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2. 그래도 나갈 수는 없다
【……좁군.】
그 목소리에 이찬은 눈을 떴다.
하얀 천장이 보였다. 이번에는 천장이 제자리에 붙어 있고 형광등도 얌전히 위에 달려 있어서, 이찬은 무엇보다 그게 먼저 고마웠다.
4월 14일 수요일 새벽, 늘해시 중앙병원 6층 병실의 창밖은 아직 푸르스름했다.
왼팔이 묵직하다 싶더니 손목부터 팔꿈치까지 하얀 깁스가 감겨 있었고, 오른팔에는 링거 줄이 꽂혀 있었다.
‘살았어.’
이찬은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가슴이 오르내릴 때마다 가슴 안쪽 어딘가가 조금씩 차가웠는데, 교실에서 먹빛이 뛰어들던 바로 그 자리였다.
‘방금 그 목소리는 꿈이었겠지. 그래, 꿈.’
병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앞치마를 두른 사람이 뛰어 들어왔다.
"이찬아!"
엄마였다. 시장 식당 「선영네」의 앞치마 끝에 김치 국물 자국까지 묻어 있었다. 아마 어제 점심 장사를 하다가 앞치마도 못 벗고 뛰어나온 모양이다.
엄마는 침대 옆에 주저앉아 이찬의 오른손을 붙잡고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찬의 손을 쥔 엄마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엄마가 뛰어나오는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6개월 동안 빵을 샀는데, 결국 엄마는 이렇게 뛰어나오고 말았다.
"……엄마, 미안."
엄마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빨갰는데, 정작 엄마 입에서 나온 말은 이랬다.
"밥은 먹었나."
"링거 맞고 있는데."
"그래도. 죽 사 올게."
엄마는 일어나 소매로 눈가를 훔치고 병실을 나갔다. 엄마는 울 일이 생기면 꼭 밥 얘기부터 꺼내는 사람이었다.
아침 아홉 시, 엄마가 사 온 전복죽을 반쯤 비웠을 때 병실 TV에서 속보가 흘러나왔다.
「속보: 늘해고 붕괴 현장 구조 중 특수대응단 요원 1명 순직 — 시신 수습 중」
곧이어 화면에 사진이 떴다. 왼쪽 눈썹에 흉터가 있는 얼굴이었다.
「'철벽' 차무혁 팀장(41)」
이찬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철벽 님.’
"아직…… 살아 있네?" 하던 목소리가 아직 귀에 남아 있었고, "기둥 잡고 버텨." 하고 돌아서던 등도 눈에 선했다. 이찬은 시키는 대로 버텼는데, 정작 차무혁은 일어나지 못했다.
협탁 위의 지갑에서 카드 3번을 꺼내 보니, 모서리가 닳은 카드 속에서 차무혁이 웃지도 않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사진 잘못 나온 거라고 했는데.’
엄마가 슬그머니 리모컨을 들어 채널을 돌렸다. 엄마는 그 일에 대해 아무것도 캐묻지 않았다.
휴대폰에는 메시지가 몇 개 와 있었다.
[반장] 이찬아 괜찮아? 3층에 너 있었다며
[정하윤] 빨리 나아
[대응단 갤러리] 철벽 님 명복을 빕니다
[대응단 갤러리] 시신 아직 못 찾았다는데 무슨 소리임
곽태진에게서 온 메시지는 하나도 없었다. 하긴 그 애가 먼저 연락할 리 없는 거다.
점심때 엄마가 병실 구석에 놓인 검은 가방을 턱으로 가리켰다.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이찬의 것이 아닌 가방이었다.
"구조대가 그카더라. 니가 그걸 끝까지 안 놓더라고. 태진이라는 애 거라며? 선생님이 돌려주신단다."
‘다 나왔음.’
가방을 보고 있자니 단톡방의 그 마지막 줄이 떠올라서, 이찬은 고개를 돌려 버렸다. 곽태진은 이찬이 교실 안에 있다는 걸 알았고, 알면서도 그렇게 썼다.
"응. 돌려줘."
이찬은 그 말밖에 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런 이찬의 얼굴을 살피고 나서 더는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날 밤, 병실 불이 모두 꺼진 뒤였다.
【……좁군. 그리고, 나갈 수가 없군.】
이찬은 눈을 번쩍 떴다. 설마 했는데 이번엔 꿈이 아니었다. 목소리는 귀가 아니라 머리 안쪽에서 울리고 있었다.
"……누구야."
옆 침대에 들리지 않게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이찬이 속삭였다.
【네가 본 것이다. 그날 땅에서 튀어나와 네 안으로 들어간 것.】
‘먹빛 도마뱀.’
이찬이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리자, 가슴 안쪽이 다시 서늘해졌다.
"너…… 귀신이야?"
【귀신 따위가 아니다. 너희 인간들이 요괴라 부르는 것이다.】
‘요괴. 진짜로 있는 거였어?’
"그럼 철벽 님 옆에 있던 그 외다리도……."
【그것도 나와 같은 부류다. 그 인간과 계약을 맺고 있었지.】
"계약?"
【……피곤하다. 그건 나중에.】
이찬은 이불 속에서 깁스한 팔을 끌어안았다. 무섭긴 무서웠다. 그래도 물어볼 건 물어봐야 했다.
"그럼 나가. 내 몸에서."
【못 나간다.】
"왜."
목소리는 거기에 답하는 대신 한숨 비슷한 것을 짧게 쉬었다.
똑. 똑.
링거액 떨어지는 소리만 들리는 어둠 속에서, 이찬은 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물었다.
"너, 이름은 있어?"
【인간 따위가 알 필요 없다.】
"그럼…… 나 먹을 거야?"
이번에는 대답이 아주 조금 늦게 돌아왔다.
【……먹을 수 있었으면 진작 먹었다.】
솔직히 그게 안심하라는 말인지 아닌지, 이찬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목소리가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인간 같지 않게 넓은데…… 움직이기 어려워서 마치 좁은 것 같군……】
"넓다는 거야, 좁다는 거야."
【……인간, 너는 잠이나 자거라.】
이찬은 이불 속에서 자기 가슴팍을 내려다봤다. 158센티미터, 47킬로그램인 몸을 두고 넓다는 말은 태어나서 처음 들었다. 무슨 뜻인지 물어보려다 그만둔 이찬은, 그날 밤 거의 한숨도 자지 못했다.
다음 날 오후, 엄마가 식당에 잠깐 간 사이에 미숙 이모에게서 영상 통화가 걸려 왔다. 「선영네」에서 엄마와 같이 일하는 이모였다.
"아이고, 우리 이찬이 얼굴 좀 보자. 팔은 괜찮고?"
【……작은 봉인석에 사람이 갇혀 있다.】
이찬은 하마터면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봉인석?’
【네 손에 든 그 작고 납작한 돌. 그 안에 늙은 여자 하나가 갇혀서 너를 부르고 있다.】
"이모, 잠깐만요." 이찬은 손바닥으로 화면을 가리고 속삭였다. "그거 폰이야. 영상 통화."
【풀어 주거라. 갇힌 영혼을 그리 두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갇힌 거 아니라고. 이모는 지금 식당에 있어."
"이찬아? 누구랑 얘기해?"
"아, 아니에요. 혼잣말이에요."
통화를 끊고 고개를 들었더니, 링거를 갈러 온 간호사가 이찬을 빤히 지켜보다가 말없이 차트에 무언가를 적었다.
‘……정신과 협진 같은 거 적는 거 아니겠지.’
저녁에 엄마가 돌아오자 이찬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혹시 우리 집안에…… 뭐 보는 사람 있었어? 귀신 같은 거."
죽 그릇을 내려놓던 엄마의 손이 아주 잠깐 허공에서 굳었다.
"외가 쪽이 원래 좀……."
엄마는 거기서 말을 끊더니, 숟가락을 이찬의 손에 쥐여 주었다.
"밥 먹자. 식는다."
엄마가 밥 얘기로 말을 돌리면 더 묻지 말라는 뜻이었으니, 여기서 그만두는 게 맞는 거다. 하지만 숟가락을 든 채로도 궁금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외가 쪽이 원래 좀, 뭐?’
그 뒤로 며칠 동안 목소리는 대체로 조용했고, 가끔 한두 마디씩 던지는 게 전부였다.
병원 밥이 나오면 【이걸 먹고 사는가, 인간들은.】 했고, 옆 침대 할아버지가 코를 골면 【저 늙은이 몸에서 짐승 소리가 난다.】 했다. 이찬은 어떻게든 대꾸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간호사가 또 차트에 뭘 적을지 모를 일 아닌가.
대신 밤마다 전혀 다른 소리가 났다.
뚜둑.
자다가 다리에서 나는 그 소리에 깨는 날이 많았다. 아프진 않았고, 무릎과 발목 어딘가가 조금씩 늘어나는 듯한 느낌만 있었다.
일주일째 되던 아침, 링거를 빼러 온 간호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학생, 침대가 원래 이렇게 짧았나?"
이찬의 발끝이 침대 난간에 닿아 있었다. 입원하던 날만 해도 한 뼘이 남던 자리였다.
4월 24일 토요일, 입원한 지 열하루째 되는 날이었다.
▣ 늘해시 중앙병원 진료 기록 환자: 도이찬(17) 4/13 좌측 요골 원위부 골절 4/24 골유합 확인, 깁스 제거
정형외과 의사가 엑스레이 사진 두 장을 나란히 걸어 놓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열흘 만에 붙었네요. 이 나이에도 이렇게는 안 붙는데."
"좋은 거죠?"
"좋긴 좋은데……." 의사가 안경을 고쳐 썼다. "뭐 특별히 먹은 거 있어요?"
"전복죽이요."
엄마가 대신 대답했지만 의사는 웃지 않았다.
깁스를 푼 왼팔은 멀쩡했다. 손을 쥐었다 펴 봐도 아프기는커녕, 오히려 다치기 전보다 힘이 더 잘 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상해.’
차무혁이 무전기에 대고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애 하나, 이상해.
퇴원 수속을 마치고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6층에서 문이 닫히고 몸이 살짝 가라앉는 순간이었다.
【……이것은.】
며칠 만에 목소리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어딘가 잔뜩 긴장한 기색이었다.
【작은 방이 통째로 땅으로 내려가고 있다. 공간을 옮기는 술법이로군. 인간 주제에.】
‘엘리베이터야.’
옆에 엄마가 서 있어서 이찬은 속으로만 대답했다.
【흥. 1500년 전 내가 하던 것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이다.】
띵.
1층에서 문이 열린 뒤로, 목소리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한테 졌다고 삐쳤네.’
집은 늘해시 구도심 다세대 3층이었다. 열흘 만에 돌아온 현관에서 이찬은 엄마가 챙겨 온 교복 바지를 입어 보았다. 월요일에 마지막 외래 진료를 받고 나면, 화요일부터는 다시 학교에 가야 했다.
그런데 바지를 끌어올리던 이찬의 손이 거기서 딱 멎었다. 현관 거울 속에서 발목이 훤히 드러나 있었고, 양말 위로 맨살이 한 뼘쯤 보였다.
"엄마. 바지가 왜 이래?"
"응?"
엄마는 신발장 위의 줄자를 가져와 바짓단을 재더니, 믿기지 않는지 다시 쟀다.
"7센티미터가…… 왜 짧아."
엄마가 고개를 들어 이찬을 쳐다봤고, 이찬도 거울을 들여다봤다. 거울 속에 서 있는 건 분명 이찬인데, 눈높이가 열흘 전보다 신발장 칸 하나만큼 올라가 있었다.
‘열흘 만에 7센티미터.’
그때 머릿속에서 그 목소리가 말했다. 병원에서보다 한결 느긋해진 목소리였다.
【……좁던 집이 넓어지는군.】
이찬은 거울에 비친 자기 가슴팍을 내려다보았다. 먹빛이 뛰어든 자리였다.
【그래도 나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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