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3. 네가 했다
【그 끈을 풀어라.】
"넥타이야."
4월 27일 화요일 아침, 이찬은 2주 만의 등교를 앞두고 현관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매는 중이었다.
【목을 조르는 끈이다. 1500년 전에도 인간들은 그런 걸로 우리를 묶었다.】
"이건 교복이라서 매는 거야."
【스스로 목에 끈을 맨다니. 인간들이란.】
퇴원한 뒤로 목소리는 조금씩 말이 늘었는데,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이찬도 이제는 그 목소리가 들려도 놀라지 않았고, 엄마 앞에서는 대답을 속으로 하는 요령까지 익혔다.
도시락 가방을 든 엄마가 부엌에서 나왔다.
"바지 단 내렸다. 그래도 짧다. 주말에 새로 사자."
바짓단을 내려다보니, 단을 내린 자리에 실밥 자국이 줄처럼 남아 있었고 발목은 여전히 조금 드러나 있었다.
"괜찮아. 이 정도는."
엄마는 그 말에 토를 다는 대신 도시락 가방을 이찬의 손에 쥐여 주었는데, 평소보다 묵직했다.
"두 개 쌌다. 요즘 많이 먹더라."
교문 앞에서부터 사방에서 시선이 따라붙었다.
"야, 쟤 3반 도이찬 아님?"
"그 무너진 교실에 있었다던 애?"
"근데 키가 원래 저랬나?"
이찬은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본관 3층 동쪽 끝에는 커다란 가림막이 쳐져 있었고, 무너진 교실이 아직 공사 중이라 2학년 3반은 별관 2층의 빈 교실로 옮겨 가 있었다.
본관 현관 옆 작은 탁자 위에는 국화 몇 송이와 영정 사진이 놓여 있었다. 왼쪽 눈썹에 흉터가 있는 얼굴이었고, 학생들이 두고 간 쪽지가 탁자 다리까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철벽 아저씨 고맙습니다」
「3반 애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탁자 앞에서 걸음을 멈추자 지갑 속 카드 3번이 떠올랐다. 이찬은 카드를 꺼내는 대신 허리를 깊이 숙여 오래도록 인사했다.
‘기둥 잡고 버텼어요. 철벽 님 말대로.’
【그 외다리와 계약했던 인간인가.】
‘응. 나 구해 준 사람이야.’
목소리는 그 뒤로 조용해졌다. 마치 이찬이 허리를 펼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처럼.
별관 2층 복도 끝에서 이찬은 '2학년 3반 임시 교실'이라는 종이가 붙은 뒷문을 열었다.
오래 비어 있던 교실 특유의 냄새가 훅 끼쳐 왔고, 떠들던 소리가 절반쯤 줄어들었다. 아이들 절반은 이찬을 쳐다보고, 나머지 절반은 곽태진 쪽을 살폈다.
자기 자리에 앉자 반 아이들이 힐끔힐끔 돌아보았지만,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긴 지난 6개월 동안 늘 그랬다.
곽태진은 운동장 쪽 창가 셋째 줄에 앉아 있었다. 오른팔에 깁스를 한 채로, 책상 위에 신문까지 펼쳐 놓고 있었다.
「지진 속 친구 구하려다 부상… 늘해고 곽 군의 용기」
‘친구를 구하려다.’
기사 속 친구에게는 이름이 없었지만, 그 이름 없는 친구가 자기라는 걸 이찬은 알았다. 문을 밖에서 잠그고 달아난 사람이 기사 속에서는 친구를 구하려다 다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게 기가 막힐 노릇 아닌가.
【저 녀석에게서 그날 냄새가 난다.】
‘조용히 해.’
조회 시간에 남궁현수 선생님이 들어와 출석부를 덮고 교탁을 짚었다.
"다들 알다시피, 도이찬이 오늘부터 다시 나온다. 큰일 날 뻔했는데 다행이다. 그리고 하나 더."
담임의 시선이 창가 쪽으로 향했다.
"태진이 기사 다들 봤지? 지진 때 친구 구하려다가 팔까지 다쳤다. 학교에서 표창 얘기도 나오고 있어. 박수 한번 쳐 주자."
짝짝짝.
박수 소리가 교실을 가득 채우는 동안 곽태진은 고개를 숙인 채 깁스한 팔만 책상 위에 올려 두고 있었다. 이찬은 손을 무릎 위에 얹은 채 끝까지 박수를 치지 않았다.
1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곽태진이 일어섰고, 옆자리의 최민규와 장도현도 따라 일어섰다. 6개월 동안 곽태진의 양옆에 붙어 다니던 둘이었다. 빵 봉지를 받아 가던 것도, 이찬의 실내화를 쓰레기통에 처넣던 것도 늘 그 둘이었다.
교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어차피 다들 몇 번이나 본 장면이었다.
이찬 쪽을 돌아본 곽태진이 성큼성큼 걸어와 자리 앞에 섰고, 최민규와 장도현이 그 뒤에 버티고 섰다. 이찬도 의자에서 일어섰다.
이번에는 곽태진의 턱이 이찬의 눈앞에 있었다. 2주 전까지만 해도 눈앞에 있던 건 곽태진의 명찰이었으니, 병원에 누워 있던 열흘 동안 이찬은 딱 그만큼 자란 셈이다.
곽태진도 그걸 알아챘는지, 그의 눈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야. 너 병원에서 뭐라고 했어."
"아무 말도 안 했어."
"앞으로도 하지 마."
곽태진이 왼손으로 이찬의 어깨를 떠밀었다. 6개월 동안 늘 하던 대로였는데, 이번에는 이찬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곽태진의 얼굴이 굳어지고 반 아이들이 숨을 죽이는 사이, 곽태진의 왼손이 이번엔 멱살로 날아왔다.
"입 다물어. 알았냐?"
【이 녀석이 그 문을 잠갔느냐.】
‘조용히 해.’
【먹어도 되겠느냐.】
‘안 돼.’
이찬은 곽태진의 손목을 잡았다. 세게 잡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귀가 먹먹해지면서 교실의 공기가 창 쪽으로 쏠리는 것 같았고, 가슴 안쪽의 차가운 자리가 처음으로 뜨거워졌다.
"태진아. 그날 문, 네가 잠갔잖아."
쨍그랑.
운동장 쪽 창문 열두 장이 한꺼번에 깨져 나갔다. 유리는 전부 바깥으로 터져 화단 위로 쏟아졌고, 교실 바닥에는 한 조각도 떨어지지 않았다.
다시 정적이 내려앉은 교실에서, 곽태진의 손이 멱살에서 스르르 떨어졌다.
뒷걸음질 치던 곽태진은 의자에 걸려 그대로 넘어졌다.
털썩.
하필이면 깁스한 팔부터 바닥에 닿았다. 조회 시간에 박수를 받던 용기 있는 학생은 한동안 일어나지도 못했다.
바닥에 주저앉은 곽태진이 이찬을 올려다보았다. 6개월 동안 단 한 차례도 본 적 없는 각도였다. 그리고 그 얼굴은, 그날 문 너머에서 이찬을 보던 하얗게 질린 얼굴과 똑같았다.
맨 앞줄의 정하윤이 들고 있는 휴대폰에서 녹화 중임을 알리는 빨간 불이 깜박이고 있었다. 잠시 뒤 이찬의 주머니가 연달아 떨렸다.
[3반 단톡] 방금 뭐임
[3반 단톡] 창문 전부 밖으로 터짐
[3반 단톡] 안으로는 하나도 안 들어옴 이거 실화?
[3반 단톡] 도이찬 앞에서 터진 거 맞지
[3반 단톡] 곽태진 표정 봤냐
[3반 단톡] 영상 있음? 하윤아 올려줘
휴대폰을 꺼내 들여다보던 이찬은 결국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손이 떨려서 더는 화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주머니에서 손을 빼는 순간, 오른손 등 위에 무언가가 비쳤다. 유리에 금이 가듯 손등 위의 공기에 금이 간 것 같은 가느다란 무늬였는데, 그것은 잠깐 금빛으로 빛나다가 피부 아래로 가라앉아 사라졌다.
‘내가 뭘 한 거야.’
이찬은 그저 곽태진의 손목을 잡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잡은 순간 교실 안의 무언가가 한쪽으로 접혔다가 탁 하고 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녹화를 멈추고 휴대폰을 내린 정하윤이 이찬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무서워하는 얼굴은 아니었고, 이찬은 어쩐지 그 눈을 피하지 못했다.
1분도 안 돼 선생님들이 뛰어 들어왔는데, 담임 남궁현수 선생님이 맨 앞이었다.
"다들 괜찮아? 다친 사람!"
손을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유리가 전부 바깥에 떨어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남궁 선생님은 깨진 창틀을 둘러봤다. 창틀은 텅 비어 있었고, 저 아래 화단에서 유리 조각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지진 여파로 창틀이 약해져 있었나 보다. 별관도 오래된 건물이라."
"근데 쌤, 왜 전부 밖으로 깨져요?"
창가 쪽의 최민규가 묻자, 남궁 선생님이 잠깐 말을 멈췄다.
"……바람 때문이겠지."
창밖의 나뭇가지는 하나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그걸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행정실 직원이 올라와 사진을 찍었고, 반 아이들은 옆 교실로 자리를 옮기라는 지시를 받았다. 보건실로 가는 곽태진은 나가는 내내 이찬 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교실을 둘러보던 남궁 선생님이 이찬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미간을 좁혔다.
"너 얼굴이 하얗다. 괜찮아? 퇴원한 지 며칠 됐다고."
"괜찮아요."
남궁 선생님이 이찬의 어깨를 토닥였다.
"도이찬, 수업 끝나고 교무실로 와. 사고 당시 자리에 있었으니까 경위서 하나만 쓰자."
"네."
옆 교실에서 2교시와 3교시가 지나가는 동안 이찬은 수업을 하나도 듣지 못했다. 칠판 글씨 대신 깨진 창문이 자꾸만 눈앞에 떠올랐다. 보건실에서 돌아온 곽태진은 맨 앞자리에 앉아서는 뒤쪽을 한 차례도 돌아보는 법이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배가 이상할 만큼 고팠다. 엄마가 싸 준 도시락 두 개를 다 비웠는데도 허기는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엄마는 이걸 어떻게 알고 두 개를 쌌지.’
목소리는 수업 내내, 점심시간 내내 잠잠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끼어들던 녀석이 그러니까 오히려 더 이상했다.
종례가 끝나고, 이찬은 교무실에 가기 전에 별관 2층 임시 교실부터 들렀다. 깨진 창틀마다 투명 비닐이 테이프로 붙어 있는 텅 빈 교실로 이찬은 혼자 들어갔다.
비닐이 바람에 부풀었다가 꺼졌다. 이번에는 진짜 바람이었다.
곽태진의 손목을 잡았던 오른손을 내려다봤지만 손등은 멀쩡했고, 금빛 무늬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가슴 안쪽만 아직 조금 뜨거울 뿐이었다.
지금쯤 교무실에서는 남궁 선생님이 경위서를 들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거기에 뭐라고 써야 할지 이찬은 아직 몰랐고, 그보다 먼저 물어봐야 할 게 있었다.
‘너지? 네가 한 거지?’
물으면 곧장 대꾸하던 목소리가 이번에는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찬은 다시 물었다.
‘창문. 네가 깬 거잖아. 손등에 그 무늬도 너고.’
비닐이 또다시 부풀었다 꺼지는 사이, 머릿속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낮게 가라앉았다.
【아니다.】
이찬은 숨을 멈췄다.
【네가 했다.】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어요. 첫 감상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