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1. 아직…… 살아 있네?
「속보: 수도권 또 지진… 특수대응단, 붕괴 현장 17명 전원 구조」
그 요원들이 모두 요괴와 계약한 사람이라는 걸 도이찬은 몰랐고, 요즘 부쩍 잦아진 지진이 땅속에서 벌어지는 요괴들의 전쟁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리고 이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그 전쟁에서 진 대요괴 하나가 자기 몸에 세 들어 살게 된다는 것도.
4월 13일 화요일 점심시간, 늘해고 1층 매점은 언제나처럼 빵 봉지 부스럭거리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오늘도 여섯 개네. 학생 혼자 다 먹어?"
매점 아주머니가 봉지를 건네며 물었다. 소보로 둘, 크림빵 둘, 피자빵 하나, 단팥빵 하나까지, 이찬은 6개월째 같은 빵을 같은 순서로 사 가는 중이었다.
"……네."
‘아니요. 저는 하나도 안 먹어요.’
빵 여섯 개가 든 봉지를 들고 매점 벽에 걸린 TV 아래로 가자, 화면 속 무너진 상가 앞에서 남색 전술복 차림의 요원이 아이 하나를 안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 곧 자막에 이름이 떴다. '철벽' 차무혁 팀장.
‘철벽 님이다.’
휴대폰을 꺼내 대응단 공식 채널을 열어 보니 같은 장면이 벌써 올라와 있었다.
▣ 국가특수대응단 공식 채널 「'철벽' 차무혁 팀장, 오늘도 17명 전원 구조」 조회수 41만 · 댓글 3,208
[대응단 갤러리] 철벽 님 오늘도 무사고
[대응단 갤러리] 카드 4번 언제 재입고함?
[대응단 갤러리] 4번 품절. 3번이 근본
이찬은 마지막 댓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사실 그 댓글을 단 사람도 이찬이었다.
지갑에서 꺼낸 카드를 TV 화면 옆에 나란히 대 보니, 6개월 전에 산 카드라 모서리가 벌써 하얗게 닳아 있었다.
▣ 국가특수대응단 공식 카드 No.3 '철벽' 차무혁 / 1팀장 출동 기록 212회 · 최대 출력 5단 "버티는 게 내 일이다."
뒷면 스펙은 진작에 다 외웠고, 같은 카드로 만든 키링도 이찬의 가방 지퍼에서 달랑거리고 있었다. 덕질을 하려면 이 정도는 기본인 법이다.
그때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두 번 울렸다.
[곽태진] 빵
[곽태진] 3분 지났다
이찬은 TV에서 눈을 떼자마자 계단 쪽으로 뛰었다.
빵 심부름은 6개월째였다. 키 158센티미터에 몸무게 47킬로그램, 2학년 3반에서 이찬보다 작은 건 교탁뿐이었으니 처음부터 뽑힐 운명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빵값 1만 2천 원은 매번 이찬의 지갑에서 나갔다.
오늘은 말하려고 했다. 내일부터는 안 사 온다고, 매점 줄에 서 있는 동안 속으로 세 번이나 연습까지 했다.
‘내일부터는 안 사 와. 그 한 문장이면 돼.’
3층 복도 끝, 2학년 3반 앞문에 곽태진이 기대 서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곽태진은 이찬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느려."
곽태진은 봉지를 낚아채 안을 들여다보더니 크림빵을 하나 꺼내 한 입 베어 물고는 턱으로 교실 안을 가리켰다.
"내 가방. 사물함 위."
점심시간이라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찬은 맨 뒤 사물함까지 걸어가서 곽태진의 가방을 집어 들었다.
‘지금이다.’
이찬은 가방을 품에 안은 채 앞문 쪽으로 돌아섰다.
"태진아, 나 내일부터는—"
우우웅.
복도에서도, 이찬의 주머니에서도 휴대폰이 한꺼번에 울어 댔고, 그건 학교 전체가 한목소리로 우는 소리였다.
「[재난문자] 지진 발생. 낙하물에 주의하고 탁자 아래로 대피하십시오.」
쿠웅.
바닥이 크게 출렁이면서 창가에 놓인 화분이 떨어져 산산이 깨졌다.
‘흔들리면 문부터 연다. 대응단 행동 수칙 2번.’
이찬은 앞문을 향해 뛰었다. 문까지는 다섯 걸음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문 너머에서 곽태진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찬을 보고 있다가, 문을 밀어 닫아 버렸다.
드르륵. 찰칵.
바깥쪽 걸쇠가 걸리는 소리였다.
"태진아?"
돌아온 건 계단 아래로 멀어지는 발소리뿐이었다. 이찬이 아무리 잡아당겨도 문은 조금도 열리지 않았다.
쿠구구궁.
천장에서 하얀 가루가 쏟아지고 형광등이 크게 흔들리는 걸 보고 나서야, 이찬은 자기가 아직도 곽태진의 가방을 안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이걸 왜 아직 들고 있어.’
창문이 먼저 터지자 이찬은 교탁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교탁 밑은 이찬의 몸에 딱 맞았으니, 작은 키가 고마울 때도 있긴 있는 모양이다.
콰르르릉.
천장이 통째로 무너져 내리면서 형광등과 콘크리트 덩어리가 책상들 위로 쏟아졌고, 짓눌린 교탁이 기우는 바람에 이찬의 왼팔이 교탁 모서리와 바닥 사이에 끼고 말았다.
‘아파. 그래도 숨은 쉬어져.’
먼지 때문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와중에, 이찬은 오른팔로 곽태진의 가방을 꼭 끌어안았다. 왜 그걸 놓지 못하는지는 이찬 자신도 알 수 없었다.
흔들림이 멎자 멀리서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목이 먼지로 꽉 막혀 기침만 터져 나왔다.
이찬은 오른손으로 주머니를 더듬어 휴대폰을 꺼냈다. 금이 간 화면에 배터리 18퍼센트가 떠 있었고, 반 단톡방에는 알림이 줄줄이 쌓여 있었다.
[반장] 다들 괜찮아??
[최민규] 3층 무너졌대 미친
[반장] 우리 반 다 운동장임?
[장도현] ㅇㅇ 다 나온 듯
[곽태진] 다 나왔음
이찬은 마지막 줄을 한참 노려보았다. 곽태진은 이찬이 교실 안에 있다는 걸 알았다. 문을 잠근 사람이 바로 곽태진이었으니까.
‘다 나온 게 아니잖아.’
단톡방에 뭐라고 쓰려다가 이찬은 마음을 바꿨다. 그보다 먼저 연락할 사람이 있었다.
[나] 엄마
전송 실패를 알리는 빨간 동그라미에 느낌표가 붙어 떴다.
엄마는 지금쯤 시장 식당 주방에서 점심 손님을 받고 있을 것이다. 뉴스를 보는 순간 국자를 내려놓고 뛰어나올 게 뻔했고, 이찬은 그게 싫었다. 솔직히 엄마가 뛰어나오는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6개월 동안 빵을 사 온 거였다.
‘다시 보내자. 배터리 아껴서, 조금 있다가.’
이찬은 휴대폰 화면을 끄고 눈을 감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교탁 밑은 어둡고 조용했다.
끼이익.
머리 위에서 콘크리트 긁히는 소리가 나더니 교탁을 덮고 있던 덩어리가 통째로 들리고, 그 틈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빛 속에 남색 전술복을 입은 사내가 버티고 서 있었다. 어깨가 넓고 왼쪽 눈썹에 흉터가 있는 남자는 한 손으로 콘크리트를 옆으로 밀어 놓고 이찬을 내려다봤다.
"아직…… 살아 있네?"
‘철벽 님.’
방금 TV에서 아이를 안고 나오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이찬은 입을 벌렸지만 말이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차무혁의 옆에 무언가가 함께 있었다.
키는 차무혁의 허리쯤 되었고, 다리가 하나뿐인 데다 얼굴 한가운데에 커다란 눈이 딱 하나 박혀 있었다. 그것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찬을 내려다보았다.
‘……저게 뭐야. 사람이 아니잖아.’
이찬의 눈이 그것에 붙박이자, 차무혁도 그 시선을 따라 옆을 흘끗 살피더니 다시 이찬에게로 눈을 돌렸다. 아주 잠깐, 차무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 저게 보이냐?"
이찬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차무혁은 더 캐묻지 않고 교탁 밑에 끼어 있던 이찬의 왼팔을 천천히 빼냈다. 크고 거친 손이었는데 이상하게도 하나도 아프지 않게 잡아 주었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손목 위쪽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인 채 퉁퉁 부어 있었다.
"부러졌다. 울지 마라."
"안 울어요."
빈말이 아니었다. 이찬은 맞을 때도 울지 않는 법을 6개월 동안 몸으로 배웠고, 차무혁은 그런 이찬의 얼굴을 잠깐 들여다보았다.
"그 가방은 놔라."
"남의 거라서요."
차무혁이 이찬을 다시 쳐다봤는데, 이번에는 조금 웃는 것 같기도 했다.
"저, 철벽 님 맞죠. 카드 3번……. 출동 기록 212회."
"……그 카드 사진, 잘못 나온 거다."
‘본인이 직접 말해 줬어. 이건 갤러리에 올려야 돼.’
그 와중에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걸 보면, 이찬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게 틀림없었다.
차무혁이 어깨에 달린 무전기를 눌렀다.
"3층 동쪽 교실, 생존자 하나. ……애 하나, 이상해. 확인 바람."
‘이상해? 내가?’
이찬이 물어보기도 전에 차무혁이 이찬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고, 그제야 교실 꼴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교실 바닥 한가운데가 아래로 꺼져 있었다. 무너진 구멍은 2층과 1층을 지나 운동장 쪽 땅까지 뚫려 있었고, 그 맨 아래 갈라진 땅 틈에서 썩은 늪 냄새가 훅 끼쳐 올라왔다.
외눈의 그것이 갑자기 몸을 바짝 낮췄다.
"온다." 그것이 쇳소리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쿠르르릉.
땅 틈에서 검은 것이 솟구쳤다. 사람 몸통보다 굵은 그 줄기는 온통 비늘로 덮여 있었고 끝이 머리처럼 부풀어 있었는데, 순식간에 3층 높이까지 올라오더니 교실 안을 향해 고개를 휘었다.
차무혁이 이찬을 뒤로 밀치는 바람에, 이찬은 무너지지 않은 뒷벽 기둥에 등을 세게 부딪쳤다.
"기둥 잡고 버텨."
차무혁은 허리를 낮추고 씨름꾼처럼 팔을 넓게 벌렸다. 그러자 외눈의 그것이 차무혁의 등 뒤로 녹아들듯 사라졌고, 동시에 차무혁의 왼쪽 눈이 그것의 커다란 외눈처럼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간다."
차무혁이 바닥을 박차자 다섯 걸음 거리가 단번에 지워졌고, 순식간에 차무혁은 검은 줄기 바로 앞에 가 있었다.
쾅.
내리꽂히는 검은 머리를 차무혁은 두 팔로 받아 안았다. 상대의 허리춤을 움켜쥐는 씨름 자세 그대로였다. 발밑 바닥이 쩍쩍 갈라지는데도 차무혁은 한 발짝도 밀리지 않았다.
이찬은 기둥을 붙든 채 그 등을 지켜보았다. 카드 속 '철벽'이라는 별명이 지금 눈앞의 넓은 등과 그대로 겹쳐졌다.
검은 줄기가 몸을 비틀어 대도 차무혁은 놓지 않고 버티고, 또 버텼다.
그러다 차무혁이 딛고 선 바닥이 통째로 꺼져 버렸다.
차무혁은 검은 줄기를 끌어안은 채 콘크리트와 함께 1층까지, 갈라진 땅 틈 바로 앞까지 떨어졌다. 검은 줄기는 땅속으로 끌려 내려가듯 사라졌고, 차무혁은 잔해 위에 엎드린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철벽 님?"
아무 소리도 돌아오지 않았다. 기둥을 붙잡고 구멍 가장자리로 몸을 내밀자 발밑의 콘크리트가 부스스 부서져 아래로 떨어졌다. 물론 내려갈 길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철벽 님! 일어나세요!"
이번에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차무혁은 일어나지 않았다.
외눈의 그것이 차무혁 옆에 다시 나타나 하나뿐인 눈으로 멍하니 그 등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어 3층의 이찬을 올려다봤다. 길을 잃은 아이 같은 얼굴이었다.
땅 틈이 다시 울렸는데, 땅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끼리 부딪치는 소리였다.
쿵. 쿵.
그러더니 땅이 뱉어 내기라도 한 것처럼, 땅 틈에서 무언가가 튀어 올랐다.
손바닥만 한 먹빛 덩어리는 3층까지 날아올라 이찬의 발 앞에 툭 떨어졌다. 작은 도마뱀처럼 생긴 그것의 등에는 가느다란 금빛 실금이 한 줄 나 있었다.
먹빛의 그것이 고개를 들었는데, 눈만 이상하게 오래된 금색이었다. 그 눈이 아래층의 외눈을 흘끗 훑고 나서 이찬에게로 향했다.
‘저것도 날 봤어.’
이찬이 뒤로 물러나려는 순간, 먹빛이 이찬의 가슴팍으로 뛰어들었다.
아프지는 않았다. 오히려 차가운 물이 가슴 안쪽으로 스며드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자 교실이 뒤집혔다. 무너진 천장이 발밑에, 갈라진 바닥이 머리 위에 있었다. 이찬은 거꾸로 선 세상 한가운데에서 여전히 가방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처음 듣는 목소리가 말했다.
【……숨을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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