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3. 공수
입술만 서윤아, 서윤아, 하고 움직이다가 결국 방문을 한 번 더 두드렸다.
똑똑.
세 번째에야 서윤이 문을 열었는데, 부스스한 얼굴로 나를 보더니 인사보다 먼저 내 이마부터 짚었다.
"엄마 뭐야. 왜 이렇게 뜨거워!"
삑.
"38도 구."
서윤이 교복 셔츠 단추를 반만 채운 채로 체온계를 내 코앞에 들이밀었다.
"엄마, 입 벌려 봐. 아, 해 봐."
시키는 대로 아, 하고 입을 벌렸지만 바람만 새어 나왔다.
"목소리가 아예 안 나와? 어제 꿀물 먹었잖아."
고개를 끄덕였다. 먹긴 먹었다, 그것도 두 잔이나.
‘꿀물로 될 일이었으면 3년 전에 나았지.’
서윤은 체온계를 털어서 다시 내 겨드랑이에 꽂더니, 해열제 두 알과 물 한 컵을 가져다 협탁에 내려놓았다.
탁.
"이거 먹고 누워 있어. 병원 갈 거면 나 학교 끝나고 같이 가. 혼자 가다 쓰러지지 말고."
나는 휴대폰 메모장에 글자를 쳐서 내밀었다.
[메모] 괜찮아. 학교 가.
"괜찮긴. 얼굴이 벌건데."
[메모] 지각한다.
"지각하면 엄마 때문이라고 할 거야."
현관에서 운동화를 신다 말고 서윤이 다시 안방 문을 열었다.
"엄마, 오늘 아빠 짐 가지러 온대. 문자 왔어."
문이 닫히고 나서 삼킨 해열제는 목구멍에 한참 걸려 있다가 겨우 내려갔지만, 그 아래 걸린 것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점심때가 되자 휴대폰이 울렸다.
[서윤] 밥 먹었어? [나] 먹었어 [서윤] 뭐 [나] 죽 [서윤] 사진
‘이럴 땐 딸이 엄마보다 엄마 같다.’
먹다 남긴 흰죽에 숟가락을 꽂아 사진을 찍어 보냈더니 엄지 이모티콘이 돌아왔다. 사실 죽은 두 숟가락밖에 못 먹었다. 도무지 넘어가지가 않았다.
박정훈 씨는 오후 두 시에 이삿짐 상자 다섯 개와 청테이프를 들고 나타났다.
"어디 아파?"
걱정하는 말투가 아니라, 확인하는 말투였다. 나는 목을 가리키고 고개를 저었다.
"하, 이젠 말도 안 해? 환자 코스프레 하지 마! 서윤이 없잖아."
그는 안방 옷장부터 열어젖혔다. 셔츠, 양복, 골프 바지까지, 20년 동안 내가 다려 놓은 것들이 상자 속으로 아무렇게나 구겨져 들어갔다.
찌익.
"이 시계 내 거지?"
결혼 10주년에 내가 사 준 시계였다. 물론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상자에 넣어 버렸다.
"전기밥솥은 두고 갈게. 거기 밥 할 일 없으니까."
‘밥 해 줄 사람은 있다는 뜻이고.’
그러고는 냉장고 문을 열어 김치통 하나를 꺼내더니 뚜껑이 잘 닫혔는지부터 확인했다.
"이건 가져간다. 우리 엄마가 담근 거니까."
▣ 김치통 하나 배추: 50포기 절이고 담근 사람: 한미영, 이틀 시어머니가 보낸 것: 소금 그 주말 박정훈 씨: 골프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던 그 주말이, 김치통째로 현관 쪽으로 사라져 갔다.
‘우리 엄마. 그 엄마 칠순이 열흘 뒤다. 이혼하는 며느리는 이미 명단에서 지워졌겠지.’
그가 상자를 들고 거실을 지날 때마다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까만 손이 커져 있었다.
마디가 굵어졌고, 손톱 끝이 양복 솔기를 파고들었다.
▣ 오늘 본 것 누구: 박정훈 무엇: 까만 손 하나. 사흘 전보다 크다 어디: 어깨. 손톱이 솔기를 파고든다 무게: ■□□□□
말하고 싶었다. 당신 어깨에 뭐가 있다고, 그게 누구 손인지 나는 안다고.
하지만 소리가 나지 않았으니 나는 삼키고, 또 삼키는 수밖에 없었다.
이마에서, 목에서, 명치에서 열이 치밀어 올라 해열제가 들을 새도 없었다.
복도 끝 작은방 문 앞에서 박정훈 씨가 잠깐 걸음을 늦췄다. 문고리에 손을 댔다가 떼고는 그냥 지나쳐 갔다.
그 방에는 그가 가져갈 게 없었다.
"서재 책은 나중에 가져갈게. 오피스텔이 좁아서."
‘방이 좁다는 사람이 상자는 다섯 개.’
‘숙려기간 석 달 중에 고작 사흘. 그 사흘 만에 짐을 다 싸네.’
두 번째 상자를 차에 싣고 올라온 박정훈 씨는 식탁에 앉아 물을 마시다가, 휴대폰이 울리자 화면을 보고 웃었다.
신혼 때 나한테 짓던 바로 그 웃음이었다.
깜박.
거실 천장 등이 반의반 초쯤 꺼졌다 켜졌는데도 박정훈 씨는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거실이 서늘해지면서, 이마는 뜨거운데 등줄기만 차가워졌다.
【말해라.】
소파 등받이 뒤였다. 귀에 입술을 댄 것처럼 가까웠다.
【한마디면 된다.】
‘목소리가 안 나오는데 무슨 수로 말을 해요.’
【삼켜서 막힌 것이다. 뱉으면 뚫린다.】
‘……누구세요. 어제도 물었잖아요.’
【그걸 지금 묻느냐. 한심하구나.】
내 집 소파 뒤에서 모르는 목소리한테 한심하다는 소리까지 듣다니, 살다 보면 별일을 다 겪는 법이다. 어이가 없어서 나는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 올렸다.
【네 입을 막은 건 네가 삼킨 것들이다. 나는 아무것도 막지 않았다.】
깜박.
이번에는 박정훈 씨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뭐야, 형광등 나갔나. 이런 것 좀 미리 갈아 놓지."
그가 투덜거리며 세 번째 상자를 드는데, 어깨의 손가락 하나가 또 굽었다. 나를 향해.
해가 질 무렵 돌아온 서윤은 신발도 벗기 전에 나부터 찾았다.
"엄마 아직 목소리 안 나와?"
고개를 끄덕이자 서윤은 거실에 쌓인 상자를 둘러보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마지막 상자를 들고 나온 박정훈 씨가 서윤을 보더니 금세 얼굴을 풀었는데, 딸 앞에서만 꺼내 쓰는 얼굴이었다.
"서윤아, 아빠 주말에 맛있는 거 사 줄게. 아빠 집에도 네 방 만들어 놨어."
"……응."
"네 엄마는 지금 좀 아프니까, 아빠랑 얘기하자. 응?"
서윤은 대답 대신 이어폰을 꺼내 들고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박정훈 씨는 현관에서 구두를 신었다. 상자를 한쪽 팔에 끼고, 다른 손으로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면서.
‘김 과장님이겠지.’
그 등을 보는데 열이 확 올랐다. 모래가, 생선 가시가, 까끌한 것들이 한꺼번에 들끓어서, 이대로 삼켰다가는 뭔가 터질 것만 같았다. 목이 아니라 더 깊은 데가.
【말해라.】
나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무릎이 휘청했지만 현관까지는 고작 다섯 걸음이었고, 나는 벽을 짚어 가며 걸었다.
박정훈 씨가 문고리를 잡은 채 고개를 돌렸다.
"왜. 뭐."
입을 열었다. 바람이 새는 소리, 그다음에 갈라진 소리.
"그 여자."
박정훈 씨의 눈썹이 올라갔다.
"……1년 됐지?"
소리가 나왔다. 쉬고 갈라지고 형편없었지만, 분명히 내 목소리였다.
▣ 1년 작년 이맘때: 서윤이 학원 설명회 날 그날 밤: 박정훈 씨가 늦게 들어옴 식탁에 엎어 둔 휴대폰: 김 과장님 오늘까지: 딱 1년
박정훈 씨가 굳었다.
문고리를 쥔 손이 그대로 굳고, 입이 반쯤 열렸다가 닫혔다. 어깨의 까만 손은 움찔하더니 양복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그 반응이 곧 대답이었던 셈이다.

‘3년 동안 삼키기만 하던 입이, 첫마디로 1년을 맞혔다.’
그리고 목이 뚫렸다.
막혀 있던 하수구가 한꺼번에 쑥 내려가듯 목구멍이 시원해지더니, 3년 동안 한 번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던 숨이 한 번에 끝까지 들어갔다.
"……무슨 헛소리야. 누가 그래? 서윤이가 그래?"
"아무도."
"그럼 뭐, 점쟁이한테 물어봤어?"
"그냥 알아. 작년 가을부터."
박정훈 씨의 목울대가 꿀꺽 움직였다. 나는 벽에서 손을 뗐다. 다행히 다리가 떨리지 않았다.
"헛소리면 다행이고."
그는 끝내 대꾸하지 못하고 상자를 고쳐 안은 채 나가 버렸다.
쾅.
평소보다 세게 닫힌 현관문 소리에 서윤의 방문이 빼꼼 열렸다.
"뭐야. 무슨 일이야?"
"아빠 짐 다 가져갔어."
"엄마 목소리 나오네?"
"그러게. 나오네."
서윤은 현관문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는데, 눈이 동그래져 있었다.
"아빠 문 왜 저렇게 닫아? 엄마 무슨 말 했길래!"
"별말 안 했어. 한마디."
"……꿀물 효과 늦게 오네."
‘그래. 꿀물 덕이라고 해 두자.’
서윤의 방문이 다시 닫히자 나는 점심에 남긴 흰죽을 데워 간장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이번엔 한 그릇을 싹 비웠다. 3년 만에 처음으로 밥이 달았던 거다.
베란다 창을 열자 11월 저녁 바람이 차게 밀려들었다. 열은 조금씩 내려가고 있었다.
"엄마."
준우가 패딩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은 채 창가에 기대 있었다. 언제 들어왔는지 몰랐다. 하긴 이 애는 늘 그랬으니 말이다.
"방금 좀 멋있었어."
"뭐가 멋있어. 목소리가 다 갈라졌는데."
"그래도. 엄마가 아빠한테 그렇게 말하는 거 처음 봤어."
나는 웃었다. 소리 내서 웃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났고, 웃음소리마저 쉬어 있었다.

"엄마, 우리 이사 가?"
"몰라. 아직."
"나는 엄마 가는 데 갈래."
"다 큰 게. 너는 학교 근처에 방 얻어야지."
"싫어. 엄마 따라갈 거야."
어릴 때도 그랬다. 마트에서도, 놀이터에서도, 그 애는 내 치맛자락 끝이 보이는 데까지만 갔다가 돌아오곤 했다.
그 애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엄마. 누가 엄마를 불러?"
웃음이 뚝 끊겼다.
"……뭐?"
"아까 소파에 누워 있을 때. 엄마가 누구한테 대답하는 것처럼 고개 저었잖아."
준우는 더 캐묻지 않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단지 놀이터 쪽만 내려다보았다. 놀이터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네 하나만 바람에 혼자 흔들렸다.
나는 그 애 옆에 서서 한참을 같이 내려다보았다.
징-.
밤 열한 시였다.
[박정훈] 변호사 선임했음 [박정훈] 서윤이는 내가 키운다 [박정훈] 정신과 다니는 사람한테 애 못 맡겨. 법원도 그렇게 볼 거야
검색창에 이혼, 양육권, 정신과 진료를 차례로 쳐 넣자 변호사 광고와 맘카페 글과 누군가의 후기가 끝도 없이 쏟아졌다. 읽으면 읽을수록 숨이 짧아졌다.
그러다 한 줄에서 손가락이 멎었다.
「법률 무료 상담 · 내일 오전 예약 가능」
어차피 잃을 것도 없으니, 나는 예약 버튼을 눌렀다.
서윤의 방문 틈으로 불빛이 가는 선 하나로 새어 나왔다.
목이 다시 간질거렸다.
그 선 너머의 아이를, 그 사람이 데려가겠다고 했다.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어요. 첫 감상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