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1. 셔츠
"잠깐만요! 잡아 주세요!"
닫히던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한지우가 몸을 던졌다.
문은 열렸다. 지우의 발은 멈추지 않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정확히 남자의 셔츠 한가운데에 떨어졌다.
엘리베이터에는 둘뿐이었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괜찮은 얼굴이 아니었다.
흰 셔츠 위로 갈색 얼룩이 번져 나갔다. 얼음 세 알이 남자의 구두 앞에서 멈췄다.
지우는 빈 컵을 든 채 굳어 있었다.
입사 8일 차. 사원증 사진이 아직 남의 얼굴 같은 수습사원.
"세탁비 드릴게요."
"됐습니다."
"그럼 셔츠를 사 드릴게요. 아니, 제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고요……."
"됐다니까요."
8층. 9층. 10층.
남자가 지우의 사원증을 봤다. 지우도 남자의 사원증을 봤다.
마케팅전략팀 서도현.
마케팅전략팀 한지우.
11층에서는 아무도 타지 않았다. 지우는 그게 제일 원망스러웠다.

12층 마케팅전략팀.
지우의 자리는 그 남자 바로 옆이었다.
지우는 물티슈 한 통을 통째로 들고 옆자리로 갔다.
"서대리님, 이거라도……."
"됐어요."
도현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셔츠 얼룩은 그새 말라서 더 선명해졌다. 가운데는 한반도였고, 옆구리에는 제주도까지 생겼다.
"막내!"
사수 구상철 과장의 목소리가 파티션을 넘어왔다.
"이거 50부. 양면으로. 응?"
서류 뭉치가 지우 책상에 떨어졌다. 볼펜 딸깍 소리가 뒤따라왔다.
"커피 쏟았다며? 첫 주부터 사고를 치네."
"죄송합니다, 과장님."
"우리 때는 말이야, 선배 셔츠에 뭘 묻히면 그날 퇴근을 못 했어. 응?"
구 과장이 웃었다. 혼자 웃었다.
입사 8일 동안 지우가 받은 일은 두 가지였다. 복사. 그리고 회의록.
복사실로 가려는데 동기 민채린이 지우를 지나쳐 도현의 자리로 곧장 갔다.
"어머, 서대리님. 셔츠 괜찮으세요~? 제가 세탁소 알아봐 드릴까요?"
"괜찮아요."
도현이 의자를 모니터 쪽으로 틀었다. 채린은 아쉬운 얼굴로 돌아서다가 지우와 눈이 마주쳤다.
"지우 씨 커피 쏟았다며? 괜찮아~ 신입 때는 다 그래."
채린도 입사 8일 차였다.
채린이 목소리를 낮췄다.
"근데 서대리님 원래 표정이 저래. 별명이 '12층 무표정'이래."
"진짜요?"
"응. 웃는 거 본 사람이 없대. 지우 씨 이제 큰일 났다~"
지우는 옆자리를 흘끔 봤다. 도현이 휴지로 셔츠를 두드렸다. 무표정이었다. 얼룩은 그대로.
복사기가 50부를 토해 내는 동안 지우는 사원증 줄을 손가락에 감았다 풀었다.
한 바퀴. 두 바퀴.
오늘 목표는 아무 사고도 치지 않기. 오전 9시 2분에 이미 실패였다.
점심 무렵, 옆 팀 선배 하나가 도현의 자리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서 대리, 셔츠 그거 뭐야?"
"커피요."
"누가?"
도현이 고개를 돌렸다.
지우는 복사 용지 박스 뒤로 반쯤 숨었다. 박스에는 'A4 2,500매'라고 적혀 있었다. 사람 하나 가리기에는 부족한 양이었다.
"……신입이요."
"아이고. 첫 주부터?"
선배가 웃으며 지나갔다. 도현은 다시 모니터를 봤다. 지우는 박스 뒤에서 나오지 못했다.
오후 2시, 중회의실.
빔프로젝터 화면에 제목이 떴다.
'봄 시즌 판촉 기획안 — 서도현'
지우는 구석 자리에서 노트북에 회의록을 받아 적었다. 도현의 설명은 짧았다. 슬라이드 한 장에 문장 하나. 숫자 두 개.
마지막 장에는 보자기로 싼 선물 세트와 붓글씨 로고가 있었다. 그 아래 타깃이 적혀 있었다.
'2030 1인 가구.'
오미란 팀장이 안경 너머로 눈만 들었다.
"질문 있어요?"
아무도 없었다. 구 과장은 볼펜만 딸깍거렸다.
팀장의 시선이 방 끝까지 갔다가 멈췄다.
"신입. 신입 눈엔 어때요?"
지우의 커서가 멈췄다. 사원증 줄이 손가락에 한 바퀴 감겼다.
"저요?"
"네."
지우는 화면을 봤다. 보자기. 붓글씨. 매화 한 가지.
"조금…… 옛날 느낌이에요."
정적.
"저희 엄마가 진짜 좋아하실 것 같아요."
구 과장의 볼펜이 멈췄다. 채린이 손으로 입을 가렸다.
도현은 화면만 봤다. 아무 표정도 없었다.
"근거는요?"
팀장의 목소리는 평평했다. 지우는 침을 삼켰다.
"저 자취 2년 했거든요. 편의점에서 보자기 싼 건 안 집어요. 선물용 같아서 부담스럽고…… 혼자 먹을 거면 뚜껑 열고 바로 먹는 게 좋아요."
"또."
"붓글씨는 명절 선물 세트에 많이 쓰잖아요. 그래서 설 지나고 남은 재고처럼 보일 것 같아요."
회의실이 조용했다. 누군가 노트에 뭔가를 적었다.
오미란 팀장이 서류를 탁 덮었다.
"맞는 말이네."
"……."
"타깃은 2030인데 포장은 5060이에요. 서 대리, 연령대 다시 봐요."
"네."
도현은 짧게 대답하고 노트북을 덮었다.
팀장이 일어서며 한마디를 보탰다.
"신입, 회의록 정리되면 나한테 바로 보내요."
"네, 네!"
두 번 대답한 걸 지우는 한참 뒤에야 알았다.
회의가 끝나자 채린이 지우의 팔을 잡았다.
"지우 씨 대박. 간도 크다~"
칭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목소리였다.
지우는 복도로 나와서야 두 주먹을 쥐고 작게 흔들었다.
팀장님이 맞는 말이래.
탕비실 정수기 앞.
종이컵에 물을 받는데 그림자가 드리웠다.
도현이었다.
"옛날 느낌."
"네?"
"메모했어요."
지우의 손에서 종이컵이 기울었다.
"아니 그게, 기획이 옛날이라는 게 아니라요. 포장이, 아니 포장도 예쁜데요. 저희 엄마가 좋아한다는 건 칭찬이고요, 저희 엄마 안목이 진짜 좋으시거든요……."
도현이 지우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자기 셔츠 얼룩을 톡 짚었다.
한 번.
그러고는 가 버렸다.
종이컵에서 물이 넘쳐 지우의 손등을 적셨다.
아침에는 셔츠. 오후에는 기획안.
하루에 같은 사람을 두 번 밟았다.
자리로 돌아오니 도현의 모니터 옆에 노란 포스트잇이 새로 붙어 있었다.
'봄 기획안 — 타깃 연령 재검토. (옛날 느낌)'
괄호까지 있었다.
지우는 의자를 최대한 조용히 끌어당겼다. 바퀴가 끼익 울었다.
도현은 돌아보지 않았다. 키보드 소리만 조금 더 커졌다.
밤 9시 50분. 성수동 원룸.
접이식 테이블 위에서 편의점 떡볶이가 식어 갔다.
"그러니까 하루에 같은 사람을 두 번 밟았다고?"
정나은이 나무젓가락으로 지우를 가리켰다.
"밟은 게 아니라…… 쏟고, 말한 거지."
"그게 밟은 거야."
"나 잘릴까?"
"수습은 커피로 안 잘려. 말로 잘리지."
"위로가 하나도 안 돼."
나은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연보라색 아이콘. 날개 달린 하트.
"너 이거 깔아만 놓고 안 썼지? 큐피.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딥모드가 열려. 프리미엄 AI래. 우리 과 애들 연애 상담 다 이걸로 해."
"나 연애 상담 필요 없는데."
"회사 상담도 돼. 아무한테도 말 못 하는 거 여기다 하면 돼."
아무한테도 말 못 하는 것.
지우는 떡볶이 국물에 젖은 어묵을 내려다봤다. 사수한테는 묻기 싫었다. 채린한테는 더 싫었다. 엄마한테 한 말은 "잘 다니고 있어"가 전부.
지우는 앱을 열었다. 닉네임 칸이 깜빡였다.
"뭐로 하지?"
"아무거나. 어차피 AI가 읽는 건데."
지우는 '해담막내'라고 쳤다.
"야, 회사 이름 넣으면 어떡해."
"해담이 무슨 회사 이름이야. 그냥 예쁜 말이지."
"네 사원증에 써 있는 그거잖아."
"누가 알아. 기계잖아."
나은이 포기한 얼굴로 떡볶이를 집었다.
"10시 되면 바로 물어봐. 첫 질문이 중요하대. 딥모드는 첫 질문 보고 너를 파악한대."
"그건 누가 그래?"
"내가."
밤 9시 59분.
[해담막내] 회사에서 실수했을 때 어떻게 사과해?
[큐피] 커피는 행복이에요! ☕😊
"……나 커피 얘기 안 했는데."
"그건 낮 큐피야. 멍청해. 10시까지 기다려."
둘은 휴대폰 시계를 같이 봤다.
59가 00으로 바뀌었다.
화면 위쪽에 보라색 띠가 떴다.
'딥모드가 열렸습니다.'
밤 10시 41분. 도현의 오피스텔.
노트북 화면에는 큐피랩 관리자 페이지가 떠 있었다. 수동 응답 대기열 3건.
알바 사흘째였다.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큐피 딥모드의 답장은 사람이 썼다.
사흘 전부터는 서도현도 그중 하나였다.
옷걸이에는 세탁소 비닐을 뒤집어쓴 셔츠가 걸려 있었다. 점심시간에 맡겼다가 퇴근길에 찾아온 셔츠였다.
비닐 끝에 꼬리표가 매달려 있었다.
'얼룩 제거 불가.'
책상 위에는 셔츠를 샀을 때의 영수증이 펼쳐져 있었다.
대기열 맨 위 닉네임이 바뀌었다.
해담막내.
도현은 그 이름을 두 번 읽었다.
[해담막내] 회사에 제일 싫은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해?
도현은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큐피] 어떤 점이 싫으신가요?
[해담막내] 오늘 엘리베이터에서 커피를 쏟았는데 하루 종일 째려봐. 쪼잔해.
[해담막내] 회의에서 기획안이 옛날 느낌이라고 한 것도 메모했대. 무서워ㅠㅠ
해담. 엘리베이터. 옛날 느낌.
도현은 등받이에 기댔다가, 다시 몸을 앞으로 당겼다.
옆자리 한지우 씨였다.
[큐피] 그분에게는 비싼 셔츠였을 수도 있습니다.
[해담막내] 헐 AI가 셔츠 가격을 어떻게 알아??
도현은 책상 위의 영수증을 봤다.
[큐피] 일반적인 직장인 셔츠 가격 데이터 기준입니다.
[해담막내] 딥모드 똑똑하다…
[해담막내] 근데 그 사람 진짜 무표정이야. 벽이랑 얘기하는 것 같아
[해담막내] 별명도 12층 무표정이래ㅋㅋ
도현은 안경을 벗고 미간을 눌렀다.
그 별명은 처음 들었다.
[큐피] 무표정한 사람도 속으로는 많은 생각을 합니다.
[해담막내] 무슨 생각?
[큐피] 예를 들면 셔츠 생각이요.
[해담막내] ㅋㅋㅋㅋ딥모드 웃기다
[해담막내] 근데 진짜 그럴 것 같아. 나 내일 그 사람 얼굴 어떻게 봐
벽은 지금 답장을 쓰는 중이었다.

밤 11시 50분.
다른 대기열은 다 비었다. 해담막내의 창만 열려 있었다.
[해담막내] 큐피야 하나만 더
[해담막내] 내일 우리 팀 첫 회식이야. 신입 환영회
[해담막내] 뭘 하면 좋을까? 잘 보이고 싶어
[해담막내] 2차는 노래방이래. 나 노래 진짜 못하는데ㅠㅠ
[해담막내] 아빠 18번 트로트밖에 몰라
커서가 깜빡였다.
노래방. 트로트.
도현은 그 두 단어를 천천히 다시 읽었다.
옷걸이의 셔츠. 비닐 끝의 꼬리표.
그는 책상 위의 영수증을 집어 들었다.
셔츠 한 장. 8만 9천 원.
도현이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기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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