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5. 저장
"쓰레기집은 평이 아니라 톤이야."
사장님이 계산기를 두드리며 말했다. 화이트보드에는 오늘 현장이 한 줄, 봉천동 단독주택이라고 적혔는데, 그 옆에 사장님 글씨로 '생존'이라는 두 글자가 덧붙었다.
수첩은 가방 안에 넣어 두었다. 표시 네 개가 그어진 페이지에는 볼펜을 끼워 놓았는데, 어젯밤 그 페이지를 덮고 나서 잠은 거의 자지 못했다.
"주민센터 통합사례관리 쪽 의뢰야. 할머니 혼자 사시는데 집이 물건으로 꽉 찼대. 주무관님이 한 달을 설득해서 겨우 동의받았대."
"산 사람이에요?"
진우가 물었는데,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 톤쯤 올라가 있었다.
"살아 계셔. 여든하나."
"와, 살았다."
진우가 가슴을 쓸어내리자 사장님이 계산기에서 눈을 들었다.
"너 지금 할머니 말고 너 살았다는 거지?"
"둘 다요. 둘 다 살았어요."
진우가 휴대폰을 꺼내 가로로 들었다.
"누나, 이건 찍어도 되죠? 쓰레기집 정리, 비포 애프터. 이거 쇼츠 각이에요. 사람도 안 돌아가셨고."
"찍지 마."
반장님이었다. 방호복 대신 목장갑과 두꺼운 작업복을 가방에 챙겨 넣던 반장님은 진우 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았다.
"사람이 사는 집이다."
진우는 휴대폰을 내렸다가, 미련이 남았는지 다시 들었다가 도로 내렸다. 사장님은 믹스커피를 홀짝이며 말을 이었다.
"톤당으로 받을 거야. 할머니는 한 푼도 안 내셔. 구청 예산이야. 그러니까 버리는 거 아끼지 마. 대신 할머니가 싫다는 건 한 개도 버리지 마."
"그건 무슨 계산이에요?"
"그건 계산 아니야."
사장님은 그렇게 잘라 말하고는 다시 계산기를 두드렸다.
「7월 9일 목요일. 09시 40분. 봉천동 단독주택. 의뢰인 여성, 81세. 생존.」
대문은 반만 열렸다. 안쪽에 쌓인 상자가 문짝을 받치고 있으니 더 열릴 수가 없는 거다.
마당도 물건 천지였다. 신문 뭉치와 빈 화분이 담장 높이까지 쌓였고, 그 사이로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만한 길이 현관까지 이어졌다.
마당 구석의 감나무 아래, 장독 뚜껑 위에는 아직 퍼런 풋감 몇 개가 올라가 있었다. 누가 일부러 주워서 올려 둔 것처럼 가지런한 모양새였다.
진우는 대문 안으로 한 발 들이자마자 헛구역질을 했고, 입을 막고 돌아서서 두 번 더 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은 산 사람의 집이었다.
현관 앞에는 몸이 작은 할머니가 꽃무늬 몸빼 바지에 팔토시를 끼고 버티고 있었는데, 한 손으로 현관 문틀을 짚은 채 우리를 노려보았다.
"버릴 거 없어."
할머니 옆에 있던 젊은 여자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목에 주민센터 출입증을 건 사람이었다.
"말끔에서 오셨죠? 이수정 주무관이에요. 어르신, 이분들이 오늘 도와주실 분들이에요."
"도와줄 거 없다니까."
이수정 주무관은 할머니 앞에서 무릎을 굽혀 할머니와 눈높이를 맞췄다.
"어르신, 버리는 거 아니에요. 어르신이 고르시는 거예요. 고르신 것만 나가요. 약속했잖아요."
할머니는 이수정 주무관을 한참 쳐다보다가 반장님 쪽으로 눈을 돌렸다. 반장님이 대문 안에서 고개를 숙였다.
"어르신, 손대지 말라는 건 손대지 않겠습니다."
그제야 할머니가 문틀에서 손을 뗐다.
거실 한가운데에 탑이 있었다.
요구르트 병으로 쌓은 탑이었다. 작은 플라스틱 병을 헹궈 말린 것들이 줄을 맞춰 쌓였는데, 맨 아래는 바닥에 닿았고 맨 위는 천장에 닿았다. 거실 벽을 따라 그런 탑이 세 개 더 있었다.
병은 하나같이 깨끗해서, 뚜껑 자리에 은박 한 조각 붙은 게 없었다.
반장님은 거실 입구에 비닐을 두 장 깔았다. 하나는 버릴 것, 하나는 둘 것. 그러고 나서 나를 쳐다봤는데, 할머니 옆은 네가 맡으라는 뜻이었다.
나는 할머니 옆에 쪼그려 앉아 탑 맨 아래 줄에서 병 하나를 빼냈다.
"어르신, 이건요?"
"그건 가게 문 닫던 날 거."
할머니가 병을 받아 들고 불빛에 비춰 보았다.
"시장에서 반찬가게를 30년 했어. 문 닫던 날 손님이 요구르트를 한 줄 사 왔어. 수고했다고."
할머니가 그 병을 '둘 것' 비닐 위에 놓는 사이, 나는 다음 병을 뺐다.
"이건요?"
"그이 칠순 때 거."
이번에도 '둘 것'이었다. 그다음 병은 할머니가 오래 들여다봤다.
"이건 김장하다 손 데인 날 거. 그날 손님이 요구르트를 발라 주라고 했어. 그게 무슨 약이라고."
할머니가 내민 손등에는, 엄지 아래로 오래된 흉터가 하얗게 남았다. 할머니는 그 병도 '둘 것'에 내려놓았다.
병 하나에 하루씩인 셈이다. 나는 다음 병을 뺐다.
"이건 몰라. 아무 날도 아니었을 거야."
할머니는 그 병을 손에 쥐고 있다가 '버릴 것' 비닐 위에 내려놓았다. 병은 비닐 위에서 한 번 굴렀다.
할머니가 탑을 올려다보았다.
"아무 날도 아닌 날 거는 버려도 돼."
그 말을 해 놓고 할머니는 한동안 탑만 바라보다가, 거실 구석에 있던 쌀 포대 하나를 끌어왔다. 포대 안에도 병이 가득했다.
"이거. 이거는 다 아무 날 거야."
할머니가 포대를 '버릴 것' 쪽으로 밀자, 할머니 등 뒤의 이수정 주무관이 입술을 깨물었다. 반장님은 그 포대를 들어 문밖으로 내갔다.
점심은 마당 평상에서 먹었다. 이수정 주무관이 도시락을 네 개 사 왔지만, 할머니는 부엌에서 따로 드셨다.
"한 달 동안 매주 왔어요. 처음엔 대문도 안 열어 주셨어요."
이수정 주무관이 젓가락을 든 채 입을 열었다.
"옆집에서 민원이 들어와서 시작한 거예요. 근데 오면 요구르트 얘기만 들어 드렸어요. 병마다 얘기가 있으시더라고요."
"오늘도 그렇게 하셨어요."
"네. 그래서 버리신 거예요."
이수정 주무관은 도시락을 반쯤 남긴 채 뚜껑을 닫았다. 진우는 그 도시락을 힐끔 쳐다봤다가 고개를 돌렸다. 사실 진우는 아직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두 시쯤 되자 거실 바닥이 절반쯤 드러났다.
진우는 마당에서 봉투를 묶었다. 헛구역질은 세 번째 봉투부터 잦아들었고, 거실에 들어올 때마다 요구르트 병 탑 사이를 옆걸음으로 비켜 다녔다.
네 번째로 지나가던 참이었다. 진우의 어깨가 탑 모서리에 스쳤다.
탑이 기울면서 위쪽 병들이 한꺼번에 딸그락거렸다.
먼저 움직인 건 할머니였다. 여든한 살 몸이 진우보다 빨랐다. 할머니는 두 손바닥으로 탑을 받쳐 세우고, 탑이 멈추자마자 한 손으로 진우 등을 철썩 쳤다.
"조심해!"
진우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할머니는 탑에서 손을 떼지 않고 병 하나 떨어지지 않은 걸 확인하고 나서야 숨을 내쉬더니, 방금 친 진우 등을 한 번 쓸어 주었다.

"……죄송합니다."
"아냐. 좁아서 그래. 내가 좁게 살아서."
그 뒤로 진우는 탑 옆을 지날 때마다 두 손을 가슴에 꼭 모았다.
나는 할머니를 따라 복도로 나갔다. 복도에도 물건이 있긴 했지만 거실만큼은 아니었고, 그 끝에 문이 하나 있었다.
문은 닫혀 있었고, 그 앞에만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바닥도 거기만 반질반질했다. 아마 매일 누가 닦는 자리일 거다.
"저 방은요?"
할머니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이 방은 손대지 마."
할머니는 그 말만 남기고 부엌으로 가 버렸고, 이수정 주무관이 그 뒤를 따라갔다.
나는 복도 끝에 혼자 남았다.
놋쇠 문손잡이에 손을 얹기는 했다. 물론 돌리지는 않았다. 반장님이 할머니와 한 약속이었으니까.
그때 문틈에서 무언가가 넘어왔다.
귤이었다.
손톱으로 껍질을 벗길 때 튀는 새콤한 기운에, 난로 위에 올려 말린 껍질의 달큰하고 매운 기운이 섞여 있었다. 한겨울의 귤, 창밖이 꽁꽁 언 밤의 귤이었다.
지금은 7월이었다. 거실에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고, 부엌에서도 마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문 뒤만 달랐다.
나는 문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장갑 낀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문틈의 귤은 내가 한 걸음 물러서자 조금 옅어졌다가, 한 걸음 다가서자 다시 짙어졌다.
"누나, 봉투 더 있어요?"
복도 입구에서 진우가 불렀다. 나는 대답을 하고 곧장 걸어 나왔다.
거실에서 반장님이 포대를 묶고 있었다. 반장님 등을 한참 지켜보다가 봉투 묶음을 집어 들었다. 솔직히 말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 집에서 귤 냄새가 난다고 말하면, 그다음에는 내가 왜 그걸 맡는지까지 말해야 할 테니까.
해가 담장 뒤로 넘어갈 무렵에야 일손을 놓았다.
마당 수돗가에서 장갑을 벗고 손을 씻는데 수돗물이 미지근했다. 반장님은 작업복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가 현관 쪽을 보고 도로 집어넣었다. 이수정 주무관은 먼저 주민센터로 돌아갔고, 진우는 대문 밖 트럭에 마지막 봉투를 싣는 중이었다.
현관에서 나온 할머니 손에는 요구르트 두 병이 들려 있었다. 하나는 나한테, 하나는 반장님한테 내밀었는데, 뚜껑 은박이 아직 그대로 붙은 새것이었다.
"먹어."
반장님이 두 손으로 받았고, 나도 그렇게 받았다.
할머니는 수돗가 턱에 걸터앉아 복도 끝 쪽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 창은 안쪽에서부터 짐으로 꽉 막혀 있었다.
"그이가 저 방에서 갔어."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10년 됐어. 겨울에. 난로 앞에서 자다가 그대로 갔어. 아침에 내가 귤 까 가지고 들어갔더니."
할머니는 거기서 말을 끝내지 않았고, 반장님은 요구르트 병을 쥔 채 그대로 굳었다.
이윽고 반장님이 일어나 막힌 창문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고개를 숙였다. 문 앞에서 숙일 때와 똑같이, 조금 길게.

할머니는 반장님의 등을 오래도록 올려다봤다.
그러고는 몸빼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끈 대신 빨간 털실이 묶인 작은 열쇠였다.
할머니가 그 열쇠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할머니의 손가락이 내 손을 한 번 감쌌다가 천천히 놓았다.
"내일은 그이 방도 해 줘."
나는 손바닥 위의 열쇠를 내려다보았다.
"그이 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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