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3. 쪽수
"무슨 말씀이세요."
내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게 나왔지만, 배병조 차장은 향로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제수씨 얼굴이 어제와 다릅니다. 저도 처음에 그런 얼굴이었습니다."
"처음이라는 게 언제입니까."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닙니다."
그의 눈길이 빈소를 천천히 훑고 지나갔다. 시어머니, 현주, 장례지도사, 그리고 입구에서 화환을 내리는 배달 기사까지.
"아홉 시에 접객실로 오시겠습니까. 제가 아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게는 두 번째입니다."
나를 돌아본 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아홉 시에 뵙겠습니다."
그가 일어나 시어머니 쪽으로 가는 동안, 입구 쪽에서 현주가 우리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현주는 신발 쪽으로 몸을 돌려 버렸다.
무릎 위에 손을 포갠 채, 나는 한 시간 전의 일을 처음부터 되짚었다.
"상주님, 향 먼저 올리시지요."
일곱 시 반에 지도사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어제는 "향 올리시지요"였고, 먼저라는 말은 없었다.
그래서 상식이 끝난 뒤 지도사에게 물었다.
"아까 먼저라고 하셨죠. 무엇보다 먼저입니까."
"상식 올리기 전에 향부터 올리시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어제는 그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지도사는 반 박자 머뭇거리더니, 흰 장갑 낀 손으로 향의 길이를 가늠해 보았다.
"그랬습니까. 제가 늘 하는 말입니다."
늘 하는 말에 한 단어가 붙었는데, 정작 지도사 본인은 그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어제와 다른 것을 꼽아 보면 지도사의 한 단어, 종이컵 없이 온 배병조, 얼굴이 왜 그러냐는 현주의 물음이었다.
나머지는 알림 일곱 개부터 시어머니의 대답, 향이 타는 속도까지 전부 같았다.
다른 것이 세 개인데, 그중 둘은 나 때문에 생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도사의 한 단어만큼은 왜 달라졌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09:00. 접객실.
아침 접객실에는 손님이 없었고, 식당 직원 둘이 상마다 수저를 놓는 중이었다. 육개장 끓는 냄새가 복도까지 흘러나왔다.
구석 상에 먼저 자리를 잡은 배병조는 종이컵 두 개 가운데 하나를 내 앞으로 밀었다.
"물부터 드십시오. 이야기가 좀 깁니다."
맞은편에 앉았지만 컵은 들지 않았다. 그는 내 손을 힐끗 보고는 말을 이었다.
"하루는 아침 일곱 시에 시작합니다. 발인 시각에 끝나고요. 여섯 시 반, 운구차 문이 닫히면 다시 일곱 시입니다."
"그 사이의 일은 다 없던 일이 되는 겁니까."
"방명록만 빼고요. 나머지는 전부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향도, 국화도, 사람들 말도."
"사람들 말도요."
"대부분은 매번 같은 시각에 같은 말을 합니다. 오늘 아침에 들으셨을 겁니다. 달라진 건 기억하는 사람 머릿속에만 남습니다. 그리고 방명록에요."
어머님, 잠깐이라도 누우셔야 합니다. 아이고, 차장님이 고생이 많으시네.
"저도 그중 하나였습니까."
"제수씨요?"
"제가 기억하기 전에요. 어제 이전에."
그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매번 보셨습니다. 매번 울지 않으셨고요. 매번 제 종이컵을 받기만 하고 안 드셨습니다."
앞에 놓인 종이컵으로 눈이 갔지만, 손은 대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꼭 기억해 두십시오."
그가 목소리를 한층 더 낮췄다.
"건물 밖으로 나가시면 안 됩니다. 나가면 오늘이 지워집니다. 5분쯤 걸립니다."
"5분이요."
"5분이 지나면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밖에서 알게 된 것까지 전부요."
"밖에 볼일이 생기면요."
"전화를 쓰십시오. 필요한 건 제가 사람을 시키겠습니다."
"어디까지가 안입니까."
"주차장 흡연 구역이요. 재떨이 세워 둔 데까지는 괜찮습니다. 그 너머는 밖입니다."
"어떻게 아십니까."
그가 종이컵을 손바닥으로 감싸 쥐었다.
"제가 아는 것 중에서 제일 확실한 겁니다. 믿어 주십시오."
어떻게 아는지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나는 진술을 받아 적듯 속으로 되뇌었다. 재떨이까지. 5분.
"기억하는 사람끼리는 서로 알아봅니까."
"대개는요. 매번 같은 말을 하던 사람이 다른 말을 하면 압니다."
"지도사님은요."
"그분은 기억하는 분이 아닙니다. 매번 같으십니다."
그러나 매번 같지는 않았다. 오늘 아침에만 해도 한 단어가 붙었으니까. 그 얘기는 입 밖에 내지 않고 삼켰다.
"저 말고도 기억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몇 분 계십니다."
"누굽니까."
"그분들이 직접 말씀하실 겁니다. 남의 일을 제가 옮기는 건 도리가 아니죠."
"그중에 청 사람이 있습니까."
"저도 청 사람이지요."
그가 조금 미안한 얼굴을 하는 사이, 나는 종이컵 가장자리를 엄지로 눌렀다.
"무엇이 기억을 남깁니까. 누구는 기억하고 누구는 못 하는 이유요."
"저도 모릅니다."
그 말을 할 때 그는 망설임 없이 내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차장님은 몇 번째입니까."
"정확히는 모릅니다. 기억에 번호가 없으니까요."
"번호가 없다는 건."
"다 같은 토요일이라서요. 며칠째인지 세다가 놓쳤습니다. 열 번쯤 됐을 겁니다."
열 번쯤. 나는 그 숫자를 머릿속에 단단히 새겨 두었다.
"이 하루는 왜 반복됩니까."
"그것도 모릅니다. 알았으면 벌써 끝냈겠지요."
"그런데 왜 저한테 알려 주십니까."
"현우 부인이시니까요."
그는 잠깐 말을 끊었다가 덧붙였다.
"그리고 혼자 알기에는 너무 긴 하루입니다."
식은 종이컵을 내려놓은 그가 조금 뒤에, 아까와는 다른 목소리로 물었다.
"제수씨,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혹시 현우가 뭐 남긴 거 없습니까? 편지든, 물건이든."
핸드백 안주머니에는 접힌 흰 종이가 들어 있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우리 청 사람한테는 특히.
남편은 그 문장을 녹음하면서 누구의 얼굴을 떠올렸을까.
"모르겠어요."
"그렇군요."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혹시 생각나시면 저한테 먼저 말씀해 주십시오. 여기서는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니까요."
"그러겠습니다."
나는 그가 밀어 준 종이컵을 들어 처음으로 한 모금 마셨다. 미지근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답하는 건 거짓 진술이 아니다. 증인들에게 나는 늘 그렇게 가르쳤다.
게다가 남편이 무엇을 남겼는지 나는 아직 모르고, 메모는 그 입구일 뿐이다.
접객실을 나와 대기실에 들러 보니, 가방은 지퍼가 닫힌 채 소파 팔걸이에 얌전히 걸려 있었고 안주머니의 메모도 그대로였다. 나는 메모를 꺼내 재킷 안주머니로 옮겼다.
가방은 두고 다니는 물건이지만, 재킷은 몸에 걸치고 다닌다.
09:25. 빈소.
첫 조문객이 오기 전에 방명록 앞에 서서 18쪽을 폈다. 어제 온 사람들의 이름이었다.
이번에는 이름 말고 여백을 훑어 내려갔다.
서명과 서명 사이, 오른쪽 여백에 펜 끝으로 한 번 누른 크기의 검은 점이 있었다.
번지지 않은 검은 잉크가 줄에 묶인 방명록 펜과 같은 색이었으니, 아마 저 펜으로 찍은 점일 것이다.
하나, 둘, 셋. 18쪽에는 점이 셋이었다.
점 옆에는 이름이 없었고 서명과도 떨어져 있어서, 누구의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지도사님."
향로를 정리하던 지도사가 고개를 돌렸다.
"방명록에 점을 찍는 분이 계십니까?"
방명록 쪽으로 걸어온 지도사는 펼쳐진 쪽을 내려다보는 대신 흰 장갑을 고쳐 꼈다.
"방명록은 제가 넘기지 않습니다. 상주님 것입니다."
"누가 넘기는지는 보셨습니까."
"상주님 것이라서, 저는 보지 않습니다."
같은 대답만 남기고 지도사는 향로 쪽으로 돌아갔다.
나는 1쪽으로 돌아갔다.
1쪽 여백에도 점이 하나 있었으니, 첫날부터 누군가 점을 찍어 왔다는 얘기였다.
2쪽에 하나가 있었고, 3쪽은 위에서 아래까지 여백을 거듭 훑었다.
없었다.
4쪽에 둘, 5쪽에 하나. 조문객이 오기 전에 끝내야 해서, 손가락으로 쪽을 눌러 가며 빠르게 넘겼다.
재킷 주머니에서 공판 메모를 하던 수첩을 꺼내, 빈 장에 쪽마다 점의 개수를 적어 나갔다.
「1·1·0·2·1·2·1·1·2·1·0·2·1·1·2·1·1 18 — 3 19 — ?」
서명은 매번 같은데 점만 쪽마다 개수가 달랐다.
점이 둘인 쪽은 4, 6, 9, 12, 15. 17쪽까지는 많아야 둘이었으니, 셋은 18쪽이 처음인 셈이다.
18쪽은 어제고, 오늘 아침 19쪽은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채였다. 방명록은 하루에 한 쪽씩 찬다.
쪽수가 날짜다.
그렇다면 점은 그날을 남긴 사람의 표시다. 어제 나는 점을 찍지 않았는데도 어제를 기억하니, 18쪽의 점 셋은 내가 아닌 세 사람의 것이다.
아마 그중 하나는 배병조일 것이다. 어제의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나머지 둘은 그가 말한 "몇 분" 가운데 둘일 텐데,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수첩의 숫자를 다시 내려다보니 0이 두 개 있었다. 다른 숫자들 사이에 끼인 0은 유난히 눈에 잘 띄었다.
3쪽과 11쪽.
두 쪽을 다시 펴 보았지만 여백은 깨끗했다. 서명만큼은 다른 쪽과 똑같이 빼곡했다. 김 계장, 지검 직원들, 청운물류, 조항석.
사람은 다 왔다. 청운물류의 봉투도, 세 시 정각의 검사장도 왔는데 점만 없었다.
점이 출석이라면 그날은 아무도 출석하지 않은 날이고, 그날 있었던 일은 서명 말고는 어디에도 남지 않은 것이다.
수첩을 덮자 표지 모서리가 손바닥에 배겼다.
입구 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9시 40분, 복도 끝에 지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19쪽을 펴고 텅 빈 첫 줄 앞에서 줄에 묶인 펜을 집어 들었다.
맨 위 칸에 내 이름을 적었다. 문서진.
그리고 이름 옆 여백에 펜 끝을 한 번 눌러, 검은 점 하나를 찍었다.

펜을 내려놓자 줄이 받침대 다리에서 흔들렸다.
작은 점이라 누가 보아도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내 이름 옆에 있다는 것만 빼면.
"사모님, 힘내십시오."
첫 조문객이 내 이름 아래에 이름을 적었다. 김 계장이었고, 이번에도 마지막 획이 옆 칸으로 삐져나갔다.
수첩은 메모지와 같은 자리인 재킷 안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자리로 돌아가 같은 각도로 허리를 숙이기 시작했다.
조문객이 끊길 때마다 방명록 쪽을 살폈지만, 서명하는 사람은 많아도 여백에 점을 찍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배병조는 내내 입구에서 조문객을 맞았고 방명록 앞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가 보고 있던 동안의 일이었다.
입구 옆에서 신발을 정리하는 현주는 아침에 내 얼굴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어제의 현주라면 하지 않았을 말이었다.
매번 같은 말을 하던 사람이 다른 말을 하면 안다고, 배병조는 그렇게 말했다.
허리를 숙일 때마다 수첩의 숫자가 떠올랐다. 3쪽, 11쪽.
누구도 기억하지 않은 하루가 두 번 있었다.
열아홉 번째 장례식 방명록 — 쪽수가 곧 날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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