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1. 메모지
07:30.
"상주님, 향 올리시지요."
장례지도사가 건넨 향 한 대에 불을 붙이고, 손바람으로 불꽃을 끈 다음 향로에 꽂았다.
영정 속 남편은 웃고 있지 않았다. 검찰청 신분증에 붙어 있던 증명사진이었고, 그 사진을 고른 사람은 나였다.
부고 문자를 돌리는 틈틈이 사진첩을 넘기다 그 사진에서 손가락이 멎었다. 웃는 사진을 찾을 시간까지는 없었다.
향 한 대가 다 타는 데 40분이 걸린다는 건 어제 세 번째 향을 꽂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상식 올리겠습니다. 두 번 절하시면 됩니다."
지도사가 밥 한 공기와 국 한 그릇을 제단에 올리고 숟가락을 밥에 꽂자, 나는 두 번 절하고 무릎을 꿇은 채 앉았다.
"상주님, 무릎 편히 하세요. 오늘 하루가 깁니다."
흰 장갑을 고쳐 끼면서 하는 말이었다. 명찰에는 고순덕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지만, 나는 무릎을 풀지 않았다.
빈소에는 국화 냄새가 고여 있었고, 벽에 기대 눈을 감은 시어머니는 잠든 게 아니었다.
"언니, 뭐 좀 먹고 와요. 여기는 내가 볼게요."
입구에서 조문객 신발을 가지런히 놓던 시누이 현주가 말했다.
"됐어요, 아가씨."
현주는 더 권하는 대신 방명록 받침대 쪽으로 가서 펜을 바로 놓았다.
방명록 펜은 검은 수성펜이었는데 받침대 다리에 줄로 묶여 있었다. 누가 무심코 들고 가지 않게 해 둔 것이다.
영정 아래 향로에서는 연기가 한 가닥으로 곧게 올라가고 있었다.
8시 40분, 배병조 차장이 왔다.
남편의 사법연수원 시절 교수였고 지금은 한강지검 차장검사다. 어제도 장례 절차는 거의 그가 챙겼다.
영정 앞에 향을 올리고 두 번 절한 배병조는 시어머니에게 먼저 가서 허리를 굽혔다.
"어머님, 잠깐이라도 누우셔야 합니다. 제가 여기 있겠습니다."
"아이고, 차장님이 고생이 많으시네."
그러고 나서야 배병조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제수씨, 물이라도 좀 드세요."
그가 내민 종이컵을 받아 들기는 했지만 입에 대지는 않았다.
"아침은 드셨습니까."
"생각 없습니다."
"그래도 식사는 하셔야죠. 이따 제가 챙기겠습니다. 입관은 열한 시입니다."
말을 마친 그의 눈길이 잠깐 영정 쪽으로 건너갔다.
"현우가 요즘 일이 많았습니다. 제가 좀 덜 맡겼어야 했는데요."
"남편이 맡겠다고 했을 겁니다."
"그랬죠. 늘 그랬습니다."
그는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더니 뒤집혀 있던 화환 리본 하나를 손수 바로잡았다.
식당 직원에게 상 개수를 일러 주고 새로 들어온 화환의 자리를 정한 것도 그였다. 하긴 이 빈소에서 이런 일을 그보다 매끄럽게 해낼 사람은 없었다. 나는 종이컵을 무릎 옆에 내려놓았다.
9시 40분부터 지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자, 입구에서 복도 끝까지 검은 양복이 길게 줄을 이었다.
배병조는 입구에 서서 한 사람씩 맞으며 이름과 부서를 하나도 틀리지 않고 불러 주었다.
"김 계장, 멀리서 왔네. 사모님께 인사드려."
"사모님, 힘내십시오."
"도 검사님 같은 분이 어쩌다가……."
같은 말이 되풀이될 때마다 나는 같은 각도로 허리를 숙였는데, 서른두 번까지 세다가 그만두었다.
남편의 대학 동기 하나가 방명록에 이름을 쓰고 내 앞에 와 앉았다. 결혼식 때 사회를 봐 준 사람이었다.
"제수씨. 현우 그놈, 지난달에도 밥 한번 먹자고 전화하더니."
그가 말끝을 흐렸지만 나는 이을 말을 찾지 못했고, 자리에서 일어서던 그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강한 분이시네."
신발을 신던 누군가가 작게 한 말이었는데 내 귀에는 다 들렸다. 어차피 울지 않는 상주는 어디서든 눈에 띄는 법이다.
물론 울지 않기로 마음먹은 적은 없었다. 그냥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11:00. 입관실.
입관실은 빈소보다 서늘했고, 스테인리스 받침대 위에는 삼베 수의를 입은 남편이 눕혀져 있었다.
시어머니가 내 팔을 붙잡았는데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맞은편에 선 현주는 팔짱을 낀 채였다.
"마지막으로 보시지요. 고인 손 여미겠습니다."
시어머니가 내 팔을 놓더니 아들의 왼손을 쓸어내렸다.
"우리 현우 손이 왜 이렇게 차."
수의 소매를 끌어 내리던 지도사의 손이 남편의 오른손 위에서 잠깐, 반 박자쯤 머뭇거렸다.
남편의 오른손등에는 긁힌 자국이 있었는데, 붉은 줄 두 개가 나란히 나 있었다.
교통사고 기록 사진이라면 질리도록 들여다봤지만, 유리에 베인 상처가 저렇게 가지런하게 남는 경우는 없었다.

"빗길 사고라면서요."
내가 말했지만 지도사는 대꾸 없이 소매 끝을 다시 여몄고, 자국은 그대로 삼베 아래로 들어가 버렸다.
"현우야. 우리 현우야."
시어머니가 관 모서리를 잡고 아들을 부르자 현주가 어머니의 어깨를 감쌌다.
"엄마, 손 놔. 다쳐."
어머니를 끌어안은 채로도 현주는 남편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삼베가 덮인 뒤에도 눈을 떼지 못했다.
곱게 화장한 얼굴은 서재 소파에서 기록을 덮고 잠들던 그 얼굴이었다. 입을 조금 벌리고 자는 버릇만 감쪽같이 지워져 있었다.
"상주님, 고인께 하실 말씀 있으시면 지금 하시지요."
할 말을 고르다가 입을 열었고, 도로 닫았다. 사실 법정에서는 말이 막혀 본 적이 없었다.
"……됐습니다."
지도사가 고개를 숙이고 관 뚜껑이 닫히는 동안, 나는 못 박는 소리를 셌다. 여섯 번이었다.
입관실을 나오는 길에 시어머니가 연거푸 휘청였다. 현주가 한쪽 팔을 잡았고, 나는 다른 쪽 팔을 붙들었다.
열두 시 반, 접객실 구석에 앉아 있는데 배병조가 육개장 한 그릇을 들고 왔다.
"한 숟가락이라도 드십시오. 오후에 경찰에서 유품을 가져옵니다."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두어 술 떠먹고는 그대로 내려놓았다.
"제가 옆에 있겠습니다. 경찰 쪽 설명은 들으셔도 되고, 안 들으셔도 됩니다."
"듣겠습니다."
그는 알겠다는 뜻으로 짧게 고개를 숙였다.
13:00. 접객실.
교통조사계 강성철 경위가 서류철과 비닐봉투를 들고 들어오자 배병조가 내 옆자리에 와 앉았다.
"유품 인계해 드리겠습니다. 휴대폰 한 대, 지갑, 차 키입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봉투 안에는 액정 모서리에 금이 간 남편의 휴대폰과, 가죽이 닳아 하얗게 일어난 지갑이 들어 있었다.
"사고는 9월 22일 23시 40분에 신고 접수된 것으로 확인됩니다. 은곡 나들목 커브길 가드레일 충돌입니다."
"블랙박스는요?"
"본체는 있었습니다. 메모리는 없었습니다."
"없었다는 건, 빠져 있었다는 겁니까?"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강 경위가 다음 장을 넘겼는데, 서류를 읽는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혈중알코올농도 0.13퍼센트로 확인됩니다."
남편은 3년 전 3월부터 술을 입에 대지 않았고, 이 빈소에서 그 사실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나와 시누이 둘뿐이었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약 때문에 잠시 술을 쉬는 줄로만 안다.
회식 자리에서도 남편은 사이다를 시켰다. 사람들은 운전 때문인 줄 알았고, 남편은 굳이 그걸 바로잡지 않았다.
"부검은 했습니까."
"검안으로 마쳤습니다. 사인이 명확해서 검사 지휘로 종결됐습니다."
"언제요?"
"사고 이튿날입니다."
변사 사건에서 부검을 할지는 검사가 정하고, 유족이 반대하지 않으면 검안으로 끝나는 일이 많다. 나는 반대할 기회가 있었는지 되짚어 보았지만, 그런 기회는 어디에도 없었다.
배병조가 내 쪽으로 몸을 조금 기울였다.
"제수씨 힘드실 것 같아서 절차는 제가 챙겼습니다. 화장은 일요일 아침 아홉 시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감사합니다, 차장님."
인수증에 문서진이라고 이름을 적는데 펜 끝이 종이를 긁으며 지나갔다.
"유품은 제가 차에 실어 둘까요? 들고 계시기 번거로우실 텐데."
"제가 갖고 있겠습니다."
"그러시죠.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대기실에서 좀 쉬십시오. 두 시부터는 조문객이 많아집니다."
그가 먼저 일어나 강 경위를 배웅했고, 복도 끝에서 두 사람이 짧게 목례를 주고받았다.
사고 이튿날 검안, 부검 없음, 화장 예약은 일요일 오전 아홉 시.
누군가 서둘렀다.
13:40. 유족 대기실.
유품 봉투를 들고 대기실 문을 열었는데, 아무도 없는 방바닥에 내 핸드백이 엎어져 있었다.
소지품이 장판 위에 흩어져 있었다. 립밤 하나는 문 앞까지 굴러갔고 공판 기록 사본은 반쯤 접힌 채였다.
지퍼가 끝까지 열려 있는 걸 보니 아마 아침에 내가 덜 잠갔을 것이다. 소파 팔걸이에 걸어 두었으니 떨어질 만도 했다.
무릎을 꿇고 앉아 명함 지갑과 차 키와 볼펜을 차례로 주워 담았다.
혹시나 싶어 지갑을 열어 보았다. 다행히 현금도 카드도 그대로였으니, 정말로 떨어진 것뿐이었다.
그런데 안주머니를 정리하던 손끝에 종이 한 장이 걸렸다.
포스트잇보다 조금 큰 흰 메모지가 두 번 접혀 있었다.
펼쳐 보니 획이 오른쪽으로 눕는 글씨였고, 그건 남편의 글씨였다.
「출장 가. 혹시 연락 안 되면 여기로 전화해. 010-7412-0309 현우」
남편의 번호도 아니었고, 내가 아는 번호도 아니었다.
메모를 다시 읽었다. 출장 간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메모지만큼은 처음 보는 종이였다.
뒤집어 보니 뒷면은 비었고 날짜도 적혀 있지 않았는데, 접힌 자국만 두 줄, 가로로 유난히 선명했다.
9월 19일 월요일 밤 열한 시, 나는 서재에서 공판 기록을 넘기고 있었다.
"가방에 메모 넣어 뒀어."
"응."
나는 고개도 들지 않았고, 남편은 문간에서 잠깐 머뭇거리다가 스탠드를 켜 주고 나갔다.
그 메모를 일주일이나 들고 다녔으면서, 나는 그걸 펼쳐 본 적이 없었다.

메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바람에 종이 모서리가 구겨졌다. 손을 펴고 엄지로 구김을 눌렀다. 한 번, 두 번.
문밖에서 조문객을 맞는 현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오늘 들은 말 가운데 가장 평범한 말이었다.
13:52.
유품 봉투를 내려놓고 소파에 앉아 내 휴대폰을 꺼냈다.
모르는 번호에 전화를 거는 일이라면 익숙했다. 증인도 피해자도 처음에는 모두 모르는 번호인 법이다.
메모를 무릎 위에 올려 두고 번호를 한 자리씩 누른 다음, 화면에 뜬 숫자를 메모와 맞춰 보았다.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에는 대기실 문 쪽으로 눈길이 갔지만, 문은 꼭 닫혀 있었다.
받는 사람이 남편의 동료일 수도, 전혀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무슨 말을 할지는 정해 두지 않았다.
신호가 가기 시작했고, 한 번 울릴 때마다 나는 메모의 숫자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 내려갔다. 두 번, 세 번.
네 번째 신호가 울리던 도중에 짧은 기계음이 끼어들며 연결이 끊겼다.
그리고 목소리가 나왔다.
"서진아, 나야."
메모 위에 손을 포개자 종이가 손바닥 밑에서 조금 움직였다.
"이 번호로 걸었으면 내가 연락이 안 되는 거겠지. 놀라지 말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우리 청 사람한테는 특히."
"네가 들어야 할 얘기는 여기 두고 갈게."
"문은 네가 나한테 처음으로 이긴 날이야."
열여덟 번째 장례식 방명록 — 나는 그 메모를 펼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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