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4. 집이면 월세 내.
"그러니까 손목을 잡았는데 창문이 깨졌다?"
남궁현수 선생님이 경위서를 눈앞까지 들어 올렸다. 4월 27일 저녁 여섯 시, 다른 선생님들이 다 퇴근해 형광등이 절반만 켜진 본관 1층 교무실이었다.
"네. 잡았는데…… 깨졌어요."
"잡은 거랑 깨진 거랑은 상관이 없고."
"……네."
담임은 한숨을 푹 쉬며 경위서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 경위서 작성자: 2학년 3반 도이찬 일시: 4월 27일(화) 1교시 쉬는 시간 장소: 별관 2층 2학년 3반 임시 교실 내용: 곽태진 학생과 이야기하던 중 운동장 쪽 창문 12장이 깨짐 원인: 모름
"원인에 '모름'이라고 쓰면 행정실에서 다시 써 오래."
"그럼 뭐라고 써요?"
"창틀 노후. 지진 여파. 그렇게 써."
이찬은 볼펜을 집어 들고 '모름' 위에 두 줄을 그은 다음, 그 옆에 '창틀 노후(지진 여파)'라고 적었다.
‘노후 아닌데.’
방과 후 빈 교실에서 들은 목소리가 아직 머릿속을 맴돌았다. 네가 했다. 목소리는 그 말만 남기고는 지금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경위서를 파일에 끼우던 담임이 문득 손을 멈췄다.
"근데 태진이랑은 무슨 얘기 하다가 그랬어?"
"그날 얘기요. 지진 난 날."
담임의 손가락이 파일 모서리를 톡 두드렸고, 대답이 돌아오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날 얘기는 나중에 하자. 오늘은 창문만."
‘나중에 언제요.’
물론 속으로만 물은 말이었다. 담임은 시계를 보더니 벌써 일곱 시가 넘었다며 이찬을 내보냈다.
저녁 일곱 시 반, 늘해시 구도심 시장 골목 끝에 있는 엄마의 식당 「선영네」였다.
마지막 손님이 나간 홀에서 이찬이 공깃밥을 또 한 그릇 비우는 동안, 엄마는 김치찌개 냄비를 다시 데워 왔다.
"점심에 도시락 두 개 다 묵었나."
"응."
"그런데 또 세 공기."
"네 공기요."
카운터에 앉은 미숙 이모가 정정했다. 이모는 아까부터 빈 공깃밥 그릇을 하나하나 세는 중이었다.
"아이고, 쟤 다리 봐라. 바지가 또 짧아졌다."
이찬은 대꾸할 새도 없이 빈 공기를 내밀었다. 점심에 두 사람 몫을 먹었는데도 창문이 깨진 뒤부터는 배 속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허기가 졌다. 이쯤 되면 식욕이 아니라 무슨 병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셈이다.
‘나 원래 이렇게 먹는 애 아니었는데.’
다섯 번째 공기를 다 비우고 나서야 숟가락이 멎었다. 엄마가 빈 공기 다섯 개를 겹쳐 들며 한마디 했다.
"많이 묵네. 크느라 그렇다."
엄마는 거기서 더 캐지 않고 앞치마 끈을 고쳐 묶더니 설거지를 하러 들어갔다. 다행히 엄마가 내린 결론은 크느라 그렇다는 한마디였으니, 이찬으로서는 굳이 보탤 말이 없는 셈이다.
밤 열한 시, 이찬은 씻지도 못한 채 방바닥에 깔린 이불 위로 쓰러졌다.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마.’
목소리는 정말로 잠잠했다. 병원에서 깨어난 날부터 두 주째 이찬의 머릿속에 사는 그 목소리는, 그날 교실로 뛰어든 먹빛 무언가가 자기라고 했고, 나갈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름만은 끝까지 알려 주지 않았다.
이찬은 눈을 감았다.
눈을 뜨자 이찬은 교실 한가운데였다.
‘……학교?’
방금까지 이불 위에 누워 있었으니, 이찬은 잠옷 차림에 맨발 그대로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별관 임시 교실이 아니었다. 본관 3층 동쪽 끝, 무너지기 전의 2학년 3반 교실이었고, 칠판 옆 시간표도 맨 뒤 사물함도 그날 그대로였다.
다만 교실이 통째로 뒤집혀 있었다. 발밑에는 천장과 형광등이 깔려 있었고, 책상과 의자는 머리 위에 거꾸로 매달렸으며, 창밖에는 운동장 대신 아무것도 없는 검은색뿐이었다.
앞문은 닫혀 있었다.
이찬은 그 문을 오래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다.
‘꿈이구나.’
【꿈이 아니다. 네 머릿속이다.】
두 주 동안 들어 온 그 목소리였는데, 이번에는 머릿속이 아니라 칠판 쪽에서 들려왔다.
칠판 앞의 어둠이 몸을 일으켰다. 머리 위에 거꾸로 붙은 책상들에 닿을 만큼 커다란 그것을 보고 이찬이 뒷걸음질 치자, 어둠은 그 자리에서 바람 빠지듯 쪼그라들었다.
교탁 위에 내려앉은 것은 손바닥만 한 먹빛 도마뱀이었다. 등에는 금빛 실금이 한 줄 나 있었고, 눈만 오래된 금색이었다.
그날 무너지는 천장 아래에서 이찬에게 날아들던, 바로 그 먹빛이었다.
"……네가 그 목소리야?"
【그렇다.】
"생각보다 작네."
【요력이 바닥이라 그렇다. 3푼 남았다.】
‘3푼이면 3퍼센트. 휴대폰이었으면 벌써 꺼졌다.’
교탁 쪽으로 걸어가던 이찬은 머리 위에 거꾸로 매달린 자기 책상 모서리에 이마를 박을 뻔해서 허리를 숙여 피했다.
【거기 매달린 건 네 자리냐.】
"……응."
【낮다.】
"그건 내 책상 높이 탓이 아니야."
이찬의 눈길이 다시 앞문 쪽으로 향했다. 닫힌 문 너머로 걸쇠가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거기 걸려 있다는 건 굳이 보지 않아도 아는 거다.
"근데 왜 하필 이 교실이야?"
【네 머릿속에서 가장 크게 남은 곳이다. 나는 고르지 않았다.】
‘그날 갇힌 교실이 제일 크구나. 내 머릿속에서.’
이찬은 교탁 앞에서 허리를 숙여 도마뱀과 눈높이를 맞췄다.
"그럼 이제 내 몸에서 나가."
【못 나간다. 병원에서도 말했다.】
"왜 못 나가는지는 말 안 했잖아."
도마뱀은 꼬리를 동그랗게 말더니, 한참 뜸을 들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네 피가 나를 묶었다. 네 몸은 들어온 것을 놓아주지 않는 몸이다. 들어오는 건 쉬웠는데, 나가는 문이 없다.】
"내 피가?"
【숨을 곳이 필요했다. 가장 가까운 몸으로 들어갔다. 그게 실수였다.】
무너지는 천장, 쓰러진 철벽 님, 그리고 자기 쪽으로 날아들던 먹빛까지, 이찬은 그날을 하나씩 떠올렸다. 숨을 곳. 그 목소리가 맨 처음 한 말이 그거였다.
‘그러니까 나는 대피소였구나. 문 없는 대피소.’
"그럼 언제 나가는데."
【내가 회복해서 결박을 끊으면. 그때까지 이 몸이 내 집이다, 인간.】
이찬은 잠깐 말이 없었다.
어느 밤이 생각났다. 엄마가 식탁에 월세 계약서를 펴 놓고 형광펜을 긋던 밤이었다. 엄마는 계약서를 한 줄 한 줄 소리 내어 읽고 나서,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조항 하나를 고쳐 달라고 했다. 이찬이 열한 살 때의 일이었다.
"집이면 월세 내."
【……뭐라 했느냐.】
"남의 집에 살면 대가를 내야지. 계약서도 쓰고."
【대가는 인간이 내는 것이다. 1500년 동안 그랬다.】
"여긴 내 몸이야. 그러니까 이번엔 네가 내."
탁.
도마뱀이 꼬리로 교탁을 내리치자 분필 가루가 뿌옇게 날렸다.
【좋다. 힘을 나눠 주마. 지식도. 내가 나갈 때까지.】
"적어."
【무엇을.】
"방금 한 말. 계약서로."
칠판 아래에서 분필 하나가 저절로 일어서더니, 오래된 획으로 칠판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분필 긁히는 소리가 거꾸로 선 교실에 울려 퍼졌다.
▣ 퇴거 계약서 제1조(목적) 세입자 천곡은 집주인 도이찬의 몸에서 나간다. 제2조(지불) 세입자는 나갈 때까지 집주인에게 힘과 지식을 나눠 준다. 제3조(공동 운명) 집주인이 결박 상태에서 죽으면 세입자도 소멸한다. 그러므로 세입자는 집주인을 먹지 않는다.
이찬의 눈이 제1조의 이름에 가서 멈췄다.
‘천곡. 이름이 천곡이었구나.’
"3조는 내가 말 안 했는데."
【사실이라서 적었다. 네가 죽으면 나도 사라진다.】
‘그럼 그동안 날 먹을 생각도 해 봤다는 거네.’
그 생각은 굳이 입 밖에 내지 않고, 이찬은 손가락으로 칠판을 가리켰다.
"힘을 나눠 준다는 거. 오늘 창문 그거야?"
【그렇다. 네가 공간을 접었다가 놓았다.】
"내가?"
【네가 그 녀석 손목을 잡을 때 내 힘이 네 손으로 샜다. 손 닿는 곳의 공간이 접혔다. 접힌 것은 놓으면 튕긴다. 그래서 유리가 밖으로 터졌다.】
"그럼 네가 한 거잖아."
【힘은 내 것이다. 접은 손은 네 것이었다.】
천곡의 금색 눈이 가늘어졌는데, 무언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이었다.
【……인간의 손이 그걸 할 줄은 몰랐다.】
이찬은 오른손을 내려다봤다. 손등은 멀쩡했고, 낮에 잠깐 비쳤던 금빛 무늬도 보이지 않았다.
"4조랑 5조도 써."
이찬이 칠판 앞으로 다가섰다.
"나갈 때는 내가 인정해야 나가는 거야. 그리고 허락 없이 내 몸 쓰지 마."
【인간 주제에 조항이 많구나.】
"엄마가 그랬어. 조항 안 쓰면 나중에 다 우리 탓이 된다고."
허공에서 잠깐 머뭇거리던 분필이, 이윽고 두 줄을 더 써 내려갔다.
▣ 퇴거 계약서(추가) 제4조(퇴거) 세입자가 결박을 풀 만큼 회복하고, 집주인이 인정하면 퇴거가 끝난다. 제5조(몸) 세입자는 집주인의 허락 없이 몸을 쓰지 않는다.
"서명은 어떻게 해?"
【손바닥을 대라.】
오른손 바닥을 칠판에 대자, 차가운 칠판 위로 손바닥 모양을 따라 금빛이 번졌다.
"너도."
천곡은 칠판을 한참 동안 노려보았다.
【봉인 문서와 생김새가 닮았다.】
"계약서야."
【1500년 전 인간들도 그렇게 말했다.】
"그 사람들이랑 나랑 같아?"
【……다르다. 그놈들은 조항을 숨겼다.】
그래도 천곡은 한참 동안 꼼짝하지 않았고, 이찬은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하긴 엄마도 계약서 앞에서는 절대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마침내 작은 앞발이 칠판에 닿자 금빛이 다시 번졌다.
쿵.
머리 위의 책상 하나가 바닥으로 내려와 제자리에 섰다. 이어서 의자들이, 사물함이, 시간표가 차례로 내려오면서 거꾸로 된 교실이 바로 서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창밖의 검은색이 걷히자, 그 자리에 그날 점심의 운동장이 나타났다. 아무도 없는 운동장이었다.
그 운동장을 바라보던 이찬은 천곡 쪽으로 돌아섰다.
"천곡."
처음으로 불러 보는 이름에, 도마뱀이 고개를 들었다.
"잘 부탁해. 세입자."
【……애송이 주제에.】
인간에서 애송이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칭찬은 아닐 것이다.
금색 눈이 이찬의 목덜미 언저리를 훑었다. 1500년을 굶은 짐승의 눈이었다.
【먹는다.】
"먹으면 너도 죽어. 3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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