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6. 얘가 원래 이래요.
"이찬아, 3번 테이블 계란말이!"
"네!"
이찬은 주방 창구에서 접시를 받아 들었다. 5월 2일 일요일 저녁 일곱 시의 「선영네」는 주말 저녁답게 테이블 여섯 개가 거의 다 차 있었다.
검사 하루 전이었다. 내일 아침 1교시, 체육관.
‘숨기는 방법, 아직도 생각 중이야?’
【생각 중이다.】
‘이틀째 그 말만 하는데.’
【1500년 생각한 것도 있다. 이틀은 짧다.】
계란말이를 3번 테이블에 내려놓다가, 마침 계산하러 일어선 단골 아저씨와 눈높이가 딱 맞았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이찬이 아저씨를 올려다보던 사이였는데 말이다.
카운터 뒤에서는 미숙 이모가 행주를 든 채 이찬을 위아래로 훑었다.
"얘 키 무슨 일이야. 볼 때마다 커."
"이모, 그 말 저번에도 하셨어요."
"저번보다 또 컸다니까."
이모는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하긴 보름 남짓 만에 그만큼 컸으니, 눈에 안 띄는 게 더 이상한 거다. 이찬은 웃으면서 빈 그릇을 걷었지만, 웃는 동안에도 내일 일이 머릿속에서 잠시도 비켜 주지 않았다.
주방 창구로 그릇을 넘기는데 엄마가 이찬을 불러 세웠다. 엄마 손에 들린 종이는 이찬이 금요일에 가방에 넣어 온 보건실 쪽지, 성장판 검사를 권한다는 바로 그 쪽지였다.
"내일 학교에서 뭐 잰다며."
"응. 체육관에서."
"그거 끝나면 병원도 가자. 키 크는 거 재 보자."
엄마는 쪽지를 접어 앞치마 주머니에 넣고는 다시 국자를 들었고, 그 뒤로는 이찬 쪽을 더 보지 않았다.
‘내일 걸리면, 병원이 아니라 다른 데로 가겠지.’
이찬은 그 생각을 접어 두고 다음 접시를 받았다.
식당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딸랑.
혼자 들어온 손님은 여자였다. 회색 코트에 무테안경, 낮게 묶은 검은 머리에 왼손에는 손바닥만 한 검은 수첩까지 쥐고 있어서, 아무리 봐도 시장 식당에 혼자 저녁 먹으러 오는 손님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찬의 눈은 그 여자의 왼쪽 어깨에 걸려 버렸다.
어깨 위에 고양이만 한 흰 짐승이 하나 올라앉아 있었다. 털은 눈처럼 희었고 이마에 눈이 하나 더 박혀 있었는데, 그 세 번째 눈이 식당 안을 천천히 훑어 나가고 있었다.
물론 식당 안 누구도 그 짐승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손님들은 찌개를 떠먹느라 바빴고 미숙 이모는 계산기만 두드렸다.
‘철벽 님 옆의 외다리처럼.’
그날 무너진 교실에서 철벽 님 옆에 서 있던 외다리가 떠올랐다. 그때도 그것을 본 사람은 철벽 님과 이찬, 둘뿐이었다.
‘요원이다.’
여자는 카운터 앞에 서더니 명함을 내밀었다.
▣ 명함 재난대응 교육원 재난 피해 학생 심리상담관 윤서하
"도이찬 학생 어머님 되시죠. 늘해고 붕괴 사고 생존 학생 상담 차 왔습니다. 미리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엄마는 명함을 받아 들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윤서하의 얼굴도, 어깨도 아닌 명함만 들여다보다가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저녁 장사 중인데요."
"구석 자리에서 10분이면 됩니다."
엄마의 시선이 말없이 이찬에게로 넘어왔다. 이찬은 고개를 끄덕였는데, 끄덕이고 나서야 자기가 무엇에 끄덕였는지 깨달았다.
‘대응단이 집까지 왔다. 검사 하루 전에.’
【애송이. 저 흰 털 짐승, 눈이 셋이다.】
‘알아. 나도 봤어.’
【보지 마라. 저것은 보는 짐승이다.】
윤서하가 자리 잡은 곳은 식당 맨 구석, 냉장고 옆 2인용 테이블이었다. 이찬 맞은편에 앉아 수첩을 펴는 동안에도 흰 짐승은 여전히 그 어깨 위에 버티고 있었다.
이찬은 짐승을 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윤서하의 손에 눈을 두었는데, 손가락이 길었고 펜을 쥐는 자리에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편하게 대답하면 됩니다. 4월 13일, 도이찬 학생은 2학년 3반 교실에 혼자 있었죠."
"네."
"왜 혼자 있었어요?"
"……가방 가지러요. 다른 애 가방."
윤서하가 수첩에 받아 적는 동안 펜이 종이를 짧고 빠르게 긁었다.
이찬은 참으려고 했다. 그래도 입이 먼저 움직였다.
"혹시…… 1팀이세요?"
윤서하의 펜이 멈췄다.
"상담관입니다."
"아, 네. 상담관님."
‘1팀이다. 대답이 너무 빨랐어.’
【무엇이 1팀이냐.】
‘철벽 님 팀. 대응단에서 제일 센 팀.’
【그 외다리와 계약했던 인간 말이냐.】
‘응. 그날 나 꺼내 준 사람.’
천곡이 더 묻지 않자 윤서하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구조될 때, 구조한 요원이 뭐라고 했어요?"
"아직…… 살아 있네, 하셨어요."
이번에는 윤서하의 펜 끝이 한참이나 종이 위에 머물렀다. 윤서하는 수첩 맨 앞장을 엄지로 쓸어 넘겼다가 다시 원래 장으로 돌아왔는데, 무언가를 확인하는 손길 같았다.
"……그 사람답네요."
아주 작은 목소리였고, 상담관의 말투는 아니었다.
하지만 윤서하는 금방 원래 목소리로 돌아와 수첩을 넘겼다.
"몸은 어때요. 학교 검진 기록 봤습니다. 17일 만에 8.7센티미터."
이찬은 숨을 삼켰다. 금요일에 보건실에서 잰 기록이 벌써 이 사람 수첩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성장기라서요."
"성장기."
윤서하는 그 말을 그대로 따라 적었는데, 따옴표까지 쳐서였다.
그때 주방에서 칼질 소리가 났다.
탕. 탕. 탕.
평소보다 훨씬 큰 소리였다. 엄마가 도마 위에서 무를 썰고 있었다. 저녁 장사 한복판에 무를 썰 일이 있을 리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엄마는 끝내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윤서하의 어깨 쪽에는 더더욱 눈길을 주지 않았다.
윤서하가 펜 끝으로 수첩을 톡 두드렸다.
"무너질 때 뭘 봤어요?"
"천장이요. 먼지랑."
"그것 말고."
"……아무것도 못 봤어요."
대답하고 나자마자 귀가 뜨거워졌다. 거짓말을 하면 늘 귀부터 빨개지는 체질이라, 이럴 때만큼은 자기 몸이 원망스러웠다.
윤서하의 눈이 이찬의 귀에 잠깐 머물렀다가 다시 수첩으로 내려갔고, 펜이 무언가를 더 적어 넣었다.
‘귀 적었다. 지금 내 귀 적었어.’
【네 귀는 거짓말을 못 하는구나.】
‘조용히 해.’
그때 어깨 위의 흰 짐승이 몸을 일으켰다.
짐승의 이마에 박힌 눈이 이찬에게, 아니 정확히는 이찬의 가슴께에 고정됐다. 천곡이 있는 자리였다.
이찬은 숨을 멈췄다.
【흰 털 짐승이 감히……】
천곡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는데, 잡아먹을 듯한 그 목소리는 이찬도 처음 듣는 것이었다.
흰 짐승의 털이 바짝 서더니 짐승이 입을 열었다. 늙은 학자 같은 목소리였다.
"이 존재의 정체는, 남방의 대—"
그 순간 짐승의 세 눈이 동시에 뒤집혔다.
툭.
흰 짐승은 윤서하의 어깨에서 굴러떨어져 테이블 모서리에 걸쳤다가, 그대로 바닥에 대자로 뻗어 버렸다. 네 다리가 하늘을 향해 있었다.
이찬의 눈이 짐승을 따라 바닥까지 내려갔다.
‘……기절했어?’
윤서하는 한숨을 쉬면서 몸을 숙이더니, 바닥의 흰 짐승을 안아 올렸다. 아무렇지도 않은 손길이었다.
"얘가 원래 이래요."
짐승을 다시 어깨에 올려놓은 윤서하가 눈을 잠깐 깜빡였다. 그러고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펼쳐 둔 수첩에서 방금 적은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방금 제가, 무슨 질문을 하고 있었죠."
"무너질 때 일이요."
"아. 네."
수첩 맨 아래에 한 줄을 더 적던 윤서하의 펜이 그 자리에서 멎었다.
윤서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무테안경 너머의 눈이 이찬을 똑바로 마주했다.
이찬은 그제야 알았다. 방금 자기 눈이 무엇을 따라갔는지, 식당 안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것이 떨어지는 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눈으로 좇았다는 걸.
윤서하는 아무 말 없이 안경을 밀어 올리더니 수첩에 아주 짧게 무언가를 적었다.
‘들켰다.’
이찬은 다급하게 바닥을 가리켰다.
"바, 방금 뭐가 지나가서요. 벌레 같은 거."
"여기 식당인데요."
"그러니까요. 엄마한테 말해야겠다."
귀가 또 뜨거워졌는데, 이번에는 목덜미까지였다. 윤서하는 그 말에는 대꾸도 없이 이찬의 귀를 다시 한번 훑었다.
【……네가 따라 봤다. 멍청이.】
애송이도 아니고 멍청이였다. 솔직히 반박할 말이 없어서, 이찬은 억울한 대로 입을 꾹 다물었다.
윤서하가 펜 뚜껑을 닫았다.
딸깍.
그 작은 소리에도 이찬의 어깨가 움찔했다. 윤서하는 수첩을 덮더니, 상담관 말투를 내려놓은 목소리로 물었다.
"도이찬."
반말이었다. 조용한 반말.
"그날 교실 문, 밖에서 잠겼더라."
테이블 아래에서 이찬의 손이 주먹을 쥐었다.
교실 앞문, 찰칵 걸리던 바깥쪽 걸쇠, 계단 아래로 멀어지던 발소리.
담임은 그 얘기는 나중에 하자고 했고, 신문은 친구를 구한 학생 얘기만 했다. 그날 문이 밖에서 잠겨 있었다는 얘기를 어른 입에서 먼저 듣는 건, 따지고 보면 이번이 처음인 거다.
"너, 그날 뭘 봤니?"
이찬은 입을 열었지만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몰랐다. 걸쇠부터인지, 철벽 님부터인지, 땅 밑에서 올라온 검은 것부터인지, 아니면 자기 안으로 뛰어든 먹빛부터인지.
그때 윤서하의 코트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지이잉.
화면을 확인한 윤서하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잠깐만요. 바로 올게요."
윤서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 밖으로 나가자, 흰 짐승도 어깨 위에 축 늘어진 채 딸려 나갔다. 문에 달린 종이 다시 울렸다.
식당 유리문 너머, 가로등 아래에서 윤서하가 휴대폰을 귀에 대고 서 있었는데, 등은 이쪽으로 돌린 채였다.
주방의 칼질 소리는 어느새 그쳐 있었다. 언제 멈췄는지 이찬은 알아채지도 못했다.
그리고 탁자 위에 수첩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윤서하가 일어설 때 코트 자락이 쓸고 지나간 탓에, 덮여 있던 수첩이 반쯤 펼쳐져 이찬 쪽을 향하고 있었다. 반듯한 글씨였다.
‘보면 안 돼.’
【봐라.】
이찬은 봤다.
▣ 윤서하 수첩 4/13 늘해고 3층 붕괴. 생존 1. 도이찬(17). 문: 밖에서 잠김. 모노 마지막 교신 — "애 하나, 이상해." 백택: 보려 하지 말 것. 5/3 늘해고 판독 — 직접 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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