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1. 일흔네 번째
거울 속에서 두 손이 넥타이를 맸다. 남색 바탕에 흰 점이 박힌 넥타이였다. 셔츠 단추는 목 끝까지 잠겨 있었다.
매듭이 올라가자 거울 위쪽으로 얼굴이 들어왔다. 옆을 친 짧은 머리, 매끈한 턱, 남색 정장.
누가 봐도 젊은 남자였다.
나는 오늘부터 남자다.
박재경은 매듭을 조였다.
……라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일주일 전.
2월 말, 대학 중앙도서관 열람실. 노트북 화면에 메일 한 통이 떠 있었다.
「[채용결과 안내] 박재경 님, 귀하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재경은 이마를 책상에 댔다.
일흔세 번째.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이쯤 되면 안다. 그거 거짓말인 거.
주변 자리는 새 학기를 앞둔 신입생들로 차 있었다. 그중 제일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이 회색 후드티에 머리를 대충 묶은 재경이었다.
박재경. 스물여덟. 경영학과. 졸업을 미루고 미루다 이번 2월, 결국 졸업을 당했다.
고개를 들자 옆자리 신입생이 흘끗 보고 눈을 돌렸다. 이마에 키보드 자국이 찍혀 있을 테니까.
지난 2년 7개월의 면접장은 다 비슷했다. 재경은 늘 치마 정장에 무릎 위로 손을 모았고, 질문도 늘 비슷했다.
"여자분이시네요. 야근 괜찮으세요?"
"남자친구 있어요? 결혼 계획은요?"
"우리 부서가 좀 거칠어서. 여자분이 버티실 수 있을까 싶어서요."
옆자리 남자 지원자에게는 다른 질문이 갔다.
"주량이 어떻게 돼요? 하하, 좋네."
"5년 뒤 본인 모습을 말해 보세요."
그때마다 무릎 위의 손이 치마를 꽉 쥐었다. 입꼬리만 올라가고 눈은 그대로인 얼굴로.
채용공고엔 늘 「성별 무관」이라고 쓰여 있었다.
무관하지 않았다.
재경은 휴대폰을 들었다. 갤러리 맨 위에 「7년」이라는 앨범. 내리고 내려도 같은 남자다. 입대 날, 면회 날, 전역 날.
군대도 기다려 줬는데. 취업이 늦어지자 그는 한 마디만 남기고 갔다. 너 요즘 너무 예민해.
「앨범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사진 1,284장」
"나쁜 놈."
작게 말하고 삭제를 눌렀다. 앨범이 사라지자 그 아래 오래된 폴더 하나가 올라왔다. 「고3」.
엄지가 멈췄다. 체육복 차림에 스포츠머리처럼 짧게 자른 고등학생이 웃는 사진이었다. 사진 밑에 친구 댓글이 달려 있었다.
「ㅋㅋㅋㅋ 이거 누가 봐도 남자임」
재경은 사진을 한참 봤다. 그리고 노트북으로 눈을 옮겼다. 닫으려던 채용 공고가 아직 열려 있었다.
「(주)원스텝애드 — 경영지원팀 신입 채용 / 회계·총무·인사 / 성별 무관 · 학력 무관」
「※ 급여 및 4대보험 업무 포함」
창을 닫으려던 손이 마지막 줄에서 멈췄다.
……남자로 지원하면?
노트북을 덮었다. 셋을 셌다. 다시 열었다.
학생증 뒷면을 잡은 엄지 옆으로 주민등록번호가 보였다. 가려진 숫자들 사이로 뒷자리 첫 숫자 하나.
「●●●●●●-2●●●●●●」
입사하면 이게 다 나온다. 인사기록, 급여, 4대보험. 재경의 눈이 공고의 그 줄로 돌아갔다.
……그걸 내가 하면?
이력서 파일을 열었다. 성별 칸이 없었다. 사진 칸도 없었다. 블라인드 양식이었다.
거짓말 하나 안 해도 되네. 정장 입고 가기만 하면.
딸깍.
「지원하기」. ……안 되면 말고!
"너 지금 뭐라고 했어?"
해 질 녘, 도서관 로비. 휴대폰 너머로 하나가 되물었다.
"남자로 지원했다고."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사물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윤하나는 나이트 근무 들어가기 직전이라고 했다.
"……너 요즘 몇 시간 자?"
"진지해."
"그게 더 무서워."
재경은 로비 기둥에 등을 붙였다.
"요즘 이력서엔 성별 칸 없어. 사진도 안 붙여. 나 거짓말 하나도 안 해. 그냥 정장 입고 가는 거야."
"그게 거짓말이야, 박재경."
"아니지. 사람들이 알아서 생각하는 거지."
하나가 잠깐 말이 없었다. 사물함 문이 닫혔다.
"……가슴은."
재경은 자기 가슴을 내려다봤다.
"그건 원래 문제가 아니었어."
수화기 너머에서 웃음이 터졌다.
"아 미안. 미안미안. 아 진짜 미안."
"웃어. 웃어라."
"떨어지면?"
"일흔네 번째 떨어지는 거지. 하나 더 는다고 달라져?"
로비 유리문에 대충 묶은 머리와 후드티가 비쳤다.
"떨어지면 청주 내려갈 거야. 엄마한테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라고 했어."
"……그럼 머리부터 잘라. 어중간하게 가면 그게 더 이상해."
"……응."
다음 날 미용실. 가위가 목덜미 근처에서 멈췄다.
"진짜 이렇게요? 투블럭?"
"네. 남자 투블럭이요."
"아깝다. 머릿결 좋은데."
"잘라 주세요."
사각. 사각. 묶었던 머리끈이 바닥의 머리카락 위로 떨어졌다.
같은 날 남성 정장 매장. 직원이 줄자를 들었다.
"본인 거세요? 선물이세요?"
"……본인 거요."
"어깨가 좋으시네요. 키 171? 기성복 딱 맞겠어요."
어깨가 넓다는 말을 스물여덟 해 만에 처음으로 칭찬으로 들었다.
"넥타이도 하나 볼게요."
재경이 고른 것은 남색 바탕에 흰 도트였다. 그날 밤 쇼핑 앱 장바구니에 하나가 더 담겼다.
「남성용 압박 이너 (가슴 보정) · 무봉제 · 통기성」
……이런 게 있네. 세상엔 나 말고도 사정 있는 사람이 많구나.
면접 전날 밤, 자취방.
바닥에 뜯긴 택배 상자가 있었다. 벽에 붙은 전신거울 앞에 누군가 섰다. 짧은 흑발, 목 끝까지 잠근 흰 셔츠, 남색 정장. 넥타이 매듭이 한쪽으로 삐뚤었다.
재경은 거울 속 사람을 오래 봤다. 몸을 옆으로 돌렸다. 다시 정면. ……어?
매듭을 바로잡았다. 턱을 한 치 들었다.
여자일 땐 예쁘지도 않고 못생기지도 않은 흔녀였는데. 남자니까…… 훈남이네?
어깨가 풀려 툭 떨어졌다. 눈이 휘었다. 웃음이 먼저 샜고, 손은 한참 늦게 입으로 갔다.
"하. 하하. 하하하하."
책상 위 휴대폰에는 영상 하나가 멈춰 있었다. 「넥타이 매는 법 — 초보도 30초 완성」.
재경은 목을 가다듬고 목소리를 낮췄다.
"안녕하십니까. 박재경입니다."
한 번 더 낮췄다.
"안녕하십니까. 박재—"
콜록콜록.
허리를 굽히고 기침을 했다. 거울 속의 훈남도 같이 기침을 했다.
너무 낮췄다. 원래 목소리 낮은 편이잖아. 조금만. 조금만 낮추자.

손잡이를 쥔 손바닥이 축축했다. 면접 날 아침, 출근길 지하철.
재경은 눈동자만 좌우로 굴렸다. 다 쳐다보는 것 같았다. 누가 저 사람 여자다, 하면 어떡하지.
칸 안의 사람들은 전부 휴대폰만 봤다. 재경 쪽으로 고개를 드는 사람은, 한 명도.
손잡이를 조금 느슨하게 쥐었다. 등 뒤에 선 남자가 바짝 붙었다. 재경은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볼 이유가 없다는 걸, 한 박자 늦게 알았다.
이게 남자구나. 아무도 안 쳐다보는 거.
(주)원스텝애드는 작은 사무실 한 층이었다. 유리문에 로고 스티커, 입구 옆에 대기 의자 두 개. 옆 의자의 남자 지원자가 다리를 떨었다.
재경은 무릎 위에 손을 모으려다 멈췄다. 곁눈으로 옆을 보고, 두 손을 허벅지 위에 벌려 얹었다.
회의실 문이 열렸다. 턱선 단발에 가는 금테 안경, 한 팔에 서류철을 낀 여자였다.
"박재경 씨?"
"네."
낮게 대답하며 일어섰다. 여자가 재경을 위아래로 한 번 봤다.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들어오세요. 경영지원팀 한지원입니다."
긴 테이블 창가 쪽에 골프 셔츠를 입은 50대 남자가 등을 기대앉아 있었다.
"앉아요, 앉아. 편하게."
남자가 박수를 한 번 쳤다.
"감사합니다."
재경은 앉으며 다리를 모으려다, 어깨너비로 벌렸다.
한지원이 서류를 넘기고 가운뎃손가락으로 금테를 밀어 올렸다.
"경영학과. 졸업이 이번 2월이고. 공백이 길어요."
"네. 2년 7개월 동안 취업 준비를 했습니다."
"몇 군데 떨어졌어요?"
한 박자.
"일흔세 군데입니다."
"솔직하네! 그런 거 보통 줄여서 말하는데."
대표가 크게 웃었다. 지원은 웃지 않았다.
"왜 떨어졌다고 생각해요?"
재경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여자라서요, 라고 하면 여기서 끝이다. 그렇다고 거짓말은 안 한다. 한 마디도.
"제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받은 적이 별로 없어서요."
지원의 펜이 멈췄다. 그녀가 서류에서 눈을 들었다. 면접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재경을 똑바로 봤다.
"월 마감 해 봤어요?"
"실무는 없습니다. 하지만 전표 마감, 채권채무 대사, 결산 순으로 하겠습니다. 급여는 매달 10일까지 확정하고, 4대보험은 취득·상실 신고를 기한 안에 처리하겠습니다."
"광고회사 정산은 매체사 리포트랑 광고주 청구가 안 맞을 때가 많아요. 그럼 뭐부터 봐요?"
"원천 데이터부터 봅니다."
재경은 숨을 한 번 골랐다.
"요약표는 누가 한 번 손을 댄 거니까요."
지원이 서류철을 들어 입가를 가렸다. 아주 잠깐이었다.
웃었나?
웃었다.
"좋네, 좋아. 한 팀장, 괜찮지? 아, 그리고 박재경 씨. 군대는—"
"대표님. 그건 요즘 안 물어요."
"아, 그래? 요즘 참 어렵다. 알았어, 알았어."
무릎 위에서 주먹이 천천히 풀렸다. 살았다. 나를 떨어뜨리던 규칙이, 오늘은 나를 살렸다.

"마지막으로 하나. 우리 회사 작아요. 경영지원이 셋이야. 회계, 총무, 인사 다 해야 돼. 괜찮아요?"
"네. 전부 하겠습니다."
전부. 특히 인사. 특히 급여.
대표가 일어나며 손을 내밀었다. 재경은 그 손을 잡았다. 조금 세게.
"악력 좋네! 좋아."
회의실을 나서다 문 앞에서 발이 멈췄다. 아무도 결혼 계획을 묻지 않았다. 버틸 수 있겠냐고도.
처음으로,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만 받았다.
문이 닫혔다. 복도에 선 채 넥타이를 한 번 만졌다. 손이 떨렸다.
걸음이 빨라졌다. 긴장이 풀리니까, 급하다. 복도 끝에 표지판이 두 개. 남, 여.
재경은 습관대로 「여」 쪽으로 몸을 틀었다. 마침 문이 열리고 여자 하나가 나왔다. 눈이 마주쳤다. 여자가 멈칫했다.
재경은 굳었다. 눈만 커진 채로, 그대로 180도.
여자는 고개를 갸웃하고 지나갔다.
아. 이건 생각 못 했다.
「남」 문을 밀었다. 소변기 앞에 남자 하나가 등을 보이고 서서 흥얼거렸다. 재경은 벽에 몸을 붙이고 게걸음으로 칸까지 가서 문을 잠갔다.
철컥.
변기 뚜껑 위에 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흥얼거림이 계속됐다. 길다. 아주 길다.
칸만 쓴다.
앞으로 평생 칸만 쓴다.
손 씻는 소리, 문 닫히는 소리가 나고 조용해졌다. ……아니 근데 나 지금 합격도 안 했는데.
해 질 녘 버스 정류장. 재경은 벤치에 앉아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짧은 머리가 바람에 어색하게 섰다.
[하나] 어땠어
[나] 화장실이 제일 어려웠어
[하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나] 면접은
[나] 몰라. 기대 안 해
버스가 왔다. 재경은 타지 않고 한 대를 그냥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자취방.
징— 징—
이불 밖으로 손이 나와 휴대폰을 더듬었다.
「[원스텝애드] 박재경 님, 최종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3월 3일 오전 9시까지 출근 바랍니다. — 경영지원팀 한지원」
이불이 천천히 내려갔다. 눈만 나왔다. 한 번 더. 또 한 번.
……붙었다.
행거에 남색 정장이 걸려 있었다. 넥타이가 옷걸이 목에 감겨 있었다.
남자로.
문자를 아래로 내렸다. 한 줄이 더 있었다.
「※ 첫 출근 시 제출 서류: 주민등록등본 1부, 통장 사본 1부」
엄지가 「주민등록등본」 위에서 멈췄다.
……등본.
그거, 누가 받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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