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2. 보증금
"그 시체 치우는 데 얼마 나와요?"
계단 위에서 남자 목소리가 내려왔을 때, 나는 비닐 위에 늘어놓은 우유 사진을 한 장 더 찍고 몸을 일으켰다.
그 말에 어깨가 움츠러든 진우가 계단참에서 슬쩍 몸을 비키자, 반소매 셔츠 차림의 남자가 계단을 내려와 현관 앞에 섰다. 예순은 훌쩍 넘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집주인이세요?"
"허영철이요. 한결에서 연락 받았죠? 그래서, 얼마 나와요?"
"견적은 사장님이 따로 드릴 거예요."
"빨리만 해 줘요. 다음 달엔 사람 들여야 돼요. 장판 새로 깔고 도배하면 누가 알겠어요."
사실 장판을 새로 깐다고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었다. 진우가 계단참에서 헛기침을 했지만, 허영철 씨는 못 들었거나 못 들은 척하는 쪽이었다. 방 안은 아예 들여다보지도 않고 휴대폰부터 꺼내 들었다.
"보증금에서 청소비 까고요, 짐은 그냥 다 버려요. 어차피 가족도 없다며."
허영철 씨는 손수건으로 코를 막은 채 끝내 문턱을 넘어오지 않았다.
"유품은 못 버려요."
"왜요? 내 집인데."
"집은 집주인분 거지만, 짐은 아직 이분 거예요. 상속인이 확인되기 전에 버리시면 재물손괴가 될 수 있어요."
그제야 집주인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나는 수첩을 펴고 볼펜 뚜껑을 열었다.
"집주인분이 버리라고 하셨다고 적어 둘까요? 시각이랑 같이요."
「14시 32분. 임대인, 유품 폐기 요청.」
집주인이 손수건을 내렸는데, 코를 막아야 한다는 것도 잊어버린 얼굴이었다.

"……아니, 누가 버리랬어요. 정리를 하라는 거지."
"정리는 해요. 쓸 만한 서류랑 물건은 상자에 담아서 구청에 넘겨요. 그다음은 구청이 정해요."
"상자요. 그래, 상자."
허영철 씨는 손수건을 도로 코에 댔는데, 이번에는 내 눈치를 살피며 아주 천천히 갖다 댔다.
"그 상자는 누가 가져가요?"
"구청 담당자가 와요. 오기 전까지는 저희가 보관해요."
"내 집에 두는 건 아니고?"
"아니에요."
허영철 씨는 그 대답을 듣고 나서야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냉장고에 우유가 아홉 개 있었어요. 누가 넣어 주셨어요?"
"우유? 아, 구청 우유. 혼자 사는 노인네들 문고리에 걸어 주는 거 있어요. 난 몰라요."
"관리는요?"
"관리는 한결에서 하지. 나는 월세만 받고."
묻지도 않았는데 허영철 씨가 한마디를 더 얹었다.
"월세도 관리비도 한 번을 안 밀렸어요. 자동이체로 꼬박꼬박 들어왔는데 내가 뭘 알았겠어요."
"돌아가신 뒤에도요?"
"들어왔으니까 몰랐지."
나는 수첩에 관리비, 자동이체, 사망 뒤에도, 하고 받아 적었다.
"여기 얼마나 사셨어요?"
"7년? 택시 할 때부터 살았으니까. 면허 팔고 나서는 새벽마다 건물 청소 다녔고."
허영철 씨가 손수건 너머로 웅얼거렸다.
"조용한 양반이었어요. 문제 한 번 안 일으키고."
문제를 안 일으킨 사람이 3주를 혼자 누워 있었던 셈이다. 물론 그 말은 수첩에 적지 않았다.
"누가 처음 알았어요?"
"1층 세탁소 아줌마. 전화가 왔더라고. 냄새가 나서요, 그러더라고. 그래서 경찰 불렀지."
허영철 씨가 계단 위, 세탁소 쪽을 올려다보며 혀를 찼다.
"3주를 몰랐대. 한 건물에서."
나한테 하는 말은 아니었다. 사실 3주를 몰랐던 건 집주인도 마찬가지였다. 허영철 씨는 계단을 두 칸씩 성큼성큼 올라가더니, 다 올라가서야 손수건을 코에서 뗐다.
계단참의 진우는 봉투를 접던 손을 놓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봉투 스무 장 다 접었어요, 진우 씨?"
진우가 허둥지둥 봉투를 다시 접기 시작하는 동안, 나는 방으로 돌아가 우유를 냉장고 문 칸에 도로 넣었다. 버리지 않고, 날짜 순서대로, 원래 있던 자리에.
사무실에 돌아온 건 다섯 시가 넘어서였다. 상도동에서 먼저 온 반장님은 믹스커피를 앞에 두고 있었다.
사장님은 휴대폰 두 대를 번갈아 귀에 대는 중이었는데, 그중 한 대에서 허영철 씨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네, 사장님, 그럼요, 그럼요. 근데 사장님, 바닥이 콘크리트까지 갔으면요, 저도 깎아 드리고 싶은데 콘크리트가 안 깎여요. 네에, 네에.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자마자 사장님은 계산기부터 두드렸다.
"50 깎아 달래. 한결 건물이라 딱 자를 수도 없고. 사 할."
"사장님."
진우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 오늘 점심 먹은 거 전부 그 계단에 두고 왔어요."
"그럼 폐기물 처리비를 따로 받아야겠네. 너 몇 키로 나왔니?"
진우가 입을 벌린 채 굳었을 때, 사장님은 벌써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뒤였다.
"얘, 첫 단독은 어땠어?"
"……괜찮았어요."
"괜찮았으면 됐어. 김밥은 내일 내가 산다. 한 줄."
"한 줄이요?"
"둘이 나눠 먹어. 첫 단독은 원래 반 줄씩이야."
나는 싱크대에서 손을 씻었다. 비누를 한 번 칠하고 헹군 다음 한 번 더 칠했고, 세 번째로 비누를 집으려는데 거울 속에서 반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반장님은 눈을 피하지 않았고, 나는 세 번째 비누칠을 마저 끝냈다.
물소리 너머로 사장님이 진우에게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오존기니 밤새니 하는 말만 띄엄띄엄 들렸다. 진우는 네네, 하면서도 눈은 휴대폰에 가 있었다.
"사장님, 그 집 냉장고에 우유가 아홉 개 있었어요. 날짜가 전부 돌아가신 뒤예요."
"구청 우유 아니니? 그 동네 그거 한다더라. 누가 끊어 줘야 끊기지."
"문고리가 아니라 냉장고 안에 있었어요."
사장님이 계산기에서 손을 떼고 잠깐 나를 쳐다보더니, 다시 두드리기 시작했다.
"우유는 견적에 없어."
반장님이 종이컵을 구기는 사이, 수건에 손을 닦던 나는 손끝이 하얗게 불어 있는 걸 알았다.
반장님이 먼저 일어났다. 나가면서 싱크대 옆에 있던 핸드크림을 내 쪽으로 슥 밀어 두었는데, 그러면서도 한마디 말은 없었다.

원룸은 신림동 4층이었다. 창을 열면 손을 뻗어 닿을 만한 거리에서 옆 건물 벽이 시야를 막았다.
편의점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뚜껑을 열자 김이 올라왔고, 그와 동시에 휴대폰이 울렸다.
[소희] 밥은?
[서유나] 먹는 중. 편의점 제육.
[소희] 그거 달고 짜. 맵진 않아. 고기는 생강 쪽이고.
한 입 떠먹어 보니 짠맛과 단맛은 혀가 알아들었다. 생강은 딱 소희가 말해 준 만큼만 있었다.
[소희] 첫 혼자 현장이었잖아. 어땠어?
[서유나] 괜찮았어.
[소희] 서유나 괜찮았어는 안 괜찮았어인데.
[소희] 다음 쉬는 날 순댓국. 내가 살게. 말로 다 설명해 줄게.
답을 쓰다가 지운 끝에 엄지를 세운 그림 하나만 보냈다. 하긴 길게 써 봐야 소희는 다 읽어 낼 테니까. 도시락을 반쯤 먹었을 때 휴대폰이 또 울렸다.
[원룸 집주인] 서유나 씨, 8월 31일 계약 만료입니다. 재계약하시면 월세는 올려야 합니다. 이달 안에 의사 알려 주세요.
부동산 앱을 열어 신림동, 원룸, 월세 순으로 걸어 놓고 화면을 두 번 내려 보다가, 그대로 앱을 닫았다.
도시락 뚜껑도 덮었다. 솔직히 이달 안에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물을 꺼내려고 냉장고를 열었더니 생수 두 병과 소희가 지난주에 싸 준 김치통이 보였다. 먹을 거라곤 그게 전부인 셈이다.
나는 냉장고 문을 한동안 열어 둔 채 텅 빈 문 칸을 들여다보다가, 모터가 돌기 시작하고 나서야 문을 닫았다.
업무 수첩을 펴고, 낮에 급하게 적은 줄을 오늘 날짜 아래로 옮겨 적었다. 반장님 밑에서 일하는 동안 붙은 버릇인 셈이다.
「7월 6일 월요일. 봉천동 반지하. 우유 아홉 개, 개봉 없음. 안쪽부터 날짜 순. 관리비 자동이체, 사망 뒤에도.」
아홉 개. 수첩에 적힌 숫자를 다시 읽었다.
그때 진우에게서 문자가 왔다.
[진우] 누나ㅠㅠ 사장님이 오존기 밤새 돌려 두라고 하셨는데
[진우] 제가 전하는 걸 까먹었어요
[진우] 저 아직 사무실 앞이에요 같이 가요
봉천동에 다시 닿은 건 일곱 시였고, 해는 아직 길바닥 위에 머물러 있었다.
세탁소는 불이 꺼져 있었다. 계단 아래 문 앞의 복숭아 방향제는 낮에 본 자리 그대로였고, 뚜껑도 반쯤 열린 채였다.
"저 여기 있을게요."
진우가 계단 중간에 주저앉자 휴대폰 불빛이 진우의 턱을 밑에서부터 비췄다.
"누나, 아까 물이요. 진짜 누나가 튼 거죠?"
"네."
"그쵸. 그렇겠죠."
진우는 그 말을 두 번 하고는 휴대폰으로 눈을 돌렸다. 나는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낀 다음 문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19시 05분. 재입실. 오존 발생기 가동.」
형광등을 켰다. 라면 김은 낮과 같았고, 파스도, 복숭아도 그대로였다.
천장 가까운 창으로 퇴근하는 발목들이 낮보다 느린 걸음으로 지나갔는데, 그중 운동화 하나가 창 앞에 떨어진 전단지를 밟고 지나갔다.
오존 발생기는 낮에 들여놓은 그대로 현관 안쪽에 있었다. 그걸 방 가운데로 옮기다가 벽 쪽에 개어 둔 이불을 건드렸고, 이불이 기우뚱하면서 뒤에 가려져 있던 콘센트가 드러났다.
콘센트에는 휴대폰 충전기가 꽂혀 있었다. 흰 선이 장판 위로 늘어졌는데, 선 끝은 아무것에도 이어져 있지 않았다.
머리맡이었다. 누우면 손이 닿는 자리였다.
나는 오존 발생기 타이머를 여덟 시간에 맞추고, 팬이 돌기 시작하는 걸 확인했다.
"진우 씨, 낮에 방에서 휴대폰 봤어요?"
"폰이요? 저 방 안에 안 들어갔잖아요."
"집주인분은요?"
"그 아저씨요? 문턱도 안 넘었는데요. 손수건만 계속 댔잖아요."
나는 방을 다시 훑었다. 의자 위에도 싱크대 선반에도 없었고, 설마 하는 마음에 냉장고 위까지 손을 넣어 더듬어 봤다.
휴대폰은 없었다.
수첩 맨 아래에 휴대폰 없음, 충전기 있음, 하고 적어 넣었는데, 볼펜 끝이 종이를 두 번 헛긁고 나서야 글자가 나왔다.
충전기는 뽑지 않고 꽂힌 그대로 사진을 두 장 찍었다. 한 장은 콘센트, 한 장은 선 끝이었다.
오존 발생기가 방 한가운데서 돌면서 팬 소리가 냉장고 모터 소리를 덮어 버렸다.
누운 사람이 손을 뻗으면 닿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휴대폰만 걸어 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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