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4. 복숭아
오존 발생기가 두 대로 늘었다. 새로 온 한 대는 반장님이 아침에 상도동에서 택시로 싣고 온 것으로, 반장님은 오전만 이쪽을 거들기로 했다.
반장님은 계단을 다 내려와 문 앞에서 고개를 숙였는데, 나보다 조금 더 길게 숙인 다음 목장갑을 두 번 털고 안으로 들어갔다.
"장판."
반장님이 한 말은 그게 다였다.
어제 오후에 걷어 낸 장판 절반은 방 한쪽에 둘둘 말려 있었고, 남은 절반에 윤곽이 그대로였다.
반장님이 칼집을 넣으면 내가 말았다. 반장님의 칼은 윤곽 앞에서도 멈추는 법이 없었는데, 다만 그 자리를 지날 때만 조금 느려졌다.
장판을 들어내자 콘크리트가 나왔고, 반장님은 장갑 낀 손바닥으로 바닥을 쓸어 보았다.
"약 세 번."
스며든 자리는 약품을 세 번 먹이고 말려야 한다. 반장님은 뭐든 그렇게 짧게 끊어서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벽지는 진우 몫이었다. 창 쪽을 뜯어내자 곰팡이가 벽지 뒤까지 번져 있었고, 진우는 마스크 위로 코를 또 틀어막았다.
"반장님, 이거 벽 속까지 갔는데요."
"긁어."
진우가 스크레이퍼를 들고 한숨을 쉬더니 그대로 긁기 시작했다. 사실 반장님 앞에서는 진우도 말이 짧아지는 편이었다.
열한 시에는 냉장고를 비웠다. 김치통과 달걀 두 알을 봉투에 넣고 나니, 문 칸에는 우유 아홉 개만 내가 넣어 둔 순서대로 줄을 맞추고 남았다.
사진은 이미 찍어 두었으니 남길 것도 없었다. 나는 우유를 안쪽부터 하나씩 꺼내 봉투에 넣었다. 6월 22일, 6월 25일, 그리고 맨 앞의 7월 11일이 마지막이었다. 그동안 봉투 입구를 아홉 번 벌렸다가 오므렸다. 어차피 버릴 거였지만, 순서만큼은 지켜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반장님은 그걸 지켜보기만 했고, 무슨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점심 전에 유품 상자를 봉했다. 방석과 명함 묶음 위에 목요일 칸부터 알약이 든 요일 약통을 올리고, 테이프를 두 번 감은 뒤 겉에 봉천동, 김영수, 구청 인계라고 적었다.
반장님은 열두 시에 버스를 타러 나섰는데, 계단을 오르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서 씨."
"네."
반장님은 나를 내려다보다가 방 쪽으로 눈을 옮기더니, 그냥 올라가 버렸다.
"수고 많으세요."
한 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목소리가 먼저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계단 위에 남자가 하나 서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늘색 셔츠 소매를 두 번 접어 올렸고, 오른손 검지에 걸린 열쇠 꾸러미를 돌리고 있었다. 짤랑, 짤랑. 열쇠가 한 바퀴 돌 때마다 똑같은 소리가 났다.
계단참에 있던 진우가 벌떡 일어났다.
"아, 실장님."
"진우 씨죠? 더운데 고생 많아요. 하나 드세요."
실장님이 셔츠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진우 손바닥에 놓아 주자, 진우는 꾸벅 인사하고 냉큼 입에 넣었다.
그다음 실장님의 눈길이 내게로 왔다.
"유나 씨, 오랜만이에요. 이번엔 혼자 맡으셨다면서요. 대표님이 자랑하시더라고요."
"진우 씨랑 둘이에요."
"그래도요. 유나 씨, 깔끔하게 부탁해요. 허 사장님이 다음 달에 바로 사람 들이신대요. 도배는 저희 쪽 업체가 할 거고요."
실장님은 계단을 다 내려와 문턱 앞에 섰다. 콘크리트가 드러난 바닥과 뜯겨 나간 벽지를 차례로 훑어보면서도, 문턱만은 넘지 않았다.

"그 방은 오늘 끝나요?"
"오존까지 하면 오늘 끝나요."
"역시 빠르네. 말끔은 믿고 맡겨요."
열쇠 꾸러미가 손가락에서 한 바퀴 돌았다.
"아, 그리고 혹시 휴대폰은 나왔어요? 유족 연락이라도 하려면요. 저희도 계약서에 비상 연락처가 없어서요."
"없었어요."
"그래요? 경찰도 없다더니. 어디 두셨나 보네."
실장님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안타깝다는 얼굴을 했다. 그러다 계단 옆에 봉해 둔 상자로 눈을 내렸다.
"유품은 그게 다예요?"
"네. 구청에 인계해요. 상자 하나예요."
"상자 하나. 그렇죠. 혼자 사시면 다 그래요."
실장님은 상자 겉에 적힌 글씨를 잠깐 읽는 듯하더니, 다시 나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유나 씨는 이 더위에 괜찮아요? 여긴 에어컨도 없잖아요."
"괜찮아요. 그런데 냉장고에 우유가 아홉 개 있었어요. 날짜가 다 돌아가신 뒤였어요."
"아, 구청 안부 우유요? 그거 배달원이 문고리에 걸어 두면 어르신들이 알아서 넣어 드세요. 그 방 어르신도 그러셨겠죠."
그렇게 말하는 사이 실장님의 휴대폰이 울렸다.
"네, 한결입니다. 네, 네. 지금 갑니다."
실장님이 휴대폰을 귀에서 떼고 내게 웃어 보였다.
"오존 돌리실 거죠? 문 닫아 둘게요."
실장님은 문을 닫고 나서 손잡이를 쥔 채로 한 번 당겨 보고, 한 번 더 당겨 봤다. 그러고 나서야 계단을 올라갔다. 짤랑, 짤랑.
진우가 입안에서 사탕을 굴리며 감탄했다.
"실장님 진짜 친절하시다. 우리 이름 다 외우시네."
"그러게요."
나는 오존 발생기 두 대의 타이머를 네 시간에 맞췄다. 웅, 하는 소리가 반지하 벽에 부딪혀 두 겹으로 울렸다.
다섯 시 반에 타이머가 꺼졌다.
진우가 계단을 두 칸 내려와서 코를 킁킁거렸다.
"누나, 이제 거의 안 나요. 계단까지는 진짜 하나도 안 나요."
"들어가 볼래요?"
"그건 아니고요."
진우가 슬그머니 도로 두 칸 올라가는 동안 나는 마스크를 쓰고 문 앞에서 고개를 숙인 다음, 문을 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라면도, 파스도, 복숭아도 없었다. 문턱에 선 채로 숨을 한 번 더 쉬었고, 마스크를 턱 아래로 내리고 한 번 더 쉬었다.

없었다.
콘크리트 바닥은 약품이 마르면서 희끗하게 변했고, 벽은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래도 창으로 발목들이 지나가는 것만은 그대로였다.
나는 욕실로 가서 세면대 앞에 섰다. 수도꼭지 손잡이에 손을 얹고 기다리며 1분을 셌고, 2분을 셌다.
물은 나오지 않았다.
손을 떼고 보니 수도꼭지는 바싹 말라 있었다. 김영수 씨가 마지막으로 틀던 물은 여기서 끝난 셈이다.
나는 방 가운데로 돌아가 윤곽이 있던 자리, 이제는 그냥 콘크리트가 된 자리에 섰다. 그리고 거기 서서 아무 냄새도 없는 공기를 들이마셨다.
2년 동안 내가 살아온 세상이 그랬다.
방이 비었다.
"한결은 입금이 빨라."
사장님이 계산기를 두드리다 말고 휴대폰 화면을 내게 내밀었는데, 돈은 벌써 들어와 있었다. 반장님 자리는 비었다. 상도동이 늦게 끝난다고 했다.
"완료 보고 들어가자마자 들어왔어. 이런 데가 사 할이면 나는 두 발 뻗고 자."
"사장님, 실장님 사탕 드셔 보셨어요?"
진우가 불쑥 끼어들자, 사장님이 계산기에서 눈을 들었다.
"그 사탕 진짜 매워요. 입에 넣자마자 혀가 얼얼해요. 박하를 세 배로 넣었나 봐요. 저 아직도 혀가 없어요."
혀를 내밀고 손으로 부채질을 하던 진우가 갑자기 목소리를 한 톤 낮췄다.
"진우 씨죠? 하나 드세요."
"진우야, 너 그거 실장님 앞에서 하면 사 할 날아가."
사장님은 믹스커피 두 봉을 한 컵에 털어 넣으며 덧붙였다.
"그 양반 사탕은 공짜야. 공짜는 원래 매운 거야."
"그건 무슨 계산법이에요?"
"보험 계산법."
내가 가방을 챙기자, 사장님은 휴대폰에서 눈도 떼지 않고 손만 흔들었다.
"얘, 첫 단독 수고했다. 일찍 들어가."
원룸에 돌아와 불을 켜도 창밖은 여전히 옆 건물 벽이었고, 그 벽에 매달린 에어컨 실외기만 돌아가고 있었다.
씻고 나와서 업무 수첩을 처음부터 넘겼다.
4월 첫 장은 반장님을 따라간 첫 현장, 2년 만에 냄새를 맡은 날이었다. 그날 나는 문 앞에서 한참을 꼼짝 못 하고 섰다. 2년 동안 없던 것이 문틈으로 넘어왔고, 반장님은 인사부터 하라고 했다. 고개를 숙인 채로 숨을 오래 쉬는 동안, 반장님은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그 페이지 맨 아래에 작은 글씨가 있었다.
「4월 20일. 신림동 원룸. 고인 여성, 66세. 현관 방향제 — 복숭아?」
물음표만 붙여 놓고 넘어갔던 줄이다. 그때는 그게 고인의 냄새인지 방향제인지 몰랐던 거다.
페이지를 넘기자 고시원이 나오고 모텔이 나왔다. 5월은 현장이 몰려서 반장님 말을 받아 적느라 글씨가 엉망이었고, 나는 그 5월을 빠르게 넘겨 버렸다.
손이 6월에서 멎었다.
「6월 9일. 상도동 원룸. 고인 남성, 69세. 문 앞 젤 방향제.」
젤 방향제. 복숭아라고는 쓰지 않았다. 아마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무렵 수첩 뒤쪽 여백에 요즘 흔한 방향제, 천 원짜리, 하고 적어 둔 것도 나였다.
나는 볼펜을 쥐고 7월 6일 줄 옆에 표시를 했다. 하나, 둘, 셋.
시각을 적으려다 손이 멎었다. 지금이 몇 시인지 확인도 하지 않았다는 걸 그제야 알았고, 볼펜 끝이 종이 위에서 미끄러졌다.
솔직히 5월을 빠르게 넘긴 게 계속 걸렸다.
나는 일어나 싱크대에서 손을 씻었다. 비누를 세 번 칠하고 물을 잠근 다음 돌아와 앉았는데, 수첩은 6월이 펼쳐진 채였다.
다시 5월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한 줄씩 읽었다.
5월 첫 주, 둘째 주. 반장님 글씨를 흉내 낸 내 글씨가 비스듬히 기울었고, 약품 이름과 봉투 개수 사이사이로 트럭 출발 시각이 끼어들어 있었다. 셋째 주에서 손가락이 멎었다.
「5월 19일. 봉천동 한결빌 302호. 고인 남성, 44세. 보일러. 방향제 둘 — 복숭아. 보일러실 문 열림. 경보기 없음.」
그 페이지는 기억이 났다. 오래된 건물이었고 계단이 가팔랐다. 나는 그 방 장판을 뜯었고, 반장님은 보일러실 문을 닫았다.
실장님을 처음 본 날이었다. 계단 아래에서 박하사탕을 받은 바로 그날이었다.
방향제 둘, 복숭아. 분명 내 글씨였는데, 그날은 물음표조차 붙이지 않았다.
4월 신림동. 5월 봉천동 한결빌. 6월 상도동. 그리고 7월 6일 봉천동 반지하.
나는 7월 6일 줄 옆에 넷째 표시를 했다.
복숭아는 네 번째였다.
흔한 방향제라고 적은 건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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