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3. 도어락
문 앞이 비어 있었다.
계단 아래, 어제까지 방향제가 놓여 있던 자리였다.
「7월 7일 화요일. 08시 30분. 봉천동 반지하. 문 앞 방향제 없음.」
휴대폰을 꺼내 어제 사진을 열었다. 사진 속에서는 뚜껑이 반쯤 열린 복숭아 방향제가 문 앞 오른쪽 구석을 분명히 차지하고 있었다. 화면을 내리고 문 앞을 확인했다가,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집주인이 치웠겠죠. 어제 되게 싫어하던데."
진우가 폐기물 봉투 묶음을 든 채 하품 섞인 소리로 말했다.
"어제 일곱 시에는 있었어요."
"그럼 밤에 치웠겠죠."
"문턱도 안 넘는 분이요?"
진우는 하품을 하다 말고 계단 위를 올려다봤다. 세탁소는 아직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나는 문 앞에 쪼그려 앉아 바닥을 살폈다. 바닥은 바싹 말라 있었고, 방향제가 쓰러졌거나 쏟아진 자국도 없었다. 누가 손으로 들어서 가져간 자리라는 얘기였다. 빈자리를 어제와 같은 각도로 한 장 찍었다.
계단 위에서 셔터 올라가는 소리가 나더니, 세탁소 아주머니가 막대기로 셔터 고리를 밀어 올리고 있었다. 나는 계단을 올라갔다.
"안녕하세요. 어젯밤에 혹시 누가 저 아래 다녀갔어요?"
"나 일곱 시에 닫았어. 그 뒤엔 몰라."
아주머니가 막대기를 벽에 기대 세우며 되물었다.
"왜, 뭐 없어졌어?"
"문 앞에 있던 방향제요."
"그 복숭아? 그거 한참 있었는데. 누가 갖다 놨나 했지."
"한참이요?"
"몰라, 한 주? 두 주? 냄새 덮으려고 집주인이 놨나 했어."
아주머니는 그 말만 남기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고, 곧 다리미 전원이 켜지는 소리가 났다. 하긴 남의 집 문 앞을 날짜까지 세어 가며 볼 사람은 없을 거다.
어제 문을 열면서 옆 배관으로 옮겨 건 은색 보랭 주머니에는 우유 대리점 스티커가 붙어 있었는데, 구청 로고 아래로 '안부 우유'라는 글자와 전화번호가 인쇄돼 있었다.
주머니 안은 텅 비었다.
현관 옆 벽에 달린 우편함에서 반지하 칸을 열어 보니, 수도 요금 고지서 한 통과 구청 소식지 한 부가 다였다.
바로 옆 2층 칸은 뚜껑 틈으로 전단지가 한 뭉치 삐져나왔는데, 맨 위에 치킨집 전단지가 얹혀 있었다.
3주였다. 그런데 전단지 쪼가리 하나 쌓이지 않은 3주였다.
우편함 뚜껑을 도로 닫으면서 보니, 옆 칸 손잡이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았는데 반지하 칸 손잡이만 깨끗했다.
나는 대리점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세 번 가고 여자가 받았다.
"네, 봉천 대리점입니다."
"안부 우유 배달 때문에요. 봉천동 반지하 한 집이요."
내가 주소를 부르자 저쪽에서 장부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아, 김영수 어르신. 연락받았어요. 너무 안됐어요."
여자의 목소리가 잠깐 가라앉았다가 다시 돌아왔다.
"월수금 드렸고요, 7월 1일까지 매번 가져가셨어요. 3일에 연락받고 끊었어요."
"가져가셨다는 건 어떻게 아세요?"
"다음 배달 때 주머니가 비어 있으면 드신 거예요. 그대로 걸려 있으면 저희가 바로 주민센터에 연락드리고요. 그게 이 사업이라서요."
여자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덧붙였다.
"그런데 매번 비어 있었어요. 그래서 저희도 몰랐어요. 정말이에요."
"혹시 배달하시는 분이 문 앞에 방향제 있는 거 보셨을까요?"
"방향제요? 글쎄요. 기사님한테 여쭤봐 드릴까요?"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수첩을 폈다.
월, 수, 금. 주머니는 매번 비었지만, 우유는 하나도 따지 않은 채 아홉 개가 냉장고 문 칸에 날짜 순서대로 들어 있었다.
누가 주머니에서 우유를 꺼내 냉장고로 옮긴 거다. 3주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누나, 누구랑 통화했어요?"
"대리점이요."
"뭐래요?"
"우유는 누가 매번 꺼내 갔대요."
진우가 봉투 묶음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누가요?"
"모르겠어요."
"아니, 그럼 누가 3주 동안 여기 왔다 갔다는 거예요? 안에 사람이 저러고 있는데?"
나는 아무 말 없이 문을 쳐다봤고, 진우도 덩달아 문으로 눈을 돌렸다. 문은 어제 내가 닫아 둔 그대로 닫혀 있었다.

방호복을 입고 문 앞에서 고개를 숙인 다음 문을 열었다.
라면 김은 어제보다 한 겹 얇아졌고, 파스도 복숭아도 한 발씩 물러나 있었다. 밤새 돌던 오존 발생기는 방 가운데서 조용히 꺼진 채였다.
욕실 수도는 잠잠했다. 문턱에 서서 수도꼭지를 한참 노려보았지만 물은 나오지 않았다.
휴대폰부터 찾았다. 머리맡 충전기는 어제 사진과 똑같이 꽂혀 있었고, 나는 이불을 한 채씩 들어 털고 베갯잇 안에까지 손을 넣어 보았다.
싱크대 밑은 배관 뒤까지 더듬었다. 신발장에는 운동화 한 켤레뿐이었고, 서랍은 세 칸이었다.
맨 아래 서랍에서 고무줄로 묶은 명함 묶음이 나왔다. 김영수라는 이름과 휴대폰 번호가 찍힌 개인택시 명함이었다. 아마 손님에게 하나씩 건네던 것들이라 모서리가 다 닳아 둥글어진 걸 거다.
휴대폰은 없었다.
명함 한 장을 빼서 번호를 수첩에 옮겨 적었다. 현장에서 나온 번호는 일단 적어 두는 버릇이 있었는데, 병원에서 간호기록을 쓰던 손이 아직 그렇게 움직이는 셈이었다.
명함은 도로 묶어 유품 상자에 넣었다. 상자에는 이제 방석과 명함 묶음이 들어갔고, 요일 약통은 아직 선반 위에 그대로였다.
"누나, 폰은 경찰이 가져갔겠죠. 원래 그런 거 가져가잖아요."
진우가 문턱 밖에서 말했다.
"그럴 수도 있어요."
다시 머리맡을 훑어봐도 충전기 선 끝은 여전히 아무것도 물지 않은 채였다.
점심은 사무실 1층 김밥집이었고, 사장님은 약속대로 김밥 한 줄을 시켰다.
"첫 단독 기념이야. 한 줄에 4,500원. 둘이 반 줄씩. 반장 몫은 없어. 반장은 첫 단독이 아니니까."
"사장님, 저 이거 못 먹을 것 같은데요."
진우는 참기름 냄새만 맡아도 계단이 생각난다면서 김밥 접시를 내 쪽으로 밀었다.
"그럼 너는 반 줄 손해야. 유나야, 다 먹어."
그래도 나는 김밥을 먹었다. 밥알이 씹히고 단무지는 짰는데, 냄새는 진우의 일그러진 얼굴이 대신 알려 줬다.
사장님은 내 접시를 보다가 뭔가 생각난 듯 손뼉을 쳤다.
"참, 허 사장이 어제 전화로 너 칭찬하더라. 그 아가씨 무섭다고. 무서운 게 칭찬이야, 우리 업계에선. 청소비도 50 깎아 달라던 거 30으로 막았어. 이게 다 네 덕이야."
"그럼 저는요?"
진우가 물었다.
"너는 계단 덕이지."
사장님은 계산기 대신 휴대폰 두 대를 번갈아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얘, 경찰에 물어봤어. 폰은 현장에 없었대. 어디 흘렸겠지.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 폰 잃어버리는 거 흔해."
"경찰도 못 봤대요?"
"못 봤대. 충전기만 있더래. 그러니까 그건 네 일이 아니야. 네 일은 바닥이야."
"사장님, 그 집 현관 번호는 어디서 받으셨어요?"
"실장님이 문자로 줬지. 한결 건물은 번호를 다 관리실에서 줘. 편하잖아. 집주인한테 전화 안 해도 되고."
사장님이 휴대폰 한 대를 들어 흔들었다.
"그런 거래처가 사 할이야, 얘."
나는 마지막 김밥을 입에 넣었다. 단무지가 짰다. 수첩에 적어 둔 김영수, 개인택시, 그 번호로 전화를 걸면 어디선가 울리기는 할까. 설마 울린다면, 그건 누구 손에서 울리는 걸까. 나는 끝내 전화를 걸지 않았다.
「7월 7일 화요일. 14시 10분. 재입실. 장판 걷기 전.」
진우는 계단참에서 커터칼 날을 갈았다. 장판은 가장자리부터 칼집을 넣어 오염된 면이 안으로 가도록 말아야 하는데, 그건 진우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방 가운데, 윤곽의 둘레로 가서 섰다.
장판을 걷기 전에, 한 번만 더.
마스크 안으로 숨을 들이쉬었다.
라면 김이 두꺼워지더니, 그 뒤로 목마름이 밀려왔다.
입안이 말라 혀가 입천장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물을 마시러 가야 했는데도 몸이 장판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무거운 등을 바닥에 붙인 채 누워서 한참을 버텼다.
더위는 바닥에서 올라오지 않고 천장 밑에 고였는데, 몸을 뒤척일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머리맡에서 휴대폰 화면이 한 번 밝아졌다가 꺼졌다. 손을 뻗을 힘이 없었고, 화면은 그 뒤로 다시 켜지지 않았다.
천장에는 비가 오면 넓어지고 볕이 들면 줄어들던 누런 얼룩이 번져 있었다. 그 얼룩을 올려다보며 몇 번이고 잠이 들었다가 깼다.

창 쪽으로 발소리가 아주 멀리 지나갔다. 샌들이 끌리는 소리, 구두 굽이 박히는 소리가 이어졌지만, 누구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목마름은 사흘째였다. 게다가 무릎 파스는 말라서 가장자리부터 들뜨기 시작했다.
그때 문밖에서 소리가 났다.
삑 소리는 나지 않았다. 버튼이 눌리는 작은 소리만 났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누운 몸이 그 소리를 세고 있었다. 셀 힘은 있었지만, 대답할 힘은 없었다.
철컥, 하고 걸쇠에서 쇠가 빠지는 소리가 나자 문틈으로 더운 바깥 공기가 한 줄 스며들었다.
문이 열렸다.
거기서 조각이 끊겼다.
나는 장판 위에 서 있었다. 무릎이 떨리고, 장갑 낀 손바닥이 땀에 젖어 미끄러웠다. 시계를 보니 2시 31분이었으니, 입실하고 20분 동안 나는 한 발짝도 떼지 않고 거기 박혀 있었던 거다.
김영수 씨는 누운 채로 그 소리를 들었다.
"누나? 커터칼 다 갈았는데요. 들어가도 돼요?"
계단에서 진우가 불렀다.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는데, 목이 말라 첫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직이요. 잠깐만요."
나는 현관으로 걸어가 도어락 앞에 얼굴을 바짝 댔다.
숫자판 위로 작은 스티커가 하나 보였다. 햇볕에 바래 흐려진 글씨를 겨우 읽어 냈다.
'비상시 관리실 연락. 번호 분실 시 관리실로.'
나는 수첩 첫 장을 폈다. 거기에 견적서 귀퉁이에서 옮겨 적은 여섯 자리가 있었다. 사장님이 한결 관리실에서 받아 온 번호였다.
어제 나도 그 번호로 이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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