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6. 난로
빨간 털실이 묶인 열쇠는 단번에 돌아가지 않았다. 다시 비틀고 나서야 안쪽에서 걸쇠가 풀렸다.
문을 열기 전에 고개를 숙이자 등 뒤에서 반장님도 따라 숙였다. 할머니는 복도 입구에 선 채 그런 우리를 보고만 있었다.
「7월 10일 금요일. 09시 20분. 단독주택 안방. 고인 남성, 2016년 겨울 사망. 창문 막힘.」
방은 어두웠는데, 창이 있어야 할 자리에 상자가 천장까지 쌓여 빛을 다 틀어막고 있었다. 상자 옆면마다 진공관, 스피커, 잡부품 같은 글씨가 매직으로 적혀 있었다. 아마 전파사에서나 쓸 물건들일 거다.
반장님이 손전등을 켜자 빛줄기가 벽을 따라 방을 훑고 지나갔다.
벽에 붙여 깔린 이불은 반쯤 개다 만 모양이라, 위쪽 절반은 접혀 있고 아래쪽은 그대로 펼쳐진 채였다.
그 위에 앉은 먼지는 주름을 따라 두께가 달랐다. 이불이 제 모양 그대로 회색 한 겹을 덮어쓴 셈이다.
머리맡에는 가죽 덮개가 해진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있었고, 방 가운데에는 둥근 몸통에 녹이 슨 등유 난로가 버티고 있었다.
난로 옆에 대나무 소쿠리가 하나 있었다.
소쿠리에는 말린 귤껍질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맨 아래 껍질은 갈색으로 바스러져 가루가 되었고, 위로 올라갈수록 색이 밝아지다가 맨 위에서는 아직 주황빛이 돌았다.
열 겹쯤 되어 보였다. 열 번의 겨울이었다.
"겨울마다 들어오셨나 봅니다."
반장님이 소쿠리를 내려다보며 말하자 복도에서 할머니가 대답했다.
"그이 귤 좋아했어."
할머니는 그 말만 남기고 부엌 쪽으로 사라졌다.
반소매 차림의 진우가 방호복도 없이 복도 끝에서 방 안을 기웃거렸다.
"여긴 괜찮죠? 10년이면 아무것도 없잖아요."
"괜찮아요."
"그쵸. 그냥 먼지 냄새만 나요. 할머니 집 냄새."
진우는 안심한 얼굴로 들어와 상자 하나를 들어 올렸다. 진우에게는 그냥 먼지였을 거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니었다.
반장님이 상자를 빼러 복도로 나간 사이, 나는 방 가운데로 걸어가 난로 앞에 섰다.
난로 앞에 서자마자 귤이 몸을 감쌌다.
어제 문틈으로 맡던 것보다 훨씬 짙었다. 손톱 밑에 스민 새콤함 아래로, 난로 위에서 데워진 껍질의 달큰함이 넓게 깔려 있었다.
그리고 따뜻했다.
한겨울 밤이었다. 발끝이 난로 쪽을 향했고, 이불 위로 올라오는 온기가 무릎께까지 차올랐다.
그때 손바닥에 무언가가 놓였는데, 방금 깐 귤이었다. 껍질은 다 벗겨지고 하얀 실까지 말끔히 떼어져 있었다. 누가 그렇게까지 공들여 까 준 거다.

머리맡 라디오에서는 트로트가 작은 볼륨으로 흘렀고, 가수의 목소리가 잡음 사이로 들어왔다 나갔다 했다.
귤 한 쪽을 입에 넣었다. 달았다.
눈꺼풀이 무거워지면서 이마 안쪽이 둔하게 조였다. 머리가 조금 아팠지만 일어나기는 싫었다. 따뜻했고 귤이 있었다. 게다가 노래도 있었다.
한 쪽을 더 넣고 씹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난로 앞에 그대로였고, 장갑 속 손가락이 차가웠다. 사실 7월이라 방 안 기온은 30도를 훌쩍 넘었다. 손가락만 겨울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장갑 끝을 잡아당겼다. 한 번, 두 번.
"서 씨, 상자."
복도에서 부르는 소리에 대답하고 상자 쪽으로 갔지만, 첫 상자를 들어 올릴 때까지도 손가락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점심은 대문 밖 골목, 트럭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먹었다. 메뉴는 반장님이 골목 입구 분식집에서 사 온 주먹밥이었다.
그러다 할머니가 요구르트를 줄째로 들고 대문을 나와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먹어. 밥 먹고 먹어."
할머니가 요구르트 하나를 따서 진우 입에 물리자, 진우는 병을 문 채로 항복하듯 손을 들어 올렸다.
"할머니, 저 이거 서른 개째예요. 어제부터요."
"서른 개면 한 달이야. 젊은 사람이 한 달 치도 못 먹어?"
"저 배 속에 요구르트 공장 생겼어요."
할머니는 못 들은 척 하나를 더 땄고, 진우는 결국 그것도 받아 들었다. 주먹밥을 씹던 반장님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어깨가 들썩이는 게 웃음을 참는 눈치였다.
할머니는 돗자리 끝에 앉아 요구르트 병을 손안에서 굴렸다.
"그이는 전파사 했어. 시장 입구에서. 라디오도 고치고 테레비도 고치고. 동네 고장 난 건 다 그이 손을 탔어."
"안방 라디오도요?"
"그건 그이가 버려진 걸 주워다 고친 거야. 40년을 썼어. 밤마다 머리맡에 틀어 놓고 잤어."
병을 굴리던 할머니의 손이 거기서 멎었다.
"그이는 귤을 자기 손으로 안 깠어. 손이 기름투성이라고. 내가 까서 손에 쥐여 주면 먹었지. 하얀 실까지 다 떼 줘야 먹었어. 까다로운 양반이야."
나는 주먹밥을 쥔 채로 가만있었다. 손바닥에 귤 한 쪽의 무게가 아직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오후에는 창을 막고 있던 상자 스물두 개를 전부 빼냈다. 할머니는 상자가 나올 때마다 와서 골랐고, 진공관 상자 하나만 '둘 것'에 놓고 나머지는 다 내보냈다.
이불과 라디오와 귤껍질 소쿠리도 '둘 것'이었다. 그러다 난로 앞에서 할머니가 걸음을 멈췄다.
"난로는 둬. 겨울에 또 써야 돼."
"어르신, 이 난로는 오래됐습니다."
반장님의 말에 할머니가 고개를 들어 반장님을 올려다보았다.
"그이가 쓰던 거야."
반장님은 그 이상 말을 보태지 않았다. 할머니는 난로 손잡이를 손바닥으로 쓸어 보고 그것을 복도에 내놓았다.
마지막 상자가 빠지자 드디어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장님이 창틀에 손을 얹은 채 할머니를 돌아보았다.
"어르신, 열겠습니다."
할머니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고, 반장님은 창틀에 낀 먼지를 털어 낸 다음 창을 열었다.
10년 만에 들어오는 바람이었는데, 그게 하필 7월의 더운 바람이었다.
귤은 바람이 들 때마다 한 겹씩 벗겨지며 옅어졌다. 소쿠리가 나가고 이불이 나가자 또 한 겹이 벗겨졌고, 방바닥까지 닦고 나니 거의 남은 게 없었다.
나는 빈 방 가운데, 난로가 있던 자리에 서서 그 마지막 한 겹을 붙잡고 있었다.
"서 씨."
어느새 반장님이 문간에 와 있었는데, 그 눈이 내 손에 가 있었다. 따라 내려다보니 걸레를 쥔 손끝이 떨렸다.
"오래 있지 마."
반장님은 그 말만 하고 복도로 나갔다. 걸레를 양동이에 넣고 손을 주먹 쥐었다 폈다 해 봤지만, 떨림은 한참이 지나서야 멎었다.
네 시가 되자 트럭에 짐을 싣기 시작했다.
반장님은 골목 끝에서 사장님과 통화하며 폐기물 업체 시간을 맞추는 중이었다. 진우가 짐칸 위에서 봉투를 받는 동안, 나는 마당에 쌓인 봉투를 들고 대문과 트럭 사이를 오갔다.
"누나, 오늘 얼굴 하얘요. 거기 그냥 먼지 방이잖아요."
봉투를 받아 들며 진우가 말했다.
"먼지가 많았어요."
"먼지로 얼굴이 하얘져요?"
나는 대답 대신 봉투를 넘겼다. 남은 봉투 두 개는 현관 안쪽에 있었는데,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을 때였다.
복도 끝에서 귤이 밀려 나왔다.
오전에 난로 앞에서 맡던 것보다도 짙었다. 게다가 방금 치워서 한 겹도 남지 않았어야 할 안방 쪽이었다.
복도에 내놓았던 '둘 것'이 보이지 않았다. 이불도, 난로도 없었다.
"누나?"
대문 쪽에서 진우가 불렀지만, 나는 봉투를 내려놓고 신발을 신은 채로 복도를 내달렸다.
안방 문은 닫혀 있었다.
손잡이를 돌리니 잠겨 있지는 않았는데, 문이 열리는 순간 열기가 얼굴을 덮치면서 방 안 가득 찬 귤이 쏟아져 나왔다.
창은 다시 막혀 있었다. '둘 것'으로 남긴 진공관 상자와 복도의 짐이 창 앞에 도로 쌓였다. 방 가운데에서는 난로가 타면서 둥근 몸통 안쪽이 주황색으로 달아올랐다.
이불은 아까처럼 벽에 붙여 반쯤 개다 만 모양으로 깔렸고, 할머니가 그 안에 몸을 묻고 있었다. 머리맡에서는 켜진 라디오가 트로트를 작게 흘려보냈다.
할머니가 눈을 반쯤 떴다.
"그이가 추워서."
할머니의 이마는 땀에 젖었고 입술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나는 난로부터 껐다. 불꽃이 잦아들기를 기다릴 틈도 없이 창 앞 상자를 두 개씩 들어 복도로 던지고 창을 열었다. 그다음 할머니 겨드랑이에 팔을 넣어 일으켜 세웠다.
"어르신, 나가요. 마당으로 나가요."
다행히 할머니는 가볍게 일어났고, 한 손으로는 라디오를 챙겨 들었다. 할머니를 부축해 마당 평상에 앉히고 나니, 진우가 물을 들고 뛰어왔고 반장님도 전화를 끊고 들어왔다.
할머니가 물을 마셨다. 한 모금, 두 모금. 그동안 입술에 핏기가 천천히 돌아왔다.
반장님은 할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손목을 짚으며 눈을 들여다보았는데, 그 손놀림이 빠르고 정확했다.

"어르신, 머리 아프십니까?"
"조금."
"속은 메스꺼우십니까?"
"아니. 괜찮아. 잠깐 존 거야."
"병원에 가십시다."
"안 가."
할머니가 라디오를 무릎에 끌어안자, 반장님은 손목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로 다른 손으로 휴대폰을 꺼냈다.
"주무관님께 연락드리겠습니다."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라디오 볼륨 다이얼만 만지작거렸다.
"그이가 추워서 그랬어. 방이 휑해서."
「16시 41분. 안방 난로 가동 발견. 의뢰인 이불 속. 소화, 환기, 마당으로 대피. 의식 있음.」
진우가 평상 옆에 쪼그려 앉았는데, 숨이 아직 가빴다.
"누나, 어떻게 알았어요? 할머니 들어가신 거."
"……부르는 소리가 났어요."
"저는 못 들었는데. 저 대문 앞에 있었는데."
진우의 시선이 내게 와 박혔지만, 나는 할머니 무릎 위의 라디오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귤이 없었다.
난로가 꺼지고 창이 열린 그 순간이었다. 이번엔 한 겹씩 벗겨진 게 아니라, 불을 끈 것처럼 단번에 꺼져 버렸다.
고개를 들어 안방 창을 올려다보니, 열린 창으로 7월의 바람만 드나들 뿐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오늘 오후에 나는 그 방을 다 치웠다. 치운 방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는 법이다. 4월부터 거쳐 온 열두 곳이 다 그랬다.
그런데 치운 방에서 냄새가 돌아왔다.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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