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3. 뒷자리
"아, 아. 신입생 여러분,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체육관 문을 밀자마자 사회자 목소리가 먼저 튀어나왔고, 마이크를 두드리는 소리가 천장까지 올라가 울렸다.
톡톡.
‘꿈이면 자세한 꿈이고.’
꿈이 아니라면? 그건 일단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검토는 앉아서 해도 늦지 않았다.
안은 신입생들로 꽉 차 있었는데, 바닥에 끝도 없이 깔린 접이식 의자 중 앞쪽은 이미 빈틈이 없어서 나는 가방을 끌어안고 뒤쪽 통로를 따라 걸었다.
뒤쪽 줄들은 반쯤 비어 있었다. 늦게 온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였고, 회사 워크숍에서도 나는 늘 이쯤에 앉곤 했다. 그러다 뒤에서 여섯째 줄에 빈 의자가 하나 보였다.
"여기 자리 있어요?"
옆자리 신입생이 고개를 저었다. 동그란 안경에 단발머리를 한 애였다.
"없어요, 앉으세요. 무슨 과예요?"
"경영이요. 그쪽은요?"
"국문과요. 아, 국어국문학과."
학과 이름이 아직 입에 안 붙은 얼굴이었다. 나는 원피스 자락을 정리하며 자리에 앉았다.
"몇 년생이에요? 저 93이요. 빠른 아니고요."
"저도 93이요."
"아, 다행이다. 빠른 애들이랑 앉으면 호칭이 복잡해서요."
국문과가 너무 진지하게 안도하는 바람에 나는 웃음을 참느라 볼 안쪽을 깨물어야 했다.
‘서른셋쯤 되면 빠른이고 뭐고 전부 "선배님"이에요.’
물론 그걸 말해 줄 수는 없었다.
"근데 원피스 예쁘다. 입학식이라고 차려입은 거예요?"
"엄마가 골라 줬어요."
"우리 엄마도요."
국문과가 자기 체크 셔츠 깃을 집어 보이자 우리는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원래 스무 살의 연대란 이렇게나 빠른 법이다.
의자마다 식순 종이가 한 장씩 놓여 있어서 집어 들었다.
「한울대학교 2012학년도 입학식 1. 개식 2. 총장 식사 3. 신입생 학과 소개 4. 학생회장 환영사 5. 교가 제창」
흰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넘긴 총장이 단상 위로 올라섰다.
‘총장 축사는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만 들으면 된다.’
창립기념일마다 사장님 축사를 견뎌 온 회사원이 터득한 요령이었다.
"친애하는 신입생 여러분."
나는 등받이에 기대 팔짱을 꼈다. 꿈이니까 좀 졸아도 괜찮을 터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졸리지가 않았다.
총장이 원고를 한 장 넘기는데, 그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가 먼저 지나갔다.
‘곧 마이크가 삑 하고 운다.’
삐이익.
스피커가 날카롭게 울자 신입생들이 일제히 귀를 막았고, 방송반 학생 하나가 음향 콘솔 쪽으로 허리를 숙였다.
"아, 깜짝이야."
국문과가 안경을 밀어 올리는 동안 나는 귀를 막을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알고 있던 소리였으니까.
계단 일곱 칸에 풀린 끈, 그리고 마이크까지, 벌써 세 번째였다.
‘우연이겠지. 입학식 마이크는 원래 한 번쯤 운다.’
총장이 헛기침을 하고 다시 원고를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번에는 앞쪽을 훑었다. 셋째 줄 가운데에 누군가 하트 풍선을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저 풍선, 터진다.’
펑.
앞줄이 들썩이고 풍선 주인이 벌떡 일어나 사방에 고개를 숙이는 사이, 주변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축포군요. 좋습니다."
총장이 웃으며 한 그 말까지 기억 그대로였으니, 이걸로 네 번째였다.
손끝이 차가워져서 팔짱을 풀고 양손을 무릎 사이에 끼웠는데도 손끝은 여전히 얼음장이었다.
축사가 끝나자 학과 호명이 시작됐다. 사회자가 단과대학별로 학과 이름을 부르면 그 과 신입생들이 일어나 박수를 받는 식이었다.
인문대학, 사학과, 철학과를 지나면 다음이 국문과였다.
그런데 순서가 오기도 전에 내 입술이 먼저 움직였다.
"……국문국어학과."
"네?"
국문과가 나를 돌아본 그때, 사회자가 외쳤다.
"다음은 국문국어학과!"
체육관이 한 박자 늦게 웃음을 터뜨렸고, 일어나려던 국문과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굳어 버렸다.
"……국어국문학과인데."
사회자가 "아, 국어국문학과! 죄송합니다!" 하며 머리를 긁자 박수가 다시 쏟아졌다. 얼굴을 붉히며 일어섰다가 앉은 국문과는 곧장 나를 돌아다보았다.
"방금 어떻게 알았어요? 사회자보다 먼저 말했잖아요!"
"……찍었어요."
"찍었는데 틀린 이름까지 똑같이요?"
국문과가 안경 너머로 한참을 뜯어보는데도 나는 앞만 응시했다. 무릎 사이에 낀 손이 도무지 빠져나오질 않았다.
다섯 번째.
‘이건 맞혀서 좋은 시험이 아니다.’
꿈은 원래 기억으로 만드는 거고, 기억을 재료로 쓰면 순서가 맞을 수도 있는 법이다.
그렇게 정리하려는데 정리가 되질 않았다. 보고서라면 한 장으로 끝나야 하는데, 자꾸만 각주가 붙어 나가는 꼴이었다.
결국 볼을 꼬집었다. 그것도 세게.
"읏."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아팠다.
"……모기요?"
국문과가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3월 체육관에 모기가 있을 리가 없었다.
"네. 큰 거요."
이번에는 국문과가 의자를 살짝 떼어 놓았다. 나는 볼을 문지르며 모르는 척했다.
그때 가방 속 휴대폰이 떨렸다.
지잉.
[엄마] 사진 찍어서 보내 꼭!! 우리 딸 대학생ㅎㅎ
‘이 문자, 안다.’
▣ 원래라면 2012년 3월 2일. 나는 이 문자에 답장을 안 했다. 동기들이랑 떡볶이를 먹다가 까먹었다. 엄마는 저녁에 사진 어디 있냐고 물었다.
휴대폰을 쥔 손을 내려다보니 엄지손톱 옆에 거스러미가 하나 일어나 있었다. 수능 끝나고 손톱을 물어뜯던 버릇이 남긴 흔적이었다.
거스러미를 손끝으로 누르자 따끔하더니 피가 살짝 비쳤다.
사실 꿈은 거스러미까지 만들지 않고, 꿈에서 피가 나 본 적도 없었다. 게다가 꿈은 이렇게 춥지도 않은데, 지금은 체육관 바닥의 한기가 원피스 밑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셌다. 하나, 마이크. 둘, 풍선. 셋, 국문국어학과. 넷, 볼. 다섯, 거스러미.
다섯 개를 다 접고 나니 주먹이 되어 있었고, 그 주먹을 쥔 채로 알았다.
이건 현실이다.
지금은 2012년 3월 2일, 내 스무 살 생일이었고, 나는 서른셋의 기억을 전부 가진 채로 입학식 체육관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여기엔 서른셋의 내 것이 하나도 없었다. 원룸도, 대한정밀도, 200원을 불렀다가 백오십에서 멈춘 단가도, 내일 아침에 걸려던 전화도.
‘입사하고 제일 빨리 끝낸 검토였는데.’
그리고 엄마는 마흔아홉이다.
숨을 참았더니 참은 숨이 목구멍에서 부풀어 올랐다.
단상에서는 학생회장이 환영사를 시작했지만 목소리는 아주 멀리서 들렸다. 천장에는 쓸데없이 밝은 조명이 달려 있었고, 수천 개의 뒤통수가 전부 한 방향을 향해 있었다.
나만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14년 뒤를.
그러다 참은 숨이 터졌다.
"아아아아악!"
체육관이 조용해졌다.
진짜로,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지면서 환영사가 끊겼고, 마이크만 눈치 없이 한 번 더 울었다.
삑.
앞줄부터 뒷줄까지 뒤통수들이 차례로 얼굴이 되어 돌아보았다.
단상 위 학생회장은 입을 벌린 채 굳었고, 그 옆자리의 총장은 안경을 벗었다.
국문과가 의자째 몸을 뒤로 뺐다.
"저, 저기요. 어디 아파요?"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올라왔다.
"뭐야, 뭐야."
"누가 소리 질렀어?"
"뒤쪽 같은데?"
"여자 목소리던데."
"벌써 등록금 고지서 봤나 봐."
양손으로 입을 막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출고 끝난 물건은 회수가 안 된다.’
얼굴이 확 달아오르더니 귀까지 뜨거워졌다. 수천 명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솔직히 서른셋 인생을 통틀어 이만한 주목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승진 심사 때조차도.

"괜찮으세요?"
바로 뒤에서 목소리가 났다.
낮고 짧은 데다 놀란 기색도 웃는 기색도 없는, 그냥 물어보는 목소리였다.
돌아봐야 했다. 사과를 하든 뭘 하든 얼굴은 보고 해야 맞는 건데, 목이 돌아가질 않았다. 고개는 반쯤, 딱 어깨 높이까지만 돌아갔고 눈은 그 위로 올라가지를 못했다.
"네, 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진짜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세는 게 특기인 사람이 그걸 못 셌다.
뒷자리 사람은 더 묻지 않고, 의자 소리만 냈다.
삐걱.
앞으로 기울였던 몸을 도로 등받이에 기대는 소리였다.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자 반쯤 돌린 고개 끝에 뒷자리 사람의 무릎이 걸렸다. 검은 바지였고, 그 위에 두꺼운 책 한 권이 얹혀 있었다.
영어 제목이 박힌 그 책은 표지 모서리가 닳아 있었는데, 제목 아래 여백에 검은 네임펜으로 꾹꾹 눌러 쓴 이름이 보였다.
「김정현」
단상에서 학생회장이 헛기침을 하고 환영사를 이어 가자, 얼굴들이 하나둘 도로 뒤통수가 되어 갔다.
나는 앞으로 돌아앉았다. 등이 뜨거웠다. 바로 등 뒤 한 뼘 거리에 그 이름이 있었다.

‘김정현. 김정현.’
속으로 두 번 읽어 봤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교가 반주가 시작됐으니, 식순의 마지막 줄까지 온 셈이었다.
▣ 박성은 검토서 — 끝까지 앉아 있을까 장점 1. 예의 바르다 단점 1. 아직도 앞줄 몇 명이 뒤를 힐끔거린다 단점 2. 국문과가 의자를 한 번 더 뗐다
검토를 끝내자마자 나는 가방을 끌어안고 일어섰다.
뒤는 쳐다볼 엄두도 안 났다. 국문과가 "저기, 이거……"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대답할 정신도 없이 통로로 빠져나와 출구까지 뛰었다. 출구 옆에서 누가 전단 한 장을 내밀었는데 그것도 그냥 지나쳤고, 일곱 칸 계단은 두 칸씩 뛰어 내려갔다.
체육관 밖으로 나오자 찬 공기가 확 끼쳤고, 풀린 플래카드 끈은 아직도 펄럭이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연달아 떨었다.
[민재] 방금 소리 지른 사람 누구예요?? [지혜] 뒤쪽이던데ㅋㅋㅋ 우리 과는 아니겠죠? [현우] 총장님 안경 벗으신 거 봤어요?ㅋㅋㅋ
‘우리 과다.’
나는 조용히 화면을 껐다.
"저기요! 경영과!"
돌아보니 국문과가 남색 텀블러를 손에 든 채 계단을 뛰어 내려오고 있었다.
"이거 떨어뜨렸어요. 의자 밑에."
"아…… 고마워요."
텀블러를 받는 사이 국문과가 내 얼굴을 살폈는데, 안경 너머 눈이 아까보다 조금 가까웠다.
"아까 그 학과 이름이요. 진짜 찍은 거예요?"
"네. 진짜로요."
"와, 신기하다! 그럼 나중에 로또 번호도 좀 찍어 줘요."
농담이었는데 내 머리는 그걸 농담으로 알아듣지 못했다. 로또, 2012년 3월, 1등 번호.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기억나는 거라고는 회사 앞 복권방 아저씨의 금니뿐이었다.
‘14년을 들고 왔는데 숫자 여섯 개가 없다.’
"……그건 잘 안 찍혀요."
"하긴요. 그럼 다음에 봐요!"
손을 흔들며 인문대 쪽으로 뛰어가는 국문과를 보내고 나서, 나는 텀블러를 가방에 넣고 플래카드를 올려다보았다.
엄마 문자를 다시 열고 플래카드를 향해 휴대폰을 들었다.
찰칵.
끈이 풀린 귀퉁이까지 화면에 들어왔다. 이번엔 답장을 했다. 원래는 없던 답장이었다.
[박성은] 엄마 나 입학했어 [엄마] 우리 딸 얼굴은 왜 없어?
머릿속으로 입학식을 처음부터 다시 틀었다. 14년 전, 원래의 입학식을.
▣ 원래라면 뒤쪽 자리. 우는 마이크. 터지는 풍선. 틀린 학과 이름. 나는 옆자리 애랑 같이 웃었다. 그게 다였다.
비명은 없었다.
"괜찮으세요"도 없었다.
원래의 나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고, 소리도 안 지른 애한테 괜찮냐고 물을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니까 그 목소리는 원래 없던 것이고, 그 무릎도 그 책도 나는 본 적이 없는 거였다.
그런데 이번엔 누군가 물었다.
김정현.
과 동기에도, 전남친 넷에도, 회사 거래처 명함첩에도, 14년을 다 뒤져도 없는 이름이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손바닥에 그 이름을 한 번 써 보았다.
비명 한 번에, 내 인생에 없던 사람이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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