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5. 사라진 점
07:00.
운구차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눈을 떠 보니 대기실 소파였고, 알림은 일곱 개였다. 메모는 핸드백 안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상주님, 향 다시 올리시지요."
다시. 어제는 '먼저'였고 그제는 아무 말도 붙지 않았다. 향에 불을 붙이면서 그 단어를 외워 두었다. 나중에 수첩에 옮겨 적을 생각이었다.
상식이 끝났을 때 현주는 입구에서 조문객 신발을 가지런히 놓는 중이었다.
어제 현주는 내 옆에 와서 앉더니 "이번엔 언니도야?"라고 물었다. 그러니 오늘은 내가 먼저 가 보기로 했다.
08:00. 빈소.
"아가씨."
허리를 편 현주가 나를 쳐다보았는데, 눈이 커졌다가 이내 가늘어졌다.
"어제 얘기 좀 더 해요. 여섯 번째 일도요."
현주의 눈은 내 얼굴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처음 보는 사람을 볼 때보다도 더 오래였다.
"……언니도야?"
어제 들은 말이었다. 다만 어제는 현주 쪽에서 먼저 꺼낸 말이었다.
"언제부터?"
"아가씨, 어제 저랑 얘기했잖아요. 여기 앉아서."
"내가?"
현주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손에 들고 있던 구두 한 짝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언니, 나 어제 언니랑 그런 얘기 안 했어. 언니는 어제도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이었어."
"그건 그제예요."
"그제?"
현주의 입술이 달싹였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날짜를 꼽아 보는 대신, 손가락에 건 차 키만 빙글 돌렸다.
"잠깐만. 언니, 잠깐만. 어제가…… 언니가 기억하는 어제랑 내 어제가 달라?"
"아가씨는 어제를 기억해요?"
"기억해. 언니가 종이컵 안 마시고, 발인 때 영정 들고……."
현주는 거기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건 그제의 일이었다. 어제 나는 배병조 차장이 준 종이컵을 마셨으니까.
"아가씨의 어제는 제 그제예요. 아가씨는 하루를 건너뛰었어요."
"건너뛰었다고?"
"나중에 얘기해요. 열 시에 접객실로 와요."
현주는 차 키를 손바닥에 꽉 쥐었을 뿐, 고개를 끄덕이지도 자리를 뜨지도 않았다.
08:20.
방명록 앞에 서서 19쪽을 폈다.
맨 위 칸에 내 이름, 문서진. 그 아래로 김 계장과 지검 직원들의 서명이 쪽 가득 차 있었다.
어제 발인 직전, 장례지도사가 촛불을 끄던 무렵에 나는 운구가 시작되기 전 이 쪽의 점을 세어 두었다.
점은 넷이었다. 내 이름 옆의 점 하나와, 나머지 세 개.
배병조, 현주, 한유경. 기억한다고 한 사람이 셋이고 점도 셋이었으니, 내 것까지 넷이면 셈이 딱 맞았다.
지금 다시 세어 보았다.
내 이름 옆의 점은 그대로였고, 여백 가운데쯤에 하나, 아래쪽에 하나.
셋.
손가락으로 여백을 위에서부터 다시 짚어 내려갔다. 서명 사이, 쪽 끝, 접히는 안쪽까지. 그래도 셋이었다.
점 하나가 없다.
지운 자국도, 종이가 긁히거나 번진 데도 없어서 처음부터 없던 점 같았다. 종이를 기울여 형광등에 비춰 보았지만 펜 끝에 눌린 자국조차 남지 않았다.
게다가 방명록 펜은 검은 수성펜이고, 수성펜 자국은 지우개로 지워지지 않는 법이다.
18쪽으로 넘기자 그제의 쪽이 나왔는데, 점은 셋으로 어제 아침에 센 것과 같았다.
현주는 그제를 기억하고, 종이컵과 영정까지 떠올렸다. 18쪽의 점도 그대로다. 사라진 건 19쪽의 점 하나뿐이었다.
20쪽을 펴니 빈 쪽이었다. 맨 위 칸에 내 이름을 적고, 그 옆에 점을 하나 찍었다.
"상주님, 조문객 들어오십니다."
뒤에서 지도사가 말했다.
방명록은 20쪽을 펼친 채 받침대에 바로 놓았고, 줄에 묶인 펜은 흔들리다 멎었다. 자리로 돌아가기 전에 쪽수를 다시 확인했지만 19쪽 다음은 20쪽이었고, 뜯겨 나간 쪽은 없었다.
배병조는 8시 40분에 왔다. 향을 올리고 두 번 절한 그는 방명록 앞을 지나며 펼쳐진 쪽을 힐끗 훑고는, 내 곁으로 와서 낮게 말했다.
"어제는 좀 쉬셨습니까, 제수씨."
"네."
그는 어제를 기억한다. 물론 어제 내가 쉬지 못한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방명록의 쪽을 훑은 이유는 굳이 묻지 않았다.
10:00. 접객실.
아침 접객실에서는 식당 직원 하나가 상을 닦고 있었다. 열 시 정각에 들어온 현주는 식탁 맞은편에 앉아 팔짱을 꼈다.
"처음부터 말해 줘요. 언니가 아는 거."
나는 인사말 얘기만 빼고 처음부터 말했다.
어제 아침 배병조가 알려 준 것들, 하루의 시작과 끝, 흡연 구역. 어제 오전에 현주가 내 옆에 앉았던 것과 여섯 번째쯤부터라고 했던 것까지.
"방명록은 하루에 한 쪽이에요. 쪽수가 날짜고요."
"그건 알아요. 나도 봤어요."
"점은요. 왜 찍어요?"
"기억나는 날엔 찍어요. 그냥, 나 여기 있었다고."
"어제 19쪽에도 찍었어요?"
현주가 입을 열었다가 도로 닫았다.
"몰라요. 어제가 없잖아요."
내 설명이 다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현주가 물었다.
"나 어제 뭐 했는데요?"
"오전에 저랑 얘기했어요. 방명록에 점 찍는다고 했고요."
"또?"
"한유경이라는 여자가 왔어요. 긴 코트 입은 사람. 아가씨가 그 사람 가방을 열려다가 손목을 잡혔어요."
현주가 자기 오른 손목을 내려다보았지만, 거기에는 아무 자국도 없었다.
"그리고?"
"오후에는 어머님 옆에서 귤을 깠어요."
"그게 다야?"
"제가 본 건요."
현주가 손바닥으로 식탁을 짚었는데, 소리는 크지 않았다.
"하루를 통째로 날렸는데, 그게 가방 열다 손목 잡힌 거야?"
"네."
"그 여자 가방엔 뭐가 있었는데?"
"못 열었잖아요."
"그러니까. 어제의 나는 그것도 못 했네."
"아가씨."
"언니는 알아? 나는 그게 처음이 아니야. 몇 번째인지 세다 보면 늘 모자라."
어제도 현주는 같은 말을 했었다. 세다 보면 모자라.
웃지도 울지도 않는 얼굴로, 현주는 차 키를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중간중간이 텅 비어 있어. 나는 내가 어디서 빠졌는지도 몰라."
"기억나는 날에는 무슨 일이 있었어요?"
"그건 나중에."
어제와 같은 대답이었지만, 현주는 그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하나만 말해 줘요. 어제 나, 언니한테 오빠 얘기 했어요?"
"안 했어요."
차 키를 돌리던 현주의 손이 우뚝 섰다.
"다행이네. 두 번 말하면 두 번 아플 테니까."
현주는 그 말을 하고 나서야 차 키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그럼 오늘은요? 오늘도 날아가요?"
"모르겠어요."
"언니가 모르면 누가 알아요."
"그걸 알아보려고요."
팔짱을 푼 현주가 식탁 위에 손을 올렸다. 짧게 깎은 손톱 끝이 눈에 들어왔는데, 영락없는 병원 사람의 손이었다.
현주는 일어서려다 말고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앉았다.
"언니는 어떻게 기억하게 됐어요? 그제 무슨 일 있었어요?"
"그건 나중에요."
한참 나를 바라보던 현주의 입가가 처음으로 조금 풀렸다.
"언니, 그거 내 말이에요."
나는 무릎 위에 손을 포갰다. 남편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무엇을 남겼는지만 말하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하나는 말할게요."
현주가 식탁 쪽으로 몸을 바짝 기울였다.
"남편이 저한테 남긴 게 있어요."
"오빠가? 언니한테?"
"네. 뭔지는 아직 말 못 해요."
현주가 식탁 위의 차 키를 도로 집어 손가락에 걸었지만, 이번에는 돌리지 않았다.
"편지예요? 유서 같은 거?"
"아직은요."
"오빠가 언니한테 뭘 남겼으면, 오빠는 뭘 알고 있었다는 거잖아요. 이렇게 될 줄."
"그건 저도 몰라요."
현주는 입술을 깨물었고, 더 묻는 대신 차 키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일어나 문 앞까지 가더니 고개만 돌렸다.
"내일 아침에 나한테 먼저 와요. 내가 또 모르는 얼굴이면."
"갈게요."
유경은 열 시 반에 와서 서명을 하고 향을 올린 뒤, 내 앞에서 짧게 고개를 숙였다.
"어제 가방 일은 신경 쓰지 마시라고 유족분께 전해 주세요."
"어제를 기억하시네요."
"네."
유경은 그 이상은 입을 열지 않고 나갔다. 그 사람도 어제를 기억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열한 시 입관에서도 현주는 남편의 소매 쪽을 오래 응시했다.
한 시, 강 경위의 입에서 0.13퍼센트라는 숫자가 나오자 현주는 눈을 감았다.
두 시가 조금 넘어 방명록 앞에 선 현주는 19쪽을 오래 내려다보다가 내 옆으로 왔다.
"몇 개예요, 지금."
"셋이요."
"어제 발인 때는요?"
"넷이었어요."
현주가 완장을 고쳐 찼는데, 매듭을 풀었다가 다시 묶는 손이 유난히 더뎠다.
"……나네."
그 말만 남기고 현주는 신발 정리로 돌아갔는데, 오늘은 신발을 두 번씩 맞춰 놓았다.

3시에 검사장이 왔다. 정리는 잘 됐고. 네. 6시 10분에는 청운물류의 봉투, 8시에는 목요일에 우리 현우가. 그 말이 나올 때 현주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제시간에 왔다. 현주만 빼고. 현주는 신발을 정리하다가도 자꾸 내 옆 방석으로 돌아왔고, 열한 시가 넘어 대기실로 들어가기 전에도 내 쪽을 돌아보았다.
23:30. 빈소.
밤 열한 시에 모자 쓴 여자가 왔다가 향만 꽂고 나갔는데, 오늘도 얼굴은 보지 못했다.
넥타이 매듭을 늦추며 빈소로 들어온 배병조가 내 곁을 지나다 걸음을 늦췄다.
"오늘은 현주 씨가 하루 종일 제수씨 옆에만 있더군요."
"피곤한가 봅니다."
"그렇겠지요. 다들 피곤합니다."
그가 영정 옆으로 가서 앉았다. 수첩을 무릎 위에 엎어 두었던 나는 그가 눈을 감은 뒤에야 수첩을 펴고, 오늘 적은 것을 처음부터 읽었다.
「19쪽. 발인 직전 4 → 오늘 아침 3. 병조 — 어제 기억(쉬셨냐고 물음). 유경 — 어제 기억(가방 일). 현주 — 어제 없음. 나 — 어제 기억. 내 점 그대로. 18쪽 — 3 그대로. 현주는 그제를 기억.」
현주의 줄에서 눈이 다시 멈추었다.
사라진 점은 현주의 것이다.
아마 현주는 어제 점을 찍었을 것이다. 기억나는 날엔 찍는다고 했으니까. 어제 하루만큼은 현주도 기억하는 사람이었는데, 오늘 아침에 그 하루가 빠져나가면서 점도 같이 빠져나간 것이다.
현주의 점이 사라지는 걸 내 눈으로 본 건 아니다. 발인 직전에는 있었고, 일곱 시에는 없었다.
그 사이에 방명록을 만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운구차 문이 닫히고 눈을 뜨기까지, 그 사이라는 게 아예 없으니까.
서명은 그대로 남지만 점은 다르다. 그 하루를 가진 사람이 있을 때만 남는다.
방명록은 기억을 기록하고, 기억이 빠지면 기록도 함께 빠진다.
3쪽과 11쪽이 떠올랐다. 그날도 누군가 점을 찍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그 점이 사라졌을지 모를 일이었다.
어제 각자 무엇을 했는지 수첩에 적어 보았다.
배병조는 어제 무엇을 했나. 아침에 나에게 규칙을 알려 준 것 말고는 아는 게 없었다.
유경은 어제 네 번째와 열두 번째라는 번호를 말했고, 자기 가방을 지켰다.
현주는 내 옆에 앉아 이야기를 했고, 가방을 열려다 손목을 잡혔으며, 오후에는 귤을 깠다.
나는 방명록의 점을 셌고, 사서함에서 오늘은 이용할 수 없다는 안내를 들었다.
적어 놓고 보니 이상한 목록이었다. 누가 더 많이 움직였는지로는 도저히 가를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남는 질문은 하나뿐이다.
현주는 어제를 잃었고, 배병조와 유경과 나는 어제를 가지고 있다. 같은 하루를 살았는데 누구는 남고 누구는 빠진 것이다.
20쪽 내 이름 옆에도 점이 하나 있다. 하지만 내일 아침에 그 점이 남아 있을지는 나도 모른다.
무엇이 하루를 남기나.
스무 번째 장례식 방명록 — 점은 기억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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