 받아 들고 돌아서자, 금목걸이가 슬그머니 내 옆으로 다가왔다. 아까 그 뒷줄 아저씨였다.
"젊은 양반."
아저씨는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 집 석 달 못 버텨. 내가 이 판 30년이야."
"예, 압니다."
"알면서 샀어?"
"알아서 샀습니다."
"허! 세입자 셋이 줄줄이 나갔다니까?"
"2024년에 셋이요. 다들 석 달 안에 나갔죠."
"……그걸 알고도 사?"
"그래서 샀습니다. 셋이 나가 준 덕에 여섯 번 유찰됐으니까요."
아저씨가 혀를 찼다.
쯧.
소리가 복도 끝까지 굴러가는 동안 아저씨 얼굴에는 남이 산 물건이 갑자기 싸 보이기 시작한 사람의 표정이 떠올랐다.
나는 영수증으로 눈을 내렸다. 보증금 3,145,728원, 최저가의 10%를 수표 한 장으로 끊은 금액이다.
검정 수첩을 펴고 앞으로의 일정을 적었다.
1. 11. 10. 매각허가결정(1주) 2. 11. 17. 항고기간 만료(1주) 3. 대금지급기한 — 확정 뒤 약 한 달 4. 인도명령 → 집행 — 거기서 또 몇 주
인도명령을 받고 집행까지 가면 거기서 시간이 더 늘어지는 게 이 바닥 상식이다.
'법대로 가면 열쇠까지 두 달. 생일은 32일 뒤.'
볼펜 끝으로 32를 두 번 톡톡 두드리다가 결론을 냈다. 두 달은 못 기다리고, 그러면 길은 하나뿐이다. 잔금을 최대한 빨리 내고 집주인 쪽과 협의해서 열쇠를 받아 내는 것.
생일이 누구 생일이냐고요. 그건 사흘 전 밤에 있었던 이야기다.
10월 31일 토요일 밤 11시, 은곡동 빌라 B01호의 반지하 창문 앞 골목.
임장은 낮에 하는 거라고들 하는데, 맞는 말이다. 산 사람을 만날 때라면.
창살 너머로 부엌이 들여다보였다. 불은 꺼져 있었는데도 식탁 앞에는 여자 하나가 행주를 쥐고 서 있었다.
쉰 줄의 아주머니가 앞치마를 두른 채 아무것도 없는 식탁을 행주로 훔치고, 또 훔치고 있었다.
그러다 여자가 고개를 들었고, 창 너머로 나와 눈이 마주쳤다.
"밥은 먹고 다니우?"
첫마디가 그거였다. 손끝에 닿은 창문 유리가 11월 다 된 밤공기보다 한 칸 더 차가웠다.
나는 오른쪽 귀의 무선 이어폰을 톡 건드렸다. 밤 골목에서 혼잣말하는 남자는 신고를 당하지만, 통화하는 남자는 아무도 신경 안 쓴다.
"실례지만, 점유하신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뭐?"
"여기 사신 지요."
"98년 3월 2일. 소담이 초등학교 들어가던 날."
날짜가 막힘없이 튀어나오길래 받아 적고는, 습관처럼 다음 질문을 던졌다.
"관리비는요?"
"……총각, 지금 그게 궁금해?"
'궁금합니다. 체납관리비 공용분은 낙찰자가 떠안거든요.'
물론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현황조사서 — 점유관계: 폐문부재. 우편물 다수 적치. 이웃 진술: 2024년 가을 이후 거주자 없음.」
사실 서류로는 2년 가까이 아무도 안 산 집인데, 그 아무도 아닌 사람이 행주를 든 채 창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한 걸음, 두 걸음 다가오던 발이 창틀 바로 앞에서 딱 끊겼다.
유리에 닿을 듯 말 듯 올라온 손은 거기서 더 나오지 못했다. 안 오는 게 아니라 못 오는 거다.
석 달 동안 알아낸 규칙이 하나 있다. 이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묶인 집의 경계, 그러니까 등기부에 그어진 선을 못 넘어서 창틀이든 현관이든 거기까지가 끝이다. 예외는 묶인 데가 집이 아니라 물건인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하나 우리 집 냉장고 옆에 산다. 게다가 그들이 나가고 72시간이 지나면 하자도 걷힌다는 걸 앞서 둘한테서 확인했다.
"총각, 집 보러 왔지? 또 누가 들어와?"
"제가 살 겁니다."
"그럼 나 내쫓으러 온 거네."
"아닙니다."
나는 목소리를 한 톤 낮췄다.
"저는 퇴마 안 합니다. 명도합니다."
"그게 뭔데."
"사시는 분이 스스로 나가시게 돕는 겁니다. 짐도, 사정도, 순서대로요."
주문도 부적도 없다. 나는 무당이 아니라서 보고, 듣고, 말하는 게 전부고, 만질 수도 쫓아낼 수도 없다.
그러니까 이 일은 결국 협상이라는 말이다.
여자가 식탁으로 돌아가 다시 행주를 놀렸는데, 손이 아까보다 조금 느려져 있었다.
"내일이 소담이 생일이야. 장도 다 봐 놨어."
"따님 생일이 언제신데요?"
"12월 5일. 내일이잖아."
솔직히 오늘이 10월 31일이라는 말은 목구멍에서 삼켰다.
"장은 어디에 봐 두셨어요? 냉장고에요?"
"미역 한 봉지. 국거리 소고기. 케이크는 아침에 찾으러 가려고 했지."
말은 거기서 툭 끊겼고, 여자는 그 뒤를 정말 모르는 얼굴이었다. 장을 봐 놓고 잠깐 누웠는데 일어나 보니 이렇게 돼 있더라는 말뿐이었다.
날짜는 서류가 알고 있었다. 등기부 갑구에 적힌 상속 원인이 '2023년 12월 4일 상속', 딸 생일 바로 전날이다.
'3년 가까이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
수첩을 넘기는 사이 머릿속에서 서류가 한 장으로 정리됐다.
▣ 2026타경4417 은곡동 다세대 반지하 투룸(B01) / 1995년 사용승인 감정가 1억 2,000만 / 유찰 6회 / 최저가 3,145만 7,280원 점유: 폐문부재 / 하자: 곰팡이·새벽 음식 냄새
현황조사서의 '폐문부재'가 그제야 이해됐다. 집행관이 문을 두드렸을 때 안에는 분명 사람이 있었고, 그저 집행관 눈에 안 보였을 뿐인 셈이다.
세입자들이 석 달을 못 버틴 이유도 같이 풀렸다. 끓이는 사람도 없는데 새벽마다 미역국 냄새가 나고, 벽은 곰팡이로 지도를 그리는데, 감정평가서 사진 속 벽지가 딱 그 꼴이었다. 반지하 방수 견적은 통상 600만 원. 나는 이 사람들이 일으키는 걸 하자라고 부르는데, 냄새와 곰팡이 정도인 이 집은 가벼운 쪽인 1등급이다.
'방수로는 안 잡힌다. 물이 아니라 미역국이니까.'
"그럼 생일상만 차려지면……."
"소담이가 먹는 거 보면, 나도 가야지."
여자는 행주를 접었다가 다시 펴더니 고개를 들었다.
"총각, 우리 소담이 좀 불러 줄 수 있어? 요새 통 안 와."
"따님 주소는 서류에 있습니다."
등기부 갑구의 소유자는 한소담, 어머니 빚까지 떠안지 않으려고 한정승인을 한 상속인이다. 그리고 이 집 열쇠를 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럼 와?"
"와야 하실 겁니다. 제 쪽 일정도 그분한테 달려 있어서요."
'열쇠도, 생일상도, 한 사람한테 걸렸다.'
여자는 대답 없이 또 식탁을 닦기 시작했다.
11월 3일 밤, 물푸레동 다가구 원룸 302호.
끼익.
문을 열자마자 냉장고 옆에서 누가 튀어 올랐는데, 정확히는 쪼그려 앉아 있다가 고개만 쑥 뺀 거였다.
"형님! 진짜 샀어요?!"
"샀습니다."
"와, 미쳤다. 반지하 귀신 집을 돈 주고요? 저 기출 5년 치 다 풀었는데 '흉가 낙찰' 문제는 없었거든요?"
공기찬, 스물일곱, 공인중개사 시험 3수생. 3년 전 이 방에서 죽었고 지금은 내 룸메이트다.
이 방 월세가 시세의 반값인 25만 원인 이유가 저기 쪼그려 있는 셈이다. 나는 그 반값을 고맙게 받았고, 대신 냉장고 옆자리를 영구 임대로 내줬다.
"형님, 그 집 아주머니는요? 무서워요?"
"미역국 냄새가 납니다."
"와, 맛있겠다. ……아, 저 못 먹지."
"기찬 씨는 냄새도 못 맡잖아요."
"상상은 하죠! 상상은 공짜예요."
"근데 돈은 돼요?"
"계산 중입니다."
책상에 앉아 검정 수첩을 펴고, 손익을 볼 때 쓰는 칸을 만들려고 볼펜으로 ㄱ자를 그었다.
1. 통장 39,120,000 2. 입찰보증금 −3,145,728 3. 잔금 −28,311,552 4. 취득세·등기 −746,030 5. 명도 −300,000 6. 수리·청소 −6,300,000 (방수 별도)
남는 돈은 316,690원, 그러니까 31만 원이다.
방수 견적 600만 원까지 넣으면 마이너스 568만 원이 된다.
"……형님, 31만 원이면 한 달 생활비도 안 되는데요. 방수는 아예 못 하고요."
"압니다."
거기에 갚아야 할 빚도 있었다. 퇴사하자마자 은행이 마이너스통장 1,000만 원의 한도를 회수해 버려서, 1월 15일까지는 그걸 메워야 한다.
기찬이 어깨 너머로 수첩을 들여다봤는데, 그림자가 없어서 스탠드 불빛이 고스란히 종이 위로 떨어졌다.
책상 구석에는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금융위원회 징계 심의 회부 통지서, 잘린 것도 모자라 징계 심의까지 받는 중이라 회계사 자격이 걸린 서류다.
"형님, 그 봉투 또 꺼내 놨어요?"
"꺼내 둔 겁니다. 잊어버리지 않으려고요."
"뭘요?"
"제 이름 달고 나간 숫자요."
기찬은 입을 삐죽이기만 하고 더는 캐묻지 않았다. 이럴 때 보면 기찬은 눈치가 빠르다.
계산이 안 맞을 때 나오는 버릇대로, 엄지로 왼쪽 눈썹 위 흉터를 긁었다.
8월 4일, 공사가 멈춘 오피스텔 7층으로 실사를 나간 날이었다. 떨어지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눈에 들어온 건 파란 바탕에 흰 글씨로 청람 로고가 박힌 공사장 펜스였다.
병원 기록에 따르면 나는 7분 동안 죽어 있었고, 깨어난 그날 밤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석 달 동안 만난 죽은 사람은 기찬까지 넷이다.
"형님, 무서운 얼굴 하지 마요."
"계산하는 얼굴입니다."
"그게 더 무서워요."
나는 수첩 새 장을 펴고 윤복례 님에게 받아 낸 조건을 서류처럼 옮겨 적었다.
▣ 퇴거 조건 점유자: 윤복례(망) 점유 개시: 1998. 3. 2. 퇴거 조건: 딸 소담의 생일상 기한: 2026. 12. 5.(토) 미이행 시: 하자 지속 → 매각 불가
생일상 원가는 3만 원이면 넉넉할 거다.
'귀신값 8,854만 원이, 3만 원짜리 상 하나에 걸렸다.'
문제는 그 상에 앉아야 할 사람이다. 윤복례 님 말로는, 딸은 요새 통 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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