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4. 취득신고
넥타이 매듭 안으로 손가락 하나가 들어갔다.
층 공용 화장실, 남자 칸. 재경은 닫힌 변기 뚜껑 위에 앉아 매듭을 한 마디만큼 느슨하게 했다. 목에 얹혀 있던 팔의 무게가 조금 빠져나갔다.
밖에서 누가 들어와 손을 씻고 나갔다. 그동안은 숨을 참았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한 번 길게. 그리고 매듭을 다시 조였다.
손바닥을 셔츠 위 가슴께에 평평하게 댔다. 제자리에 있나. 누르듯 확인하는 손바닥이 조금 떨렸다.
휴대폰에는 하나의 메시지가 먼저 와 있었다.
[하나] 등본 누가 받았어
[나] 나
[하나] ㅋㅋㅋㅋㅋ 뭐야 결재도 니가 해?
[나] 확인자 서명도 내가 했어
[나] 그리고 방금 사수한테 헤드락 당함
[하나] ……괜찮아?
엄지가 자판 위에서 멈췄다. 「괜찮아」를 쳤다. 지웠다.
[나] 목이 좀 놀랐어
괜찮다고는 안 썼다. 안 괜찮으니까.
사실만 말고 어땠는지도. 나흘 전 하나가 그랬다. 이게 재경이 쓸 수 있는 만큼이었다.
재경은 봉투에서 등본을 꺼냈다. 나흘 동안 접힌 채였던 종이를, 처음으로 제대로 폈다.
「성명 박재경 · 세대주와의 관계 본인 · 주민등록번호 ●●●●●●-2●●●●●●」
등본엔 성별 칸이 없다. 숫자 하나가 다 말할 뿐.
종이를 다시 접어 봉투에 넣었다. 입구를 손톱으로 한 번 더 눌러 접었다.
오전 11시, 경영지원팀 자리.
재경의 모니터에 회사 공용 폴더의 오래된 양식이 떠 있었다. 접수한 서류 다음은 인사카드였다. 제 카드를 제가 채울 차례였다.
「인사기록카드 — 성명 / 성별 □남 □여 / 주민등록번호 / 주소 / 연락처」
「혼인 여부 □기혼 □미혼 / 병역 □군필 □미필 □면제 / 가족관계 / 사진」
커서가 「성별」 앞에서 깜박였다.
재경은 행을 지웠다. 성별. 혼인 여부. 병역. 사진.
주민등록번호 줄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그 줄은 지우지 않았다.
「인사기록카드(개정) — 성명 / 주민등록번호 / 주소 / 연락처」
「급여 계좌 / 비상연락처 / 부양가족」
「※ 급여·4대보험·연말정산에 필요한 항목만 적습니다」
옛 양식과 새 양식을 나란히 출력했다. 프린터가 두 장을 뱉는 동안 재경은 할 말을 순서대로 세웠다. 전부 사실이어야 했다. 다행히 전부 사실이었다.
"팀장님. 인사카드 양식을 고쳤습니다."
지원이 두 장을 받아 들었다. 가운뎃손가락으로 금테를 밀어 올렸다.
"성별 칸이 없네요."
"채용에서 성별을 묻지 않았습니다. 입사하고 나서 새로 물을 이유가 없습니다."
"혼인 여부는."
"같은 이유입니다."
지원의 펜 끝이 옛 양식의 「□기혼 □미혼」 위에서 멈췄다. 오래 멈춰 있었다. 재경은 그 펜 끝을 봤다. 무슨 뜻인지는 읽을 수 없었다.
"……병역은."
"급여하고 4대보험에 안 쓰는 칸입니다. 예비군 공가는 통지서 받은 사람이 내면 됩니다."
"주민등록번호는 남겼네요."
"그건 신고에 필요합니다."
지원이 새 양식 아래에 서명했다. 「승인 한지원」.
"기존 직원 것도 이 양식으로 바꿔요. 이번 달 안에."
"네."
"공용 폴더 옛날 건 지우고, 이걸로 올려요."
"네."
재경은 돌아섰다. 돌아서는 눈 끝에, 지원이 옛 양식을 서류철 맨 뒤에 끼우는 게 걸렸다. 서류철이 입가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까지만 보였다.
성별 칸은 지웠다. 성별은 번호 안에 남았다.

11시 40분, 회의실 앞 유리벽.
재경은 두 장짜리 문서를 들고 섰다. 오전에 직접 만든 근로계약서였다.
「근로계약서 — 사용자: (주)원스텝애드 대표이사 오창석」
「근로자: 박재경 / 담당 업무: 회계·총무·인사」
대표가 재경을 보고 문을 열었다. 오늘도 골프 셔츠였다. 서서 펜을 휘갈겼다. 두 부. 한 부를 돌려주고 손을 내밀었다. 재경은 그 손을 잡았다. 면접 날처럼, 조금 세게.
"박재경 씨, 악력! 이거 기억나. 곽 대리한테 잘 배워. 경영지원 셋 됐으니까 이제 좀 돌아가겠네."
대표가 박수를 한 번 치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악수한 손바닥이 얼얼했다. 세게 잡는 사람을 좋아하는 대표였다. 면접 날에도, 오늘도.
재경은 돌려받은 한 부를 한 번 더 읽었다. 계약서에도 성별을 적는 칸은 없었다.
내가 만든 내 계약서. 진짜 서류다. 전부.
정오가 되자 유리문 앞에서 민식이 AE 두 명과 손짓했다.
"막내! 밥!"
재경은 일어섰다. 지원은 자리에서 도시락 뚜껑을 여는 중이었다.
"팀장님은—"
"난 도시락."
재경은 한 박자 서 있었다.
"막내! 엘리베이터 온다!"
재경은 걸어갔다. 유리문을 밀고 나가다 한 번 돌아봤다. 불이 반쯤 꺼진 점심시간의 사무실. 창가 끝 자리에 지원이 혼자 앉아 있었다. 젓가락을 든 채, 닫히는 유리문 쪽을 보는 옆얼굴이었다.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민식이 AE들에게 턱짓을 했다.
"첫날은 우리가 산다. 막내, 국밥 되지?"
"네."
"그렇지. 남자는 첫날 국밥이야."
국밥은 원래 좋아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회사 뒷골목 국밥집이었다. 민식이 수저를 돌리는 동안 AE 한 명이 재경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막내, 자격증 뭐 있어요?"
"전산회계 1급하고 재경관리사 있습니다."
"재경관리사? 이름이 재경이라 딴 거 아니고?"
AE 둘이 웃었다. 민식이 깍두기를 집으며 물었다.
"그럼 5년 뒤엔 뭐 하고 싶은데?"
재경의 숟가락이 뚝배기 가장자리에서 멈췄다. 아는 질문이었다. 받아 본 적은 없었다.
"숫자 보는 일 계속하고 싶습니다."
"오, 대답 좋네."
국밥이 식는 동안 재경은 받은 질문을 셌다. 자격증, 이름 농담, 5년 뒤. 전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계산은 민식이 했다. 첫날은 우리가 산다던 그 「우리」는 민식 혼자였다.
오후 2시, 인수인계.
드르륵. 민식이 의자째 굴러와 재경 책상 옆에 붙었다. 무릎 위에 종이 상자 하나가 있었다.
"인수인계다. 급여대장. 원천세. 4대보험. 근로계약서 철."
상자에서 하나씩 꺼내 재경의 책상에 탁, 탁 놓았다. 마지막으로 열쇠 꾸러미.
짤랑.
"캐비닛 열쇠. 네 뒤에 있는 거. 하나는 팀장님이 갖고 계시고, 이건 퇴근할 때 저기 열쇠함에 걸어."
민식이 턱으로 유리문 옆 벽의 작은 팀 열쇠함을 가리켰다. 재경은 그 위치를 눈에 담았다.
작은 USB 하나가 이어서 나왔다. 뚜껑에 민식의 글씨로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인증서 비번 ●●●●●●●●」
재경은 포스트잇을 떼어 한 번 봤다. 그리고 손안에서 구겼다.
"야! 그거 내가 3년 붙여 둔 거야."
"외웠습니다."
민식이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상자 바닥에서 코팅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경영지원 월간 업무」
「매월 10일 급여 / 매월 4대보험 / 입·퇴사 신고」
큰 글씨 세 줄이었다. 그 아래 작은 글씨 몇 줄은 흐렸다. 원천세, 건강검진 대상자 관리, 연말정산. 재경의 눈이 흐린 줄 위에서 한 번 더 멈췄다가 떨어졌다.
"매달이야, 매달. 너 오기 전엔 이거 다 내가 했다. 이제 다 네 거다. 난 해방이다."
민식이 어깨를 활짝 폈다.
매달. 한 번 넘기면 끝나는 게 아니구나.
"아, 네 거 취득신고. 기한 있으니까 천천히 해. 바쁘면 내가 해 줘도 되고."
"오늘 하겠습니다."
"첫날부터?"
"제 업무니까요."
누가 해 줘도 된다고 하기 전에. 누가 그 화면을 대신 열기 전에.
민식이 어깨를 으쓱하고 굴러 돌아갔다.
재경은 몸을 돌려 캐비닛에 열쇠를 꽂았다. 「인사기록 — 재직자」 칸. 가나다순으로 꽂힌 카드 사이, 「ㅂ」 자리에 제 인사카드와 등본을 끼웠다. 잠갔다. 열쇠는 재킷 안주머니에 넣었다. 가슴께가 조금 무거워졌다.
오후 4시 50분. 사무실이 가장 시끄러운 시간.
AE들은 전화 중이었고, 운영팀 쪽에서 누가 크게 웃었다. 재경의 등 뒤는 캐비닛. 아무도 재경의 뒤에 서 있지 않았다.
키보드 옆에 민식이 넘긴 「4대보험」 폴더가 펼쳐져 있었다. 지난 입사자들의 취득신고서 사본이었다. 재경은 그 칸을 하나씩 짚으며 화면을 채웠다.
「사업장가입자 자격취득신고」
「국민연금 · 건강보험 · 고용보험 · 산재보험」
「성명 박재경 / 주민등록번호 ●●●●●●-2●●●●●● / 자격취득일 3월 3일」
마우스를 쥔 손은 번호 칸 근처로 가지 않았다. 커서는 그 칸을 한 번도 지나지 않았다. 고칠 이유가 없었다. 고칠 생각도 없었다.
뒷자리 첫 숫자.
재경은 고개를 들었다. 모니터 위로 사무실이 보였다. 민식은 통화하며 웃었고, 지원은 안경을 올리며 서류를 넘겼다. AE 한 명이 기지개를 켰다. 아무도 이쪽을 보지 않았다.
나라는 내가 여자인 걸 안다.
회사만 모른다.
「입력하신 내용으로 신고하시겠습니까? [신고] [취소]」
커서가 [신고] 위에 올라갔다. 손가락이 멈췄다.
이 화면을 보는 사람이 나인 동안만.
그리고 매달.
재경은 넥타이 매듭을 한 번 만졌다. 얼굴은 그대로였다.
딸깍.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접수증을 출력해 4대보험 폴더 맨 뒤에 끼웠다. 지난 입사자들 사본 뒤, 제 것이 맨 마지막이었다.

드르륵.
의자 바퀴 소리에 재경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창이 내려갔다. 화면에는 바탕화면만 남았다.
민식이 의자째 굴러와 재경의 모니터 옆에 턱을 괴었다. 손가락이 모니터 테두리의 포스트잇을 톡 쳤다. 「인사 서류 — 인사 담당 외 열람 금지」.
"이건 아직 붙어 있네."
"계속 붙어 있을 겁니다."
"막내."
"네."
"13일 저녁 비워. 10일 마감 끝나면 환영회다."
환영회. 13일이면 열흘 뒤였다. 그 전에 10일 급여 마감이 먼저 온다.
민식이 턱을 괸 채 재경을 위아래로 훑었다. 씩 웃었다.
"……너 술 좀 하냐?"
주량. 면접장에서 옆자리 남자 지원자만 받던 질문이었다.
재경이 입을 열기도 전에 민식이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아, 그리고. 우리 회식은 신입 자기소개부터야. 고향, 학교, 어디 부대 나왔는지까지."
민식이 대답을 기다렸다.
재경의 시선이 키보드 옆 출력물로 내려갔다. 오전에 고친 인사카드 양식이었다. 「병역」 줄이 없었다.
병역 칸은, 오늘 오전에 내가 지웠다.
술자리엔 지울 칸이 없다.
▣ 박재경 · 경영지원팀 │ 근속 1일 · 들킬 뻔 2 (+1: 헤드락) · 거짓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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