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6. 조건
01:00.
향 한 대가 다 타 들어가면서 향로 위에서 가늘게 이어지던 연기가 끊겼다.
장례지도사가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새 향을 꺼내 불을 붙이고 손바람으로 불꽃을 껐는데, 그걸 향로에 꽂는 손이 유난히 느렸다. 연기는 그제야 다시 올라갔다.
"향은 꺼지면 다시 피우는 겁니다. 몇 번이고요."
지도사는 나를 보지 않은 채 그렇게 말하고, 향로 가장자리에 떨어진 재를 장갑 끝으로 쓸어 담았다.

"지도사님은 이 일을 몇 년 하셨습니까."
"40년입니다."
대답이 빨랐다. 물어 오기 전부터 세어 둔 숫자일 것이다.
"40년 동안 향이 몇 대나 꺼졌을까요."
"세어 본 적은 없습니다. 꺼지면 피웠습니다."
지도사의 눈이 향의 길이를 훑고 지나가다 반 박자쯤 거기 머물렀다.
"상주님, 향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눈 좀 붙이시지요."
"여기 있겠습니다."
"방명록은 덮어 둘까요."
"펼쳐 두세요."
지도사는 더 권하지 않고 제단 옆 의자로 돌아가 앉았다.
빈소에 남은 사람은 나와 지도사뿐이었다. 배병조 차장은 자정 무렵 접객실로 나갔고, 현주는 대기실에 들어간 뒤로 나오지 않았다.
복도 끝 유리문 너머로 주차장이 내다보였는데, 흡연 구역에 담뱃불이 하나 켜져 있을 뿐 누가 피우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저기까지가 안이다. 그 너머는 5분.
담뱃불이 잠깐 밝아졌다가 꺼지자, 불을 들고 있던 사람은 경계 안쪽에서 그대로 돌아섰다.
수첩을 펴 보니 오늘 밤 적어 둔 마지막 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무엇이 하루를 남기나.
02:00.
향 타는 소리가 들릴 만큼 빈소는 조용했고, 나는 처음부터 다시 세어 나갔다.
1쪽부터 17쪽까지 내 점은 없다. 나는 그 열일곱 번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열일곱 번에도 아마 이 방석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배병조는 내가 매번 울지 않았고, 매번 종이컵을 받기만 하고 마시지 않았다고 했다.
매번이라면 열일곱 번이다. 나는 열일곱 번 종이컵을 받았고, 열일곱 번 입관을 지켜봤고, 열일곱 번 운구차 뒷문 앞에 섰다.
그리고 열일곱 번, 그 메모를 펼치지 않았다. 메모는 매번 두 번 접힌 채로 가방 안주머니에 들어 있었을 텐데도.
무릎 위에 손을 포갰는데 손이 차가워서, 오른손을 왼손 위로 올렸다가 다시 왼손을 오른손 위로 옮겼다.
열여덟 번째에 나는 메모를 펼쳐 번호를 눌렀고 남편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날은 기억한다.
열아홉 번째에는 사서함을 알게 됐다. 남편이 거기에 무언가를 두고 갔다는 것과 그 문이 잠겨 있다는 것까지, 그날도 기억한다.
현주는 열아홉 번째를 잃었다. 그날 현주는 가방을 열려다 손목을 잡혔고 오후에는 귤을 깠을 뿐, 남편의 일로 새로 안 것이 없었다. 적어도 내가 본 것으로는 그랬다.
한유경은 네 번째와 열두 번째를 기억한다. 그날 그 사람이 무엇을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사람이 조문을 온 이유가 남편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방명록의 쪽마다 같은 자리에 이름이 있었으니 그 사람은 매일 왔을 것이다. 그런데도 기억하는 날은 둘뿐이다.
남편에 대해 이미 많이 아는 사람이라면 새로 알게 되는 날도 드물었을 테고, 그 사람이 무엇을 아는지는 아직 내가 모른다.
현주는 여섯 번째와 그 뒤 몇 날을 기억한다. 그날들에 현주가 오빠에 대해 무언가를 알았다는 뜻이고, 현주가 나중에, 라고 미뤄 둔 것들이 거기 들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걸러 내고 나면 남는 것은 하나, 남편에 대해 새로 안 날이다.
다시 맞춰 보았다. 열여덟 번째는 목소리, 열아홉 번째는 사서함, 현주의 그날은 없음, 첫 번째부터 열일곱 번째까지의 나도 없음.
틀린 데가 없다.
고인에 대해 새로운 것을 하나라도 안 사람만 그 하루를 가지고, 모르고 지나간 사람은 그 하루를 잃는다.
수첩에 적어 놓고 두 번 읽었다. 판결문의 주문처럼 짧은 문장이었다.
그렇다면 오늘의 현주는 어떤가. 열 시에 접객실에서 나는 현주에게 남편이 내게 남긴 것이 있다고 말했고, 현주는 처음 듣는 얼굴이었다.
오빠에 대해 새로 안 것이니, 적어 둔 문장이 맞다면 현주는 오늘을 가진다.
현주에게는 이 규칙을 말해야 한다. 현주는 어느 날이든 하루를 잃을 수 있고, 오늘 아침처럼 모르는 얼굴로 나를 볼 수도 있다. 그러니 내일 아침 현주가 나를 알아보면 그때 말할 생각이다.
어제 수첩에 적어 둔 점의 개수는 오늘 아침 수첩에서 사라져 있었다. 수첩은 방명록이 아닌 셈이다. 다행히 숫자는 외워 두었는데, 점이 하나라도 찍힌 쪽은 열다섯이었다.
배병조는 열 번쯤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다섯 쪽은 누구의 날인가.
03:00.
빈소 문이 열리고 배병조가 들어오자 향 연기가 문 쪽으로 쏠렸다. 넥타이는 풀려 있었고, 셔츠 소매는 팔꿈치까지 걷혀 있었다.
그는 지도사에게 목례를 하고 영정 옆으로 가더니, 꺼져 가는 향을 뽑고 새 향을 꽂았다. 지도사가 하던 일인데도 지도사는 말리지 않았다.
영정 옆에서 그의 넓은 등이 움직일 때마다 향 연기가 그 어깨를 넘어갔다.
"안 주무십니까, 제수씨."
"차장님은요."
"저는 원래 잠이 적습니다. 현우가 신임 검사일 때도 그랬지요. 밤 열두 시에 기록을 들고 제 방에 오면 저는 늘 깨어 있었습니다."
"남편이 그랬습니까."
"묻는 게 많은 놈이었습니다. 답을 들을 때까지 안 가더군요."
그는 영정을 올려다보다가 다시 향로로 눈을 내리더니,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나와는 두 걸음 거리였다.
나는 수첩을 덮고 말할지 말지를 다시 따져 보았다. 물론 이것은 메모도 인사말도 아니고, 이 건물의 규칙이다.
게다가 그는 그 규칙을 내게 먼저 알려 준 사람이었다.
"차장님. 무엇이 기억을 남기는지 모른다고 하셨죠."
"예."
"알 것 같습니다."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현우 씨에 대해 새로 안 게 있는 날만 남습니다. 하나라도요. 아무것도 새로 알지 못한 날은 잃고요."
향 끝의 불이 조금 밝아졌다가 어두워진 뒤에야 그가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거기까지는 몰랐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그렇다면 제수씨는 매일 현우에 대해 뭔가를 새로 알아내셔야겠군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돕겠습니다."
"차장님이 기억하시는 날에도 그랬습니까. 현우 씨에 대해 새로 안 것이 있었습니까."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매번 뭔가를 들었지요. 현우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는 것들을요."
그가 향로 쪽으로 눈을 돌렸다.
"제수씨는 역시 변호사시네요. 저는 열 번을 겪고도 몰랐습니다."
칭찬하는 목소리마저 부드러웠지만, 나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다음 것을 물었다.
"그 열 번 말입니다."
"예."
"방명록 1쪽에도 점이 하나 있습니다. 차장님 겁니까?"
그가 나를 마주 봤는데, 놀란 얼굴은 아니었다. 오히려 조금 안도한 얼굴에 가까웠다.
"아닙니다. 처음 며칠은 저도 몰랐으니까요. 저는 중간부터입니다."
"그럼 1쪽은 누구의 점입니까."
"저도 그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처음부터 기억하는 사람이 우리 중에 숨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점만 찍고 말은 하지 않는 사람이요."
현주는 여섯 번째쯤부터, 유경은 네 번째와 열두 번째, 배병조는 중간부터라고 했다. 그들의 말이 맞다면 1쪽과 2쪽의 점은 셋 중 누구의 것도 아니다.
나는 무릎 위의 손을 풀었다. 열다섯이라는 숫자와 열 번쯤 사이에 다섯이 비어 있었다.
지도사가 제단 옆 의자에서 일어나 향로의 재를 정리하고는 다시 의자로 돌아갔다.
배병조는 무릎 위에서 손을 맞잡고 있었는데, 무언가를 망설이는 사람의 손이었다.
"제수씨. 저도 말씀드리지 않은 게 하나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말씀드려야 할지 한참 생각했습니다. 제수씨께는 무거운 얘기라서요."
그가 목소리를 더 낮췄다.
"상주만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상주만요."
"발인 전에, 영정 앞에서, 하루에 한 번. 상주가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영정으로 눈을 돌리자, 증명사진 속 남편이 웃지 않은 얼굴로 이쪽을 마주했다.
남편이라면 이 규칙을 어떻게 읽었을까. 하긴 검사는 이름을 부르는 직업이다.
"이름을 부르면요."
"그 사람은 여기서의 기억을 전부 잃습니다. 여기서 겪은 날들 전부요. 여기 오기 전의 삶은 그대로 기억하고요."
"전부라는 건."
"열 번이든 스무 번이든요. 불린 사람은 다음 날 아침에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조문을 옵니다."
"어떻게 아십니까."
그가 잠깐 말을 멈췄다.
"이것도 믿어 주십시오, 라고밖에는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아느냐는 물음에 그는 이번에도 답하지 않았다. 앞서 물었을 때와 똑같았다.
"성까지 불러야 합니까."
"저도 거기까지는 모릅니다. 제가 아는 건 방금 말씀드린 게 전부입니다."
그 대답은 수첩에 적지 않고 외워 두었다. 어차피 아침이면 지워질 테니까.
"차장님은 왜 해 보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상주가 아니니까요. 이 빈소의 상주는 제수씨 한 분입니다."
그가 영정 쪽으로 몸을 조금 돌렸다.
"그리고."
목소리가 한층 더 낮아졌다.
"맞히면 이 장례가 끝납니다."
빈소 문틈으로 새벽 바람이 들어오면서 향 연기가 한쪽으로 휘었다.

"끝나면요. 그다음은요."
"일요일 아침이 오겠지요. 발인하고, 화장하고."
"현우 씨는 화장되는군요."
"……예. 예정대로요."
끝난다는 것은 아홉 시에 화장한다는 뜻이고, 그 뒤로는 손등의 자국도 남지 않는다.
제단 옆 의자의 지도사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정말 자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맞힌다는 건, 누구를요."
"제수씨가 찾는 사람이요."
내가 찾는 사람, 하고 나는 그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이름 하나를 부르는 일은 법정으로 치면 기소다. 부르고 나면 되돌릴 수 없고, 그래서 기소에는 증거가 먼저여야 한다. 증거 없이 기소한 검사를 나는 법정에서 여러 번 무너뜨렸다.
누군가 서둘렀다. 부검 없이, 사고 이튿날에, 화장은 일요일 아침으로 잡혔다. 손등의 긁힌 자국도, 3년 동안 술을 입에 대지 않은 사람의 0.13퍼센트도 있었다.
나는 누군가를 찾고 있고, 이 사람은 그걸 알고 있다.
"누가 틀리면요?"
배병조가 나를 돌아보았다.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고 높아지지 않았다.
"그 사람만 잊습니다. 다시 처음부터요."
"그 사람만."
"예. 장례는 끝나지 않고, 그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조문객으로 돌아옵니다. 제수씨가 신중하셔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는 향을 하나 더 꺼내 불을 붙이고, 손바람으로 불꽃을 끈 다음 향로에 꽂았다.
"오늘 밤 당장 하시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일어날 기색 없이 영정 옆에서 향을 지켰고, 나는 한동안 그의 등을 지켜보았다.
방명록 받침대 쪽으로 눈을 돌리자, 불 꺼진 입구에 방명록이 펼쳐진 채 그대로였다.
18쪽. 여백의 점 셋. 이름 없는 점.
기억한다고 내게 말한 사람도 셋이다.
나는 그 셋의 이름을 안다.
스무 번째 장례식 방명록 — 나는 이름 하나로 끝낼 수 있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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