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2. 트로트
밤 11시 58분. 도현의 손가락이 자판 위로 내려앉았다.
[큐피] 회식에서 18번 트로트를 크게 부르세요.
[큐피] 신입은 존재감이 중요합니다.
전송. 답장은 3초 만에 왔다.
[해담막내] 트로트?? 진짜?
[해담막내] 나 음치라니까ㅠㅠ
[큐피] 음정보다 성량입니다. 크게 부르세요.
[해담막내] 크게…
[해담막내] 팀장님 앞에서??
[큐피] 신입의 목소리는 클수록 기억에 남습니다.
[해담막내] 발라드 같은 건 안 돼?
[큐피] 안 됩니다. 트로트입니다.
[해담막내] 알겠어! 해 볼게!! 🔥
도현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팀장, 과장, 동기 앞에서 신입이 목청껏 트로트. 게다가 음치.
망신 확정.
새벽 0시 20분. 같은 오피스텔.
휴대폰이 울렸다. 영상통화. 오태오.
"도현아! 사흘 매출 그래프 봤냐? 우상향이야, 우상향. 형 믿어."
"네가 왜 형이야."
"기분상 형이지. 딥모드 리텐션이 미쳤다니까. 우리 지금 완전 린하게 가는 중이야."
"용건."
"칭찬이 용건이지. 상담원 셋 중에 네 만족도가 1등이야."
"알바비나 올려."
"그건 다음 라운드에. 투자 들어오면 바로 피벗해서……."
"뭘로 피벗하는데."
"……그건 형도 아직 몰라."
태오가 화면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콧구멍이 먼저 보였다.
도현은 휴대폰을 조금 멀리 들었다.
"부탁 하나 하자."
"오, 서도현이 부탁을? 녹음해도 돼?"
"해담막내. 그 닉네임, 내가 고정으로 받을게."
"왜? 아는 사람이야?"
"……응대 연속성."
"용어 좋다. 너 스타트업 체질이야."
태오가 뭔가를 눌렀다. 도현의 메일함에 PDF가 하나 떨어졌다.
'큐피랩 상담원 비밀 유지 계약서.'
"고정 배정은 해 줄게. 대신 3조, 다시 읽어."
제3조. 상담원은 딥모드 답변을 사람이 작성한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는다.
서명란에는 도현의 이름과 사흘 전 날짜가 있었다.
"들키면 너도 나도 끝이야. 알지?"
"끊어."
"형 믿어!"
화면이 꺼졌다. 도현은 대기열 맨 위의 닉네임을 한 번 더 봤다.
해담막내. 담당자: 서도현.
도현은 계약서 PDF를 닫았다. 셔츠 영수증은 아직 책상 위에 그대로.
다음 날 점심시간. 12층 비상계단.
"……어어어 어어어—"
한지우는 계단참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이어폰 한쪽, 휴대폰 노래방 앱, 그리고 점심을 거른 배.
화면 위에서 음정 막대가 춤을 췄다. 지우의 목소리는 막대를 한 번도 맞히지 못했다.
62점.
"한 번 더."
지우는 메모장을 펼쳤다. 이미 별표가 잔뜩이었다.
'셋째 줄 꺾기 ★★★ / 숨은 여기서 / 크게!!'
아빠의 18번. 명절마다 거실에서 듣던 노래.
가사는 다 외웠다. 문제는 꺾기. 아빠는 한 음절을 세 번 접었다. 지우는 한 번만 접어도 음이 부러졌다.
"어어어 어어어어—"
71점.
"오."
지우는 두 주먹을 쥐고 작게 흔들었다. 그 순간 위층 문이 열렸다.
도현이 커피를 들고 계단을 내려오는 중이었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서대리님?!"
도현이 헛기침을 했다. 한 번. 그리고 한 번 더.
"계단은 공용이에요."
"아, 네! 죄송합니다! 제가 조용히 할게요, 아니 조용히 연습할게요, 아니 연습을 안 할 수는 없어서……."
"……그래서요?"
"그래서…… 작게 할게요."
도현의 시선이 메모장으로 내려갔다. 별표 세 개와 '크게!!'가 나란히 있었다.
"크게, 라고 써 있는데요."
"네?"
도현이 턱으로 메모장을 가리켰다.
"아, 이건 회식용이에요. 계단용은 작게요."
도현은 그 말만 듣고 내려갔다. 걸음이 평소보다 빨랐다.

아래층 문이 닫힐 때 헛기침이 한 번 더 들렸다.
지우는 이어폰을 뺐다.
또 화나셨나 보다. 시끄러워서.
지우는 목소리를 낮춰 다시 불렀다. 꺾기는 낮춰도 꺾기였다.
저녁 7시. 성수동 고깃집 '화로상회' 2층 룸.
불판 위에서 목살이 튀었다. 소주병은 벌써 여섯 개째.
"우리 때는 말이야, 신입이 분위기를 띄웠어. 응?"
구 과장이 젓가락으로 지우를 가리켰다.
"요즘 애들은 앉아서 고기만 먹어. 막내, 너 2차에서 뭐 준비했어?"
"네? 아, 네! 준비했습니다!"
"오, 뭔데?"
"그건…… 가서 보여 드릴게요."
"과장님, 한 잔 더 드세요~"
채린이 구 과장의 잔을 채웠다. 이어서 팀장 잔, 도현 잔. 동선에 낭비가 없었다.
지우는 고기를 뒤집었다. 누구 잔을 채울 타이밍을 계속 놓쳤다. 목살은 그사이 두 번 탔다.
"막내, 고기 탄다. 응?"
"죄송합니다!"
지우가 가위를 들자 오미란 팀장이 지우 쪽을 봤다.
"신입. 어제 회의록 받았어요."
"아, 네! 혹시 틀린 데 있었어요?"
"없던데요. 내가 한 말이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있어서."
"녹음 안 했어요! 그냥 받아 적기만……."
"그러니까요."
팀장은 그 말만 하고 잔을 들었다. 지우는 가위를 든 채 굳었다. 칭찬인가? 칭찬이겠지?
채린이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웃었다. 웃음이 좀 길었다.
지우는 옆자리 도현에게 몸을 기울였다.
"서대리님, 2차 노래방 가세요?"
"안 갑니다."
"아……."
"칼퇴가 원칙이라서요. 회식도 칼퇴해요."
도현은 8시 50분에 시계를 봤다.
"저는 1차만 하고 들어가겠습니다."
"서 대리."
오미란 팀장이 잔을 내려놓았다.
"신입 첫 회식인데."
"……."
"2차 노래방. 다 같이 가요."
"네."
도현은 도로 앉았다. 사실 크게 억울하지는 않았다.
오늘 밤의 메인 공연을 아직 못 봤다.
밤 9시 40분. '별빛노래연습장' 대형 룸.
탬버린 세 개. 마이크 두 개.
구 과장이 첫 곡으로 발라드를 불렀다. 90년대 노래. 박수는 예의 바르게 짧았다.
채린은 아이돌 노래에 안무까지 곁들였다. 선배들이 휴대폰을 들었다.
"자, 신입! 막내 차례야. 응?"
구 과장이 리모컨을 지우 앞으로 밀었다.
지우는 사원증 줄을 한 바퀴 감았다. 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이 떨렸다.
화면에 제목이 떴다. 명절마다 아빠가 부르던 노래.
룸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트로트?"
채린이 옆 사람에게 속삭였다. 도현은 벽 쪽 구석에서 팔짱을 꼈다.
전주가 흘렀다. 지우는 마이크를 두 손으로 잡았다.
크게. 음정보다 성량.
첫 소절에서 음이 반 박자 늦었다. 채린이 손으로 입을 가렸다.
둘째 소절. 지우는 눈을 질끈 감고 배에 힘을 줬다.
셋째 줄. 점심을 굶어 가며 연습한 꺾기.
한 음절이 세 번 접혔다. 이번엔 부러지지 않았다.
오미란 팀장이 벌떡 일어났다.
"잠깐, 잠깐."
반주가 멈췄다. 팀장이 직접 정지 버튼을 누른 것이다.
"그 꺾기 어디서 배웠어요?"
"아, 아빠요! 그리고 오늘 점심에 계단에서요!"
"계단?"
"비상계단이요. 62점에서 71점까지 올렸어요."
팀원들이 서로를 봤다. 팀장이 웃는 중이었다. 누군가 "팀장님 웃는 거 처음 봐"라고 속삭였다.
"나 그 경연 프로, 첫 시즌부터 문자 투표했어요."
"팀장님이요?!"
"금요일 밤엔 약속 안 잡아요. 다시 처음부터."
구 과장이 넥타이를 만지며 끼어들었다.
"우리 막내가 원래 기본기가 좀 있어요, 팀장님. 제가 신입 때부터 분위기 띄우라고 누누이……."
"계단에서 배웠다잖아요, 구 과장."
"……네."
그때 룸 문이 벌컥 열렸다.
옆 룸에서 회식하던 옆 부서 상무. 넥타이가 이마에 묶여 있었다.
"방금 꺾기 누구야? 옆방까지 다 들렸어."
"저희 신입이요."
팀장이 대답했다. 목소리에 자랑이 묻어 있었다.
"오 팀장 팀에 이런 인재가 있었어? 나도 한 소절 하자."
"트로트는 말이야, 성량이야. 신입, 음정 신경 쓰지 말고 질러!"
"네! 음정보다 성량이요!"
구석에서 도현이 헛기침을 했다. 이번에는 세 번.
"서 대리, 감기야?"
"……목이 좀."
상무가 탬버린을 집어 들었다. 팀장이 두 번째 마이크를 잡았다.
반주가 다시 시작됐다.
지우는 불렀다. 크게. 이번엔 첫 소절부터 맞았다.
점수 화면에 96. 팡파르.
"한지우 씨."
팀장이 마이크를 내리고 지우를 봤다.
"다음 곡."
한지우 씨.
입사 9일 만에 처음 불린 이름이었다.

구 과장이 테이블의 컵을 들어 입에 댔다. 컵은 비어 있었다.
같은 시각, 노래방 복도.
도현은 음료 자판기 옆 벽에 기대 서 있었다.
룸 문틈으로 트로트가 새어 나왔다. 이제는 3중창.
"이게 왜 되는데."
혼잣말이었다. 대답은 탬버린이 했다.
"서대리님~ 여기 계셨어요?"
채린이 머리를 넘기며 다가왔다.
"팀장님이 다 같이 부르재요. 서대리님도 한 곡~"
"안 합니다."
"에이, 한 곡만요~ 지우 씨도 했는데~"
"안 합니다."
"그럼 저랑 듀엣은요?"
"더 안 합니다."
채린은 휴대폰을 보며 돌아섰다. 룸 안에서 박수가 터졌다.
"앙코르! 앙코르!"
상무의 목소리.
룸 문이 열리고 팀원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서 대리님, 팀장님이 찾으세요. 탬버린 담당 하시래요."
"……화장실 갔다고 해 주세요."
"여기 복도인데요."
문이 닫혔다. 도현은 자판기 버튼을 눌렀다. 캔이 굴러떨어졌다.
누른 건 커피. 나온 건 식혜.
도현은 식혜를 한참 내려다봤다. 그리고 땄다.
밤 11시 40분. 도현의 오피스텔.
넥타이를 풀기도 전에 대기열이 깜빡였다. 목에서는 아직 고깃집 냄새가 났다.
[해담막내] 큐피야!!!!!
[해담막내] 나 오늘 대박 났어
[해담막내] 팀장님이 트로트 경연 광팬이었어ㅋㅋㅋㅋ
[해담막내] 상무님이랑 3중창도 했어
[해담막내] 서대리님은 복도에서 혼자 식혜 마시더라
도현은 책상 위의 빈 식혜 캔을 봤다. 캔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큐피] 축하드립니다.
[해담막내] 근데 큐피는 어떻게 알았어? 팀장님이 트로트 좋아하는 거
도현은 자판에 손을 올린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큐피] 데이터 기반 추론입니다.
[해담막내] 역시 딥모드…
[해담막내] 근데 제일 좋았던 거
[해담막내] 팀장님이 내 이름 불러 줬어ㅠㅠ
[해담막내] 한지우 씨, 다음 곡. 이랬어
[해담막내] 큐피 천재야! 내일도 물어볼게!
도현은 노트북 화면을 내리려다 멈췄다.
반쯤 접힌 화면 속에서 커서가 깜빡였다.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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