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3. 헤드락
삐—
타이머가 울렸을 때 매듭은 이미 목까지 올라가 있었다.
3월 2일 밤, 자취방. 재경은 거울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손끝으로 매듭을 더듬었다. 좌우가 맞았다. 스물아홉 초. 세 번 연속이었다.
넥타이를 풀어 옷걸이 목에 걸었다. 알람은 여섯 시 반에 맞췄다. 첫날이라 여섯 시에도 하나 더.
[하나] 내일 끝나면 연락
[나] 응
책상 위 봉투 입구는 여전히 접혀만 있었다.
3월 3일 오전 8시 40분, 원스텝애드 유리문 앞.
엘리베이터 홀은 비어 있었다. 유리문 안쪽은 불이 반만 켜져 있었다. 재경은 20분째 거기 서 있었다. 같은 층을 쓰는 다른 회사 사람들이 복도 끝 화장실로 오갔다. 재경은 그쪽을 보지 않았다.
남색 정장, 목 끝까지 채운 단추, 도트 넥타이. 검은 백팩은 두 어깨에 다 멨다.
두 손에는 봉투가 있었다.
「입사서류 · 박재경 / 주민등록등본 1부 · 통장 사본 1부」
등본. ……그거, 누가 받지?
봉투 모서리를 쥔 엄지가 종이를 구겼다. 폈다. 다시 구겼다.
유리문이 안에서 열렸다. 턱선 단발, 가는 금테 안경, 베이지 카디건. 한 팔에 서류철. 면접 날 펜을 멈췄던 사람이었다.
"재경 씨. 일찍 왔네요."
"안녕하십니까."
목소리는 조금만 낮췄다. 하나 앞에서 맞춰 둔 높이였다.
"입사서류 가져왔죠? 줘요."
한지원이 손을 내밀었다. 봉투를 쥔 재경의 손이 늦게 나갔다. 봉투가 지원의 손으로 넘어갔다.
지원은 봉투를 서류철 위에 얹고 앞장섰다. 풀칠하지 않은 입구가 걸음마다 조금씩 벌어졌다. 한 걸음에 한 번씩, 입을 벌리듯이.
재경은 반걸음 뒤에서 그 입구만 봤다. 다른 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열두 걸음. 입구는 열두 번 벌어졌다.
"출근은 9시예요. 40분은 너무 일러요."
"첫날이라서요."
"내일부터는 50분쯤 와요. 불은 내가 켜니까."
지원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서류철 위에서 봉투가 한 번 더 벌어졌다.
8시 45분, 사무실 안. 오픈 오피스였다. 입구 쪽에 AE 자리가 두 줄, 가운데 광고운영팀, 창가부터 복도 쪽 끝까지가 경영지원팀. 창을 등진 팀장 자리는 창가, 복도 쪽 끝에 두 자리가 마주 보고 있었다. 아직 출근한 사람은 몇 없었다.
지원이 빈 책상에 종이 한 장을 놓았다.
「경영지원팀 업무분장」
「한지원: 총괄·결재」
「곽민식: 광고 정산·결산」
「박재경: 회계(전표·채권채무)·총무·인사·급여·4대보험」
제 이름 뒤가 제일 길었다.
"회계는 전표하고 채권채무. 총무는 비품, 법인카드, 우편물. 인사는 입퇴사, 인사카드, 근로계약서. 급여하고 4대보험은 오후에 곽 대리가 넘겨줄 거예요."
"네."
"질문 있어요?"
"없습니다."
"있으면 해요. 지금 말고 나중에라도."
지원이 금테를 가운뎃손가락으로 밀어 올렸다. 그게 끝이었다.
"인사는 재경 씨 업무예요. 첫 업무는 신규 입사자 서류 접수."
"네. 신규 입사자가—"
"재경 씨요."
지원이 서류철 위의 봉투를 빈 결재함에 넣었다. 라벨에 「접수」라고 쓰여 있었다. 지원은 결재함째 재경 앞으로 밀었다.
재경은 결재함에서 봉투를 다시 꺼냈다. 방금 제 손을 떠난 봉투였다.
……받는 사람, 나.
나흘 동안 얼굴을 떠올리려 애쓴 그 사람이, 나였다.
"원본 확인하고, 접수대장에 적고, 확인자 칸에 서명."
원본 확인. 재경은 봉투 속 종이 두 장의 귀퉁이만 손끝으로 셌다. 등본 한 장, 사본 한 장. 펴 볼 필요는 없었다. 내용은 제출자가 제일 잘 알았다.
지원이 두꺼운 바인더 하나를 펼쳐 놓았다. 앞 장들엔 다른 입사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맨 아래 빈 줄에 재경은 날짜부터 적었다.
「3/3 · 제출자 박재경 · 주민등록등본 1 · 통장 사본 1 · 확인자 ____」
펜이 확인자 칸으로 갔다. 나흘 전 파라솔 탁자에서 천천히 쓴 석 자를, 이번엔 빨리 썼다.
제출자 박재경. 확인자 박재경.
……이게 되네?
결재선이 한 사람이면 그건 결재가 아니라 일기였다.
"접수대장은 캐비닛 맨 위 칸이에요. 인사 서류는 전부 그 캐비닛에 들어가요."
"네."
그 캐비닛 앞자리에 누가 앉을지는, 아직 안 정해져 있었다.
고개를 드니 지원은 벌써 자기 자리에서 모니터를 켠 뒤였다. 아무 표정도 없는 옆얼굴이었다.

"자리는 둘 중에 골라요."
재경은 두 자리를 봤다.
한 자리는 창을 보고 앉는 자리였다. 등 뒤가 통로였다. 앉으면 모니터가 지나가는 사람들 눈높이에 걸린다.
다른 한 자리는 벽을 등졌다. 벽에는 잠금장치 달린 회색 철제 캐비닛이 서 있었다. 앉으면 모니터 뒷면이 사무실을 향한다. 등 뒤로는 아무도 설 수 없다.
재경은 벽 쪽 의자를 뺐다.
"거긴 오후에 해 안 드는데."
"여기가 좋습니다."
"그래요. 캐비닛 열쇠는 오후에 곽 대리가 줄 거예요."
책상 위엔 모니터와 전화기, 먼지 앉은 탁상 달력 하나가 있었다. 달력은 작년 12월에 멈춰 있었다. 재경은 석 장을 넘겨 3월을 폈다.
앉아 보니 사무실 전체가 모니터 위로 보였다. 누구도 이 화면을 볼 수 없다. 해는 안 들어도 된다.
재경은 봉투를 키보드 옆에 내려놓았다가, 다시 집었다. 손에서 놓는 게 잘 안 됐다.
8시 55분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입구 쪽 AE 자리에서 누군가 목을 빼고 이쪽을 봤다.
"신입이에요? 경영지원?"
"네. 박재경입니다."
"오, 잘 부탁해요. 경영지원 드디어 셋이네."
그 사람은 대답을 다 듣기도 전에 자리에 앉았다. 옆자리 사람과 말이 이어졌다.
"곽 대리님 오늘 몇 분 늦을까."
"5분."
"난 10분."
재경을 오래 보는 사람은 없었다. 지하철에서처럼.
쿵쿵쿵쿵.
복도를 뛰는 발소리였다. 유리문이 밀렸다. 스포츠머리에 셔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은 남자가 들어왔다. 노타이. 셔츠 주머니에 담뱃갑, 한 손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지원이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7분."
"엘리베이터가요, 팀장님. 엘리베이터가."
벽시계가 9시 7분을 가리켰다. 남자가 재경을 발견했다.
"오. 네가 막내야? 넥타이 봐라. 첫날이라고 힘줬네."
재경은 봉투를 쥔 채 일어섰다.
"박재경입니다."
"곽민식. 대리. 네 사수. 몇 살이야?"
"스물여덟입니다."
"어리네. 경영학과?"
"네."
"그럼 숫자는 좀 보겠네."
"봅니다."
민식이 턱으로 재경을 가리키고 어깨를 폈다. 커피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예고도 없이 팔을 재경의 목에 걸었다.
머리가 민식의 겨드랑이 쪽으로 확 당겨졌다. 가슴이 민식의 옆구리에 눌렸다.
"환영한다, 막내야! 남자 들어오니까 좋다, 아주!"
재경의 몸이 굳었다. 두 손이 허공에 뜬 채 멈췄다. 오른손에는 봉투가 들려 있었다.
쿵. 쿵.
제 심장 소리였다. 귀 바로 옆에서 뛰었다.
목. 팔이 목에.
가슴이, 이 사람 옆구리에.
숨이 들어가지 않았다. 민식의 셔츠 소매에서 담배와 커피 냄새가 났다. 셔츠 깃이 턱 밑으로 말려 올라갔다. 넥타이 매듭이 목 한쪽으로 밀렸다.
하나, 둘, 셋. 팔은 셋을 세도록 풀리지 않았다. 민식이 팔에 힘을 한 번 더 줬다가 흔들었다. 반가워서 하는 짓이라는 건 알았다. 안다고 목이 풀리지는 않았다.
팔을 밀어낼 수도 있었다. 악력은 좋다. 그런데 밀어내면, 왜 그러냐고 물을 것이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지원은 모니터만 봤다. AE 자리 쪽에서 누가 전화를 받았다. 사무실은 그냥 출근 시간이었다.
민식의 빈손이 재경의 봉투를 채 갔다.
"뭐야 이거. 첫날부터 러브레터냐?"
민식이 헤드락을 풀었다. 목이 풀리자 숨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민식은 봉투를 흔들어 보고, 입구를 벌렸다. 풀칠하지 않은 입구는 쉽게 벌어졌다. 종이 윗단이 딸려 올라왔다.
「주민등록표(등본) …… 성명 박재경 · 주민등록번호 ●●●●●●-」
"주민등록…… 등본? 에이, 재미없네."
재미없다. 끝까지 재미없어야 했다.
민식의 손가락이 종이를 마저 뽑으려 했다. 그 순간 재경의 손바닥이 봉투를 덮었다. 민식의 손 위로.
"곽 대리님."
"어?"
"개인정보입니다."
"야, 나 네 사수야."
"네."
한 박자.
"인사 서류는 인사 담당 외 열람 금지로 하겠습니다."
민식이 재경을 봤다. 재경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턱을 한 치 들고, 시선을 민식의 셔츠 깃 높이에 뒀다. 봉투를 덮은 손등에 힘줄이 섰다.
"……와. 첫날부터 규정이냐?"
"맞는 말이에요, 곽 대리."
지원은 여전히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민식의 입이 삐죽 나왔다.
"손 좀 치워 봐. 안 봐. 안 본다고."
재경은 손을 치우지 않았다. 민식의 손가락이 봉투에서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한 마디, 두 마디. 민식이 손을 뗐다. 기분 나빠하는 얼굴이었다. 틀린 말이라서가 아니라, 틀린 말이 아니라서.
재경은 봉투를 끌어와 입구를 눌러 접었다. 반쯤 올라왔던 등본이 도로 안으로 들어갔다.
규정은 방금 생겼다. 만든 사람도, 지킬 사람도 박재경이었다.
재경은 포스트잇 한 장을 뜯어 적었다. 「인사 서류 — 인사 담당 외 열람 금지」. 모니터 테두리에 붙였다. 입사 첫날, 할 일 목록의 첫 줄이었다.

"알았다, 알았어. 무서운 막내 들어왔네."
민식이 제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러다 재경의 턱을 흘끗 봤다.
"근데 너 면도는 하냐? 턱이 애기네, 애기. 나는 아침에 밀어도 오후 세 시면 올라오는데."
민식이 제 턱을 손바닥으로 쓱 문질렀다. 재경의 손이 턱으로 가려다 멈췄다.
면도는 하냐.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한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안 한다고 하면 다음 질문이 온다.
재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봉투를 쥔 채 유리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등 뒤에서 빨대 소리가 났다. 얼음 부딪는 소리. 민식은 벌써 커피를 빨며 모니터를 켰다.
유리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 홀은 아까처럼 비어 있었다. 30분 전 이 자리에서 봉투 모서리를 구기던 손. 지금은 봉투를 구길 힘도 없다.
재경은 복도 벽에 어깨를 붙였다. 밀려난 넥타이 매듭을 목 가운데로 끌어올렸다. 손가락이 매듭 위에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급여하고 4대보험은 오후에 곽 대리가 넘겨줄 거예요. 아까 들은 말이었다. 넘겨줄 사람이 저 팔이었다. 자리는 마주 보는 두 자리. 오늘도, 내일도, 매달.
출근 7분. 등본은 봉투 안으로 돌아갔고, 목에는 아직 그 팔의 무게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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