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5. 내보험
대시보드의 푸른 불빛이 두 사람의 무릎께까지 내려왔고, 주차장 형광등은 차 앞 유리에 흰 줄 하나를 길게 그었다.
"시동은 켜 두겠습니다."
강무진의 말과 함께 엔진이 낮게 떨었고, 송풍구에서는 더운 바람이 조금씩 새어 나왔다.
"네."
은서는 조수석 문을 닫았다.
탁.
생각보다 큰 소리였고, 가방은 무릎 위에 올려 둔 채였다.
수요일 밤 9시 10분, 마포 공영주차장 3층의 기둥 뒤 가장 안쪽 자리였다. 강무진은 경사로가 앞 유리로 보이게 차를 대 두었다.
짙은 회색 세단은 은서가 3층으로 올라왔을 때 이미 시동이 걸린 채였고, 은서가 창을 두드리자 잠금이 풀렸다.
운전석의 강무진은 휴대폰 대신 앞 유리 너머 경사로 쪽에 눈을 두고 있었다.
남편은 회식이었고, 8시쯤 메시지가 와 있었다.
[태오] 회식 시작. 자기 먼저 자
은서는 거실 스탠드를 켜 둔 채 집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큰길을 건너 여기까지 오는 데 천백이십 걸음이었다.
주차장 3층에서는 콘크리트 냄새가 났고, 어디선가 물방울이 떨어졌다. 똑. 바닥의 화살표가 형광등 아래에서 희끄무레하게 떠 보였다.
"먼저 보여 드릴게요."
은서는 휴대폰을 꺼내 사진첩에서 두 장을 골라 화면을 강무진 쪽으로 돌렸다.
첫 장은 노트북 화면을 찍은 사진으로, 법인카드와 주차 결제 내역 가운데 문제의 줄이 담겨 있었다.
「10/09 호텔 세르반 한남 주차장 18:41~20:02」
"6시 41분에 들어갔어요. 문자가 오기 11분 전이에요. 남편은 그날 성수 현장에 있었다고 했어요."
강무진의 눈이 입차 시각에 머무는 것을 보고 은서는 다음 사진으로 넘겼다.
잠금 화면 위에 떠오른 미리보기였다. 윤 실장, 어제 고마웠어요.
"이건 일요일에 보여 드렸어요. 토요일 밤 10시 반이에요."
"네."
은서는 자기 휴대폰의 잠금 화면을 켜서 강무진 쪽으로 돌렸다. 8년 전 결혼식 사진이었다.
"남편 사진은 이게 제일 잘 나온 거예요."
강무진은 사진 속 남자의 얼굴을 살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비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강무진이 자기 휴대폰을 꺼냈다. 사진은 두 장이었고, 강무진은 첫 장을 띄워 휴대폰째 은서에게 건넸다.
어느 건물 뒤편 주차장이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검은 SUV 옆에 남자와 여자가 나란히 서 있었다.
작업 점퍼 차림의 남자는 남편이었고, 여자는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긴 머리를 낮게 묶어 왼쪽 어깨로 넘기고 있었다.
"어제 저녁 7시. 한남점 뒤 주차장입니다. 퇴근길에 들렀습니다."
"검은 차는 남편 차예요."
"압니다. 번호를 확인했습니다."
"그 사람은 몰랐어요? 찍히는 거."
"모릅니다.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강무진 씨는 어디서 찍으셨어요?"
"길 건너 편의점 앞, 차 안입니다."
두 번째 사진은 같은 자리, 1분 뒤였다.
여자가 남편의 팔을 가볍게 잡고 있었고, 남편은 웃는 얼굴이었다.
'저 얼굴은 나도 안다. 레스토랑에서, 잠금 화면 속에서.'
은서의 눈은 사진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은서는 휴대폰을 강무진에게 돌려주면서, 그 두 장을 보내 달라는 말은 끝내 꺼내지 않았다.
'받으면 남는다. 남편 옆에서 자는 휴대폰에.'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강무진이 휴대폰을 무릎에 내려놓았을 때 대시보드 시계는 9시 25분이었다.
"네."
"본인 보험, 조회해 보셨습니까?"
은서의 눈이 강무진에게로 갔다.
'보험. 생각도 안 해 본 쪽이다.'
"보험이요?"
"직업병입니다. 배우자가 다른 사람을 만나면 저는 보험부터 봅니다."
"회사에서 드는 단체보험 하나 있어요. 실손."
"그것 말고, 차은서 씨가 모르는 계약입니다. 보험은 본인 모르게 들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본인도 모르게요?"
"계약자가 따로 있으면 그렇습니다. 피보험자는 조회해 보기 전까지 모릅니다. 보험 조회 서비스에서 본인이 조회할 수 있습니다. 5분이면 됩니다."
은서가 휴대폰을 들어 강무진이 말한 이름을 검색하자 본인 인증 화면이 떴다.
이름과 생년월일, 휴대폰 번호를 넣으니 인증 번호가 문자로 날아왔다.
여섯 자리 숫자를 하나씩 눌러 넣자 화면 가운데에서 동그라미가 돌기 시작했다.
송풍구의 바람 소리만 차 안을 채웠다. 그동안 강무진은 앞 유리 쪽에 눈을 둔 채, 은서의 화면으로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주차장 3층에는 차가 일곱 대, 기둥이 여섯 개, 비상계단이 두 곳 있었다. 물론 은서가 오면서 세어 둔 숫자였다.
'어디서든 출구부터. 오늘도.'
은서는 무릎 위 가방 끈을 손가락에 감았다.
목록이 뜬 건 대시보드 시계가 9시 31분을 가리킬 때였다.
맨 위는 은서가 아는 계약이었다. 분관 단체보험, 실손으로, 계약자는 분관이고 피보험자는 차은서였다.
그런데 그 아래로 세 줄이 더 이어져 있었다.
'모르는 이름이 셋.'
은서는 첫 줄을 눌렀다.
「여울생명 정기보험 계약일 2025. 9. 15. 계약자 정태오 / 피보험자 차은서 사망 3억 원 / 정상」
뒤로 가기를 누르고 두 번째 줄로 내려갔다.
가람생명 상해보험, 계약일은 2025년 10월 20일이었고 계약자 정태오, 피보험자 차은서였다.
상해사망 2억 원을 확인하고 세 번째 줄을 열었다.
도담화재 상해보험, 계약일은 2025년 12월 8일이었다.
계약자 정태오, 피보험자 차은서, 상해사망 2억 원.
은서가 화면을 강무진 쪽으로 돌리자, 강무진은 그제야 화면을 들여다보며 한 줄씩, 세 줄을 읽어 내려갔다.
강무진의 눈이 다음 줄로 내려가는 속도는 서류를 읽는 사람답게 한결같이 일정했다. 하긴 그게 이 사람의 일일 것이다.
"3억, 2억, 2억."
"7억입니다."
숫자를 먼저 더한 건 강무진이었다. 은서는 금액을 더하는 대신 날짜를 짚었다.
'9월, 10월, 12월. 한 건씩 나눠서.'
"작년 9월, 10월, 12월이에요. 남편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없어요."
'9월 15일은 월요일. 내가 쉬는 날.'
아마 그날 아침에도 남편은 흰 머그에 커피를 내려 두었을 것이다.
강무진의 말이 조금 느려졌다.
"타인의 사망보험은 피보험자가 서면으로 동의해야 합니다. 차은서 씨가 서명을 해야 계약이 됩니다."
"네."
"서명하셨습니까?"
"한 적 없어요."
은서는 일하면서 이름을 쓸 일이 많았다. 작품 대여 계약서, 캡션 교정지, 운송 확인서에 이름을 적었지만, 그 어디에도 이 보험사들의 이름은 없었다.
은서는 화면을 끄지 않았고, 대시보드 불빛 아래 세 줄은 그대로 떠 있었다.
'계약자 정태오. 세 번.'
"보험료는 누가 내요?"
"계약자가 냅니다. 매달."
줄마다 「정상」이라는 말이 꼬리처럼 따라붙었다. 그러고 보면 은서는 남편의 개인 계좌를 본 적이 없었다. 한 번도.
은서의 엄지는 반지 위에 얹혀 있었지만 돌아가지는 않았다.
이틀 전 둔치에서 들은, 오세준 앞으로도 사망보험이 있었다던 말이 떠올랐다.
'거기까지만. 지금은 화면만 본다.'
은서는 세 번째 줄을 다시 읽었다.
"저도 보겠습니다."
자기 휴대폰을 든 강무진의 손가락은 인증 번호를 은서보다 빠르게 눌러 넣었다.
목록은 짧았고, 강무진은 화면을 은서 쪽으로 기울였다.
강무진의 목록은 두 줄이었다. 가람생명 정기보험 사망 3억 원, 그리고 도담화재 상해보험 상해사망 2억 원이었다.
피보험자는 강무진이었고, 계약자 칸에는 같은 이름이 나란히 찍혔다.
「계약자 윤채린」
은서의 머릿속에 로비에서 본 옆얼굴 반쪽이 다시 떠올랐다.
은서는 계약일부터 확인했는데, 가람생명은 2025년 10월 20일, 도담화재는 2025년 12월 8일이었다.
자기 화면을 다시 켜고 두 번째 줄과 세 번째 줄을 찾았다. 10월 20일, 12월 8일.
"날짜가 같아요."
먼저 입을 연 쪽은 은서였다. 은서는 자기 휴대폰을 강무진의 화면 옆에 나란히 댔다.
"제 것 두 건하고 강무진 씨 것 두 건. 같은 날이에요."

강무진은 말없이 두 화면을 번갈아 훑었다. 한 번, 두 번. 그러고 나서야 은서에게로 눈을 들었다.
"저는 금액부터 봤습니다."
"저는 날짜부터 봐요. 일이 그래서요."
강무진은 한 박자 늦게 숫자를 말했다.
"3억, 2억. 5억입니다."
"강무진 씨는 서명하셨어요?"
"안 했습니다."
이번에 강무진은 한 박자도 두지 않았다. 일요일 복도에서 "몰랐습니다"라고 하던 때와 같은 빠르기였다.
"같은 날 두 사람 것을 같이 들었어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수익자는요? 누가 받아요?"
"수익자는 여기 안 나옵니다. 이런 계약은 열에 아홉 계약자가 받습니다."
'열에 아홉. 내 쪽은 정태오, 이쪽은 윤채린.'
휴대폰을 쥔 강무진의 손이 핸들 위에 올라가자 가죽 핸들이 작게 삐걱거렸다. 강무진은 엄지로 목록을 끝까지 다시 내려 보았다.
그러고는 보험사 이름을 하나씩 소리 내어 읽었다. 여울생명, 가람생명, 도담화재.
"우리 회사 계약은 없습니다."
혼잣말에 가까운 말이었고, 무슨 뜻인지 은서는 묻지 않았다.
강무진이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받아 적겠습니다."
강무진은 은서의 화면을 한 줄씩 짚어 가며 보험사, 종류, 계약일, 금액을 적었다. 자기 것 두 줄도 그 아래에 덧붙였다.
수첩 한 쪽이 글씨로 가득 찼고, 날짜 두 개에는 동그라미가 쳐졌다. 10월 20일, 12월 8일.
"남편분 사업은 어떻습니까."
"힘들다는 말은 한 번도 안 했어요."
"한 번도."
"네. 8년 동안."
강무진은 그 말까지 받아 적었고, 은서는 그 글씨를 거꾸로 읽었다. 「힘들다 — 0회」.
은서는 캡처 버튼을 눌렀다. 찰칵. 세 줄이 한 장에 다 들어오지 않아서 두 번을 찍었다.
지잉.
은서의 휴대폰이 짧게 떨리더니 화면 위쪽으로 메시지가 내려왔다.
[태오] 자기야 2차 간다 ㅠ 문 잘 잠그고 자!
메시지는 보험 목록 위에 잠깐 겹쳐 떴다가 올라갔고, 그 아래로 계약자 정태오라는 글자가 다시 드러났다.
'문 잘 잠그라고. 계약자가.'
은서는 답장을 쓰는 대신 휴대폰을 무릎 위에 엎어 놓았다. 남편이 늘 하던 방식 그대로였다.
엔진은 낮게 떨었고, 송풍구의 바람이 은서의 손등에 닿았다. 그 밖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주차장 저쪽에서 차 한 대가 빠져나가면서 헤드라이트가 기둥을 훑고 지나갔다. 강무진의 눈이 그 불빛을 경사로 끝까지 따라갔다.
문손잡이에 손을 대지 않은 건 은서도, 강무진도 마찬가지였다.
은서는 코트 앞섶을 여몄다. 송풍구에서 나오는 바람은 더운데도 발끝은 시렸다.
두 사람의 손은 각자의 무릎 위에 있었다. 집까지는 천백이십 걸음이었지만, 은서는 아직 그 걸음을 시작하지 않았다.

멀리 출구 쪽 정산기의 초록 불이 깜빡였고, 차 안의 시계는 1분씩만 느릿하게 움직였다.
밤 10시, 대시보드 시계의 숫자가 바뀌었다.
강무진은 수첩을 덮었지만 안주머니에 넣지 않고 무릎 위에 두었다. 대시보드 불빛이 수첩 표지에 푸르게 얹혔다.
"차은서 씨."
"네."
강무진이 처음으로 몸을 은서 쪽으로 조금 돌렸다. 형광등이 그어 놓은 흰 줄은 앞 유리에 그대로 남은 채였다.
"이건 바람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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