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1. 반지하
사장님이 계산기를 두드리다 말고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사장님의 계산기는 걱정이 클수록 빨라지는 물건이었다.
"얘, 유나야. 오늘 봉천 반지하는 너 혼자 가."
"……네."
"한결 쪽 의뢰야. 실장님이 특별히 깔끔하게 부탁한대. 우리 매출 사 할이 거기서 나와. 사 할이 뭐냐면, 내 노후의 사 할이야."
반장님은 말없이 목장갑을 두 번 털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진우 데려가."
"저요? 저 어제 먹은 순대가 아직 여기 있는데요."
진우가 명치를 두드리며 앓는 소리를 냈지만, 사장님은 믹스커피 두 봉을 한 컵에 털어 넣으면서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건 견적에 없어."
시계는 8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몇 시까지 끝내면 돼요?"
반장님이 한참 나를 바라보다가, 시간 얘기는 끝내 하지 않고 한마디만 내놓았다.
"오래 있지 마."
사장님이 견적서를 내 쪽으로 밀었는데, 귀퉁이에 현관 번호 여섯 자리가 볼펜으로 눌러 적혀 있었다.
"혼자 사시던 분이고, 가족은 연락이 안 된대. 경찰은 병사로 봤어. 당뇨가 있으셨다나 봐."
사장님은 계산기를 다시 톡톡 두드리고 나서 숫자를 불렀다.
"여름에 발견이 늦었으니까 바닥까지 갔을 거야. 사흘 잡아."
"사흘이요? 저 사흘 내내 계단에 있어도 돼요?"
"계단에 있어도 시급은 나와. 대신 봉투는 네가 다 접어."
진우는 견적서를 넘겨다보다가 뭘 읽었는지 얼른 고개를 돌려 버렸다.
반장님은 나가다 말고 내 장비 가방을 들어 지퍼를 열고 정화통을 셌다. 두 개뿐인 걸 확인하자 자기 가방에서 하나를 꺼내 넣어 주고 그대로 나갔다.
화이트보드에는 오늘 현장이 두 줄 적혀 있었다. 윗줄은 반장님의 상도동이었고, 아랫줄은 봉천동 반지하였는데, 그 끝에 사장님 글씨로 내 이름이 붙어 있었다.
입사하고 석 달 동안 반장님 뒤를 따라다니며 열한 곳을 치웠다. 그래도 내 이름만 달랑 붙은 줄은 처음이었다.
트럭은 한 대뿐이라 오전에는 상도동 반장님 현장 앞에 트럭을 대 놓고, 계단으로 내려오는 봉투를 받아 싣는 일부터 했다.
폐기물 업체에 짐을 넘기고 점심까지 먹은 뒤에야 오존 발생기 한 대를 거기 내려 두고 봉천동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운전은 내가 했고, 진우는 조수석에 파묻혀 휴대폰만 들여다봤다.
"누나, 제 채널 구독자 몇 명인지 알아요? 312명이요. 어제 열 명 늘었어요."
"축하해요."
"오늘 현장 쪼끔만 찍으면 안 돼요? 모자이크 하고요. 제목은 극한알바 특수청소 편."
"안 돼요."
"반장님이 찍지 말래서요?"
"고인이 싫어하실 거라서요."
진우가 머리를 긁는 사이 신호가 바뀌었다.
"근데 한결은 왜 맨날 우리한테만 줘요? 청소 업체 많잖아요."
"싸고 꼼꼼해서요. 사장님 말로는."
"우리가 싸요?"
"한결한테만요."
진우가 휴대폰을 내려놓고 농담인지 확인하려는 얼굴로 나를 살폈지만, 나는 앞 유리만 보며 핸들을 쥐고 있었다.
"누나는 왜 이 일 해요? 병원 다녔다면서요."
"……돈 줘서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전부도 아니었다.
사장님이 말한 실장님은 한결하우징의 관리실장이었는데, 나는 그 사람을 두 번 봤다.
처음은 5월, 봉천동 현장에서 반장님을 따라 나오던 길이었다. 실장님이 계단 아래에서 박하사탕을 하나 내밀었다.
"유나 씨는 냄새 괜찮아요? 처음엔 다들 힘들어하던데."
"사고로 후각이 없어요."
실장님은 잠깐 나를 살피더니 웃었다.
"다행이네요. 이 일엔."
사탕은 까지 않고 작업복 바지 주머니에 넣어 뒀는데, 저녁에 꺼내 보니 비닐 안에서 녹아 엉겨 붙어 있었다.
두 번째로 본 건 6월 상도동이었고, 그날도 사탕을 받았다. 실장님은 그때도 내 이름부터 불렀다. 한 번 들은 이름을 잊지 않는 사람이었다.
"누나, 여기 맞아요?"
진우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건물은 1층이 세탁소였고, 그 옆으로 난 계단이 땅 밑으로 꺾여 내려가고 있었다.
트럭을 세우자마자 세탁소 유리문이 열리더니,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가 고개만 쑥 내밀었다.
"거기 치우러 왔어요?"
"네. 말끔에서 왔습니다."
"택시 하던 양반이야. 무릎이 안 좋아서 저 계단을 옆걸음으로 내려갔어."
아주머니는 턱으로 계단을 가리키고는 말을 덧붙였다.
"인사는 했지. 그게 다야."
유리문이 도로 닫히고, 안에서 다리미가 김을 뿜는 소리만 새어 나왔다. 사실 이웃이 아는 건 대개 그 정도가 전부인 법이다.
「7월 6일 월요일. 13시 50분. 봉천동 반지하. 고인 남성, 64세. 발견까지 약 3주.」
문 앞에는 뚜껑이 반쯤 열린 복숭아 젤 방향제가 하나 있었는데, 누가 갖다 둔 건지는 견적서에 적혀 있지 않았다.
계단 위에서 진우가 헛구역질을 했다.
"누나, 이거 진짜 괜찮아요?"
솔직히 나는 모른다. 2년 전 택시 뒷좌석에서 머리를 부딪친 뒤로 냄새를 못 맡으니, 괜찮은지 아닌지 알 길이 없는 셈이다. 김치찌개도, 락스도, 봄도 내게는 없다.
문고리에 매달린 은색 보랭 주머니는 떼어서 옆 배관으로 옮겨 걸었다.
방호복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마스크 끈을 두 번 고쳐 맨 다음, 반장님이 가르친 대로 문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불어 터진 라면의 짠 김이 먼저 밀려들었고, 무릎에 붙였다 뗀 파스의 싸한 기운이 뒤를 따랐다. 그 위에 값싼 복숭아 단내가 얇게 얹혀 있었다.
사고 뒤로 내가 맡는 냄새는 언제나 남의 것이었다.
방은 하나였다. 현관이 곧 부엌이었고, 욕실 문은 싱크대 바로 옆으로 나 있었다. 진우는 계단참에 쭈그려 앉아 폐기물 봉투를 접기 시작했다.
천장 가까이에 하나뿐인 창은 창틀이 바깥 길바닥과 높이가 같아서, 그 너머로 샌들이 지나가고 운동화가 지나갔지만, 멈추는 발목은 끝내 없었다.
유리 안쪽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고, 창틀 고무 틈을 따라 검은 곰팡이가 줄지어 피어 있었다.
의자 위에는 택시 운전석에 까는 나무구슬 방석이 깔려 있었는데, 엉덩이가 닿는 자리의 구슬만 반들반들하게 닳아 있었다.
방석을 들어 유품 상자로 옮기려다 손을 거뒀다. 구슬 사이에 500원짜리 동전 하나가 끼어 있었는데, 거스름돈을 세다가 흘렸을 거다. 동전은 빼지 않고 방석째 상자에 넣었다.

장판 가운데에는 사람이 누웠던 자리가 윤곽으로 남아 있어서, 나는 그 둘레를 밟지 않게 비켜섰다.
그때 라면 김이 다시 짙어졌다.
가스 불 앞에서 냄비에 물을 넉넉히 부었다. 면은 불어도 괜찮았고, 국물만 짜지 않으면 그걸로 됐다.
목구멍이 바짝 말라서 침을 삼킬 때마다 걸렸다. 손바닥으로 무릎의 파스를 꾹 누르자 미지근한 파스가 살갗에 들러붙었다. 일어나려고 다리에 힘을 주다가, 그대로 포기해 버렸다.
숨을 들이쉬자 남의 기억 한 조각이 툭 끊겼다. 장갑 손가락 끝을 잡아당기고 보니, 방호복 안에서 등이 흠뻑 젖어 있었다.
"누나? 괜찮아요? 너무 조용해서요."
"괜찮아요. 약 뿌릴게요."
소독약은 벽 가장자리부터 뿌려 나갔고, 윤곽이 남은 자리에는 덧뿌렸다.
계단으로 올라가 마스크를 내리자 진우가 생수병을 내밀었다. 반 병을 단숨에 비웠는데도 목은 여전히 말랐다. 조각이 끊긴 뒤부터 계속 그랬다.
"누나 얼굴 빨개요. 안에 에어컨 없죠?"
"없어요. 창도 안 열려요."
"와, 거기서 어떻게 사셨지."
진우가 계단 아래 문을 내려다보는 동안 나는 남은 물을 마저 마셨다. 길 위로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계단 아래로 눈길을 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욕실은 한 사람이 겨우 설 만한 넓이였다. 배수구를 확인하고 세면대 수도를 꼭 잠근 다음, 방으로 돌아와 서랍을 열 때였다.
등 뒤에서 물소리가 났다.
세면대 수도가 틀어져 있었다. 컵 하나를 받을 만큼 가늘게 흐르고 있길래 수도꼭지를 끝까지 돌렸고, 손잡이는 더 돌아가지 않았다.
방 쪽으로 두 걸음 옮기자 물소리가 다시 났다.
"누나, 물 틀었어요?"
계단참에서 진우가 물었다.
나는 욕실로 돌아가 수도꼭지 손잡이에 손을 얹었고, 이번에는 돌리지 않고 그대로 기다렸다.
컵 하나가 찰 만큼 흐르고 나서 물이 멎었는데, 손잡이는 그동안 내 손 아래에서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손바닥 아래로 조각 하나가 지나가면서 입안이 먼저 말랐다. 컵을 쥔, 내 것이 아닌 손이 수도꼭지를 돌렸지만, 그 컵은 끝내 입까지 올라오지 못했다.
"……아니에요. 제가 틀었어요."
진우는 더 캐묻지 않았고, 계단에서 봉투 접는 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이번에는 진짜 거짓말이었다.
수도꼭지에서 손을 떼도 물은 더 나오지 않았다. 수첩에 적을까 하다가 볼펜을 도로 꽂았다. 어차피 적을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었다.
싱크대 위 선반에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칸이 일곱 개 달린 요일 약통이 있었다.
월, 화, 수 칸은 텅 비었고 목요일 칸부터는 알약이 가득했다. 칸이 투명해서 열어 보지 않아도 다 보였다. 이 사람은 수요일까지는 약을 챙겨 먹은 셈이다.
냉장고는 웅웅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하긴 전기가 끊기지 않은 집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누나, 봉투 몇 장 더 접어요?"
"스무 장이요. 진우 씨, 잠깐 와 볼래요?"
진우는 코를 쥐고 현관 문턱까지 내려왔지만, 방 안으로는 한 발도 들이지 않았다.
나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반찬이랄 것은 김치통 하나와 달걀 두 알이 전부였는데, 문 칸에만 같은 흰 우유가 줄줄이 들어차 있었다. 따 놓은 건 하나도 없었다.
"몇 개예요?"
진우가 문턱에서 목만 빼고 셌다.
"……아홉 개요? 우유 되게 좋아하셨나 보다."
진우는 그 말만 남기고 다시 계단으로 올라갔다.
나는 맨 안쪽 우유부터 날짜를 확인했다. 6월 22일. 그 옆은 6월 25일이었다. 문 쪽으로 나올수록 날짜가 늦어졌으니, 누가 하나씩 앞에 채워 넣은 순서였다.
우유를 한 개씩 꺼내 바닥에 깐 비닐 위에 냉장고에 있던 순서 그대로 늘어놓고, 날짜가 보이게 한 장씩 찍었다.
「14시 18분. 냉장고 문 칸 우유 아홉 개. 개봉 없음. 안쪽부터 유통기한 순.」
사망 추정은 6월 중순이라고 했다. 경찰이 사장님에게 그렇게 전했고, 사장님은 그 말을 견적서 귀퉁이에 받아 적었다.
줄 끝에 놓은 우유를 다시 집어 들었다. 문 칸 맨 앞에 있던 것이었는데, 아직 차가워서 팩 겉에 물방울이 송송 맺혀 있었다.
유통기한은 7월 11일이었다.
오늘은 7월 6일이었다.
닷새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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